전체 글35 오늘을 기록하는 한 문장 심리학 하루를 응축한 말 하루가 끝나고 불을 끄기 전, 우리는 대개 핸드폰 화면 속으로 마지막 시선을 던진다. 뉴스 헤드라인, 유튜브 영상, 혹은 메신저 대화창. 하지만 그 속에는 내 하루가 없다. 오히려 남의 말과 소식만 가득하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전부터 작은 실험을 하고 있다. 이름하여 ‘한 문장 심리학’. 하루를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습관이다. 긴 글도 아니고, 멋진 글도 아니다. 그냥 하루를 응축한 말, 그것이면 충분하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날은 “오늘은 걷는 게 기도였다”라는 문장이 튀어나온다. 비록 종교적 색채를 띤 듯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하다. 그날은 괜히 답답해서 동네를 한참 걸었다. 걸으면서 스스로 위로받았다는 뜻을 문장으로 남긴 것이다. 또 어떤 날은 “입안에 남은 김치찌개의 매.. 2025. 8. 29. 한라산 그림자 아래, 삶의 굴곡을 읽다 -휘주니- 한라, 그 영원의 숨결과 삶의 파고 제주도의 8월은 육지와는 또 다른 의미로 뜨겁다. 한라산 정상 부근을 제외하곤 짙푸른 녹음이 섬 전체를 뒤덮고, 강렬한 태양 아래 제주는 생명의 기운으로 충만하다. 이글거리는 여름 태양빛 아래, 거대한 한라산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웅장한 실루엣은 해가 뜨고 질 때마다 길게 드리워졌다가 짧게 움츠러들기를 반복하며, 마치 영원과 같은 시간의 흐름을 침묵으로 증언하는 듯하다. 이 산 앞에 서면, 팔순을 바라보는 내 70년 세월도 그저 한 점 티끌처럼 느껴진다. 고작 70년이라니. 한라산의 수억 년 역사 앞에 인간의 시간은 어찌 이리 덧없는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짧은 삶 속에 담긴 파고를 생각하면 다시금 숙연해진다. 70년. 그 속엔 수많은 뜨거운 8월이 .. 2025. 8. 28. 유배지 제주, 지성의 섬이 되다: 선비들의 고독과 사색 -휘주니- 그리고 그들의 발자취가 현대 제주에 남긴 정신적 유산 제주, 하면 우리는 흔히 푸른 바다와 야자수가 어우러진 휴양의 섬을 떠올린다. 넘실대는 파도 소리, 감귤 내음 가득한 바람, 그리고 흑돼지 향연이 펼쳐지는 오감만족의 공간.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수식어 뒤편에는, 꽤나 고독하고 처절했던 제주의 또 다른 얼굴이 숨어 있다. 바로 '유배지(流配地)'로서의 제주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조선 시대 수많은 지식인과 사상가들의 고뇌와 사색이 깊이 배어 있는 '지성의 섬'이기도 했다. 한양에서 쫓겨난 이들이 절해고도 제주에서 느꼈던 절망과 깨달음, 그리고 그들이 남긴 발자취는 오늘날 제주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정신적 유산이 되었다. 흑돼지나 감귤처럼 달콤하고 자극적인 맛은 아니지만, 제.. 2025. 8. 28. 사라져가는 제주어, 기억 속의 속살 -휘주니- 제주어를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마치 먼 옛날의 유물을 조심스럽게 꺼내 드는 듯한 마음이 된다. 단순한 지역 방언이 아니다. 그것은 수천 년간 이 섬의 바람과 파도, 오름과 바다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삶이 빚어낸 결정체다. 그 단어 하나하나에는 거친 자연 속에서 피어난 강인한 생명력과, 외부 세력의 침략과 핍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섬사람들의 끈질긴 정신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표준어가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제주만의 정서와 역사가 그 언어의 결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점점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언어라 하지만, 내게 제주어는 묵묵히 제주의 모든 것을 품어 온 어머니의 속살과 같다. 투박하고 투명한, 그래서 더욱 애틋한 '삶의 시'가 아닐 수 없다.언어는 곧 삶의 지문.. 2025. 8. 27. 오름, 나를 찾아 떠나는 고독한 여정 -휘주니- 제주의 오름. 한라산을 중심으로 마치 봉긋한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솟아오른 360여 개의 작은 산들. 저마다 독특한 모양새와 빛깔, 그리고 이름이 제주의 바람과 햇살 속에 어우러져 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성산일출봉이나 용눈이오름 같은 유명한 오름의 정상에서 탁 트인 풍광을 감상하며 감탄사를 쏟아내지만, 내게 오름은 그저 풍경의 일부가 아니다. 때로는 친구처럼 다정하고, 때로는 현자처럼 침묵하며 나를 기다려주는 존재. 특히나 발길 닿기 힘든, 혹은 이름조차 생경한 덜 알려진 오름들은, 나를 찾아 떠나는 고독한 여정의 시작점이 되어주곤 한다. 북적이는 인파와 시끌벅적한 소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나는 홀로 서서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면의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소리에 집중한다. 정상을 .. 2025. 8. 27. 검은 현무암 해변, 바다의 눈물과 약속 -휘주니- 제주는 내게 늘 위로와 안식을 주는 섬이다. 특히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은 바로 검은 현무암 해변들. 수억 년의 시간을 품고 파도와 부대끼며 빚어진 그 검은 돌들은, 제주의 거친 생명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눈부신 백사장과는 또 다른, 묵직하면서도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랄까. 시린 겨울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바다를 지키고 선 그 풍경은, 마치 오랜 삶의 고뇌를 견뎌낸 노인의 얼굴처럼 깊고 고요하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으로 너무 깊이 발을 들이밀다 보면, 이내 마주하게 되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틈새마다 끼어 있는 플라스틱 조각들, 형형색색의 어망 부표,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쓰레기들. 마치 이 아름다운 해변이 흘리는 소리 없는 눈물처럼, 그 모든 것들이 제주의 바다가 감내하고 있는 고통을 증언하.. 2025. 8. 27.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