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81 <1>“그 돈이면 여행에 퐁당 빠질 수도...”를 실천해본 6개월의 기록 -휘준- 1. 하루 한 잔, 별생각 없이 넘기던 커피의 진실나는 커피를 참 좋아한다. 아니, 좋아했다.아침 출근길에 눈 반쯤 감은 채로 편의점에서 한 잔, 사무실 도착해서 회의 전에 한 잔,오후 3시에는 졸음 방지용으로 또 한 잔.거기에 주말이면 무조건 감성 카페 가서 디저트 하나에 라테 한 잔.문제는, 이게 습관이 되면 무서운 소비라는 거다.어느 날 카드명세서를 보다가 갑자기 멍해졌다. “이게 다 커피야?”놀란 마음에 손가락을 꼽아봤다. 하루 평균 1.5잔, 일주일이면 최소 10잔.한 잔 평균 4,500원이면, 한 달에 4만~6만 원은 그냥 커피값으로 날아간다는 결론.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한 마디.“그 돈이면, 진짜 여행 한 두 번은 간다.”그 말이 농담 같으면서도 너무 현실 같았다.그렇게 나는 실험을 시작했다.. 2025. 5. 2. 오월 -피천득- 오월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전나무의 비늘잎도 연한 살결 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 나이였던 오월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그러나 시월 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득료애정통고 사랑을 얻음도 고통이요실료애정통고 사랑을 잃음도 고통이다 젊어서 죽은 중국시인의 이 글귀를모래 위에 써 놓고,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 2025. 5. 1. 어휴 사기꾼님, 정말 감사합니다 -휘준- 교회에서 부른다며 아내가 아침 일찍 나가버린 날, 이런 아침이 흔치 않아 새로 사 온 sttepper도 해보고 설거지까지 했다. 설거지 해치우기는 아내의 칭찬을 듣는데 가장 확실한 일감인데, 세제를 약간만 쓰는 그릇 닦기는 나의 특기이다. 9시에 문 여는 도서관에 가려고 가방을 메며 핸드폰을 찾는데 없다. 내 방에 없으면 거실엔 분명히 있던 핸드폰이 오리무중이다. 내 방을 한 번 더 뒤지고 거실의 소파 밑까지 훑어도 없다. 주방에도 없다. 혹시 화장실에? 없다. 나가야 하는 시간이 지나가자 슬슬 초조해진다. 배터리 잔량도 모르고, 진동으로 해놓은 폰이라 못 찾으면 난감한 일이 벌어진다. 두 식구 사는 집이라 아내 폰으로 찾아야 하는데, 오늘은 아내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다. 밖엔 비가 오는데 우산 없.. 2025. 4. 30. 무식을 고치는 약이라도 있었으면 -휘준- 무식한 걸 고칠 약은 어디에도 없다네 5년 전 처음 안경을 썼을 땐 생각보다 훨씬 선명히 보인 세상에 감탄했었다. 안경의 위력이 신기하기도 하여 그것을 벗어 이리저리 뜯어보기도 했었다. 당시 텔레비전 화면이 흐린 것은 낡은 기계 탓이므로, 어느 때고 화질이 조금 더 나빠진 때 즉각 바꾸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안경을 쓰고 보니까 화면이 그렇게 잘 보일 수가 없었다. 멀쩡한 재산을 버릴 뻔했다.. 반년 가까이 텔레비전 탓만 하며 흐릿한 화면을 보아온 나의 우매함은 그래서 그 끝이 유쾌했었다. 그러나 요즘에 나타난 나의 무지는 그렇지 않다. 책을 볼 일이 많아졌고 모니터부터 켜야 되는 업무 앞에서 눈이 쉬이 피로해지기에 안경 탓을 했었다. 하지만 멀쩡한 안경이 아깝기도 하여 지금보다 조.. 2025. 4. 29. '후사함'과 사물함이 같다구? -휘준- 5분의 여유 '전철역까지 도보 5분' 이는 아파트 분양광고에 흔한 문구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내가 현재 사는 곳은 정말 5분 거리고 동네도 마음에 든다. 성인 남자의 빠른 걸음이긴 하지만 정직한 광고라고 볼 때 이 단지의 다른 선전도 믿게 했음은 물론이다. 내가 타는 전철은 8분 간격으로 다닌다. 전철역까지 버스를 타야 했던 동네에 살 때는 버스의 간격이나 속도를 종잡을 수 없어 미리 집을 나서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그 앞 전철을 탈 때도 많았으나 '도보 5분'의 거리에선 정확히 목표한 전철을 탈 수 있으므로 지금은 매일 일정한 시간에 집을 나선다. 아침시간에 5분의 여유, 이게 얼마나 좋았던지. 그러나 이내 게을러져 5분 거리를 3,4분에 주파하느라 거의 매일 뛰다시.. 2025. 4. 28. 두부 장수 - 외솔 최현배 - 서울의 명물―아니 진경의 하나는 확실히 행상들의 외치는 소리이다.조석으로, 이 골목 저 골목에는 혹은 곧은 목소리로, 혹은 타목으로,또 남성으로, 혹은 여성으로제가끔 제 가진 물건들을 사 달라고 외친다.이 소리에 귀가 닳은 서울 사람에게는 아무 신기할 것 없겠지만,처음으로 서울로 올라온 시골 사람의 귀에는 이 행상들의 외는 소리처럼이상야릇한 서울의 진풍경은 없을 것이다.오늘에서 돌이켜 생각하면 꼭 13년 전의 일이다.내가 시골서 백여 리를 걸어 겨우 경부선 물금역에 가서 생전 처음 보는기차를 타고 공부차로 서울에 와 잡은 주인집은관훈방 청석골 정 소사의 집이었다.같이 온 동무도 있거니와 이 주인집에 묵는 학생들은 고향 친척도 있고,또 영남 학생들이기 때문에 오늘날 당장에는그리 설다는 느낌이 일어나지 아니.. 2025. 4. 27. 이전 1 2 3 4 5 6 7 ···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