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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도시를 깨우는 일꾼들 : 6. 아침 라디오 DJ 아침 6시, 이미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 도시의 대부분은 여전히 알람과 씨름하고 있지만, 전파 위에서는 이미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운전석, 부엌, 지하철, 편의점—그 어디서든, 라디오 채널을 맞춘 사람이라면 이 목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낮고 차분하면서도 묘하게 힘을 주는 목소리. 오늘 나는 15년째 같은 시간대의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아침 라디오 DJ, 최민석 씨의 방송 현장을 찾았다. 방송국 로비에 들어서니, 유리 너머로 보이는 스튜디오에서 불빛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시계는 5시 20분. 이미 그는 생방송 준비로 바빴다. 작가들이 프린트를 나눠주고, PD는 음악 리스트를 점검했다. 마이크 앞의 그는 커피잔을 옆에 두고 원고를 읽으며 발음을 고르고 있었다. “이 시간대는 특이해요.” 그는 대본.. 2025. 8. 17.
아침 6시, 도시를 깨우는 일꾼들 : 5. 새벽 꽃시장 상인 아침 6시, 여전히 반쯤 잠든 도시를 벗어나 강변 쪽으로 나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공기 속에 섞인 것은 매캐한 매연이 아니라, 은은하고 진한 꽃향기다. 트럭과 사람들, 플라스틱 상자와 포장지,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색깔들이 모여 있는 곳. 바로 새벽 꽃시장이다. 반쯤 잠든 도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꽃은 오후나 저녁, 누군가를 위해 준비된 선물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꽃의 하루는 이른 새벽, 아직 해가 뜨기도 전부터 시작된다. 오늘 나는 이 시장에서 20년째 장사를 한다는 박미정 씨를 만났다.  “어서 와요. 이 시간에 처음 오셨죠?” 그는 화려한 장미 한 다발을 묶던 손을 멈추고, 미소를 지었다. 주름 사이로 묻어나는 피곤함 속에도, 눈빛은 맑았다. “여긴 새벽이 제일 바쁜 시간이.. 2025. 8. 17.
아침 6시, 도시에만 나타나는 직업들 : 4. 신문 배달원 아침 6시, 어떤 사람에겐 마무리의 시간 도시는 막 깨어나는 듯 보이지만, 어떤 사람들의 하루는 이미 몇 시간 전에 시작되었다. 특히 신문 배달원에게 이 시간은 ‘마무리의 시간’이다. 이미 수백 장의 신문이 각 집과 가게 앞에 놓였고, 남은 건 마지막 구역을 돌며 배달을 끝내는 일뿐이다. 오늘 나는 10년째 같은 구역을 도는 신문 배달원 김성호 씨와 함께했다.  만남은 새벽 3시 반, 인쇄소 앞에서 시작됐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롤러가 돌아가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커다란 트럭에서 갓 찍혀 나온 신문 더미가 내려왔다. 아직 잉크 냄새가 강하게 났다. 김 씨는 능숙하게 신문을 묶은 줄을 풀고, 한 부씩 접어 오토바이 짐칸에 실었다. “이게 오늘의 도시 소식이에요. 사람들은 커피와 함께 읽지만, 저.. 2025. 8. 16.
윤여선의 土曜斷想 : 잊혀지지 않는 그 사람 토요 단상(土曜斷想)] (2025.08.16)========={제 197회}======= 이따금 잊을만하면 기억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고향 사람도 아니고, 학창 시절 절친하게 우정을 나눴던 친구도 아니지요. 의외이겠지만, 그는 사무소를 연지 얼마 안 됐을 무렵, 한동안 거래를 했던 물류회사의 대표였습니다. 흔한 말로 '갑'의 존재였던 사람이지요. 요즘도 그의 모습을 떠올릴 때가 있는 데, 그럴 때면 고향에서 함께 자랐던 어린 시절의 친구를 떠올리는 듯한 그리운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사회적인 계약 관계 속에는 '갑(甲)'과 '을(乙)'이 존재합니다. '갑'이 주도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반면, '을'은 종속적인 위치에 놓이는 것이 사회적인 통례이지요. 서비스업을 영위하는 입장에서는 업무 관계.. 2025. 8. 16.
아침 6시, 도시에만 나타나는 직업들 – 3. 새벽 빵집 제빵사 아침 6시의 도시는, 빵 냄새로 깨어나기도 한다. 아직 거리는 싸늘하고 사람 그림자는 드물지만, 한 골목 안에서는 이미 따뜻한 기운이 퍼지고 있었다. 그 향기는 멀리서도 알아챌 수 있다. 버터가 녹아내리는 냄새, 발효된 반죽이 오븐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소리 없는 음악. 오늘 내가 찾아온 곳은 동네에서 ‘아침의 부엌’이라고 불리는 작은 빵집이다.  아침에 만난 금빛 크루아상 문을 열자, 안쪽에서 “조심하세요, 지금 오븐 열어요!”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제빵사 박은정 씨가 커다란 철제 팬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팬 위에는 금빛 크루아상이 줄지어 있었고, 막 꺼낸 열기로 공기가 부드럽게 떨렸다. “이 시간에 오신 건 처음이죠? 빵 냄새 때문에 그냥 깼어요?” 그녀가 웃으며 물었다.  박 씨는 이 빵집을 연.. 2025. 8. 15.
아침 6시, 도시에만 나타나는 직업들 : 2. 지하철 첫차 기관사 -휘준- 아침 6시. 도시는 서서히 깨어나는 중이다. 출근 시간대의 소란스러움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하루를 준비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그중 가장 묵묵하게, 그러나 가장 먼저 하루를 가동시키는 사람이 있다. 바로 지하철 첫차 기관사다. 첫차를 모는 기관사의 하루  나는 오늘, 첫차를 모는 기관사의 하루를 직접 따라가 보기로 했다. 첫차를 타려면 생각보다 훨씬 일찍 나와야 한다. 아직 가로등 불빛이 꺼지지 않은 새벽 4시 50분, 차량기지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창밖엔 어둠과 가로등 빛이 번갈아 스쳤다. 버스 안 승객은 세 명뿐이었고, 모두 두꺼운 외투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차량기지 입구에서 기관사 김승현 씨가 나를 맞았다. 그는 18년째 지하철을 모는 베테랑이었다. “첫차는 .. 2025. 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