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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선의 土曜斷想 '손수건은 푸른 해원을 향해 흔드는 깃발' 제 183회외출할 때 꼭 챙기는 것이 손수건입니다. 때로는 지갑이나 핸드폰보다 먼저 찾아 호주머니에 넣는 것이 손수건이지요. 간혹 실수로 손수건을 챙기지 못한 채 밖에 나서는 때가 있는데, 그때는 외출 시간 내내 쉽게 표현할 수 없는 허전함과 불안감을 느낍니다. 물론 재채기에 취약한 체질이라서 손수건을 챙기지 않으면 안되는 점도 있긴 하지만, 오래된 습관때문인지 손수건이 주머니 속에 꼭 들어 있어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물품들의 중요성을 그것이 지니고 있는 물질적 가치로만 따진다면 손수건은 아마도 가장 아랫자리 저만치에 놓여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천조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것이 지니고 있는 물질적 가치의 크고 작음만으로 중요성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2025. 5. 19.
화장실 낙서, 이쯤 되면 빌보드차트에 뜰라 -휘준- 시립도서관 2층 남자화장실 첫 번째 칸에 앉으면 적나라한 19금 그림 한 컷이 눈을 확 끈다. '이거 그린 놈 대학생 아니다. 대학생이면 좀 더 잘 그렸어야지!' 더 자세히 보고 싶은 아쉬움은 외면당한 채, 엄한 꾸지람을 달고 있다 '낙서하지 마. 세끼들아!' 누군가 빨간 볼펜으로 맞춤법도 지적했다 '↙틀렸음 새끼(○)' 빨간 글씨는 다시 길게 휘어진 화살표에 끌려가 굵은 사인펜으로 얻어맞았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쉐끼들아!!'느낌표가 두 개나 붙었다. 그만큼 센 소린가? 머리 위에서 쇠파이프를 타고 내린 찬물 한 통이 푸하하 쓸려나가고 파란 창에 구름 반쪽 갸우뚱 인다그래 어쩌면 아주 오래전엔 '세끼'가 맞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담엔 '쉐끼'로 변할 수도 있어. 맞춤법이란 시대에.. 2025. 5. 19.
무소유 / 법정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 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 어록>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그렇다.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 2025. 5. 18.
윤여선의 土曜斷想 '내 친구 똑똑이' 토요단상土曜斷想 제184회 나이 차는 많지만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옆집에 사는 초등학교 1년생인데, 무척 똑똑한 친구이지요.그가 태어나서부터 이웃으로 함께 살아오는 동안 정이 많이 들어 이제는 흉허물 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모와 외출하고 돌아오다 집 가까이서 만나기라도 하면 득달같이 달려오지요. 그리고 이쪽 사정이나 형편은 살필 생각도 없이 앞장서서 우리 집으로 들어옵니다. 최근에는 엄마가 핸드폰을 사 주었다며 자랑하다 나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 해서 그의 전화기에 번호를 입력해 주었더니, 바로 전화를 하고는 자신의 번호를 입력해 놓으라고 지시하더군요.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학교 공부도 하고, 영어 등 학원에 다니느라 바쁘지만, 나름대로 시간을 내 친구들도 잘 사귀는 것.. 2025. 5. 18.
가끔 낮 달로 뜨는 남자 -휘준- 인천국제공항이 확장 일로에 있던 시기. 심야에도 항공기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관계 공무원들의 밤샘근무가 이어졌습니다. 24시간 근무 후 48시간 휴무인데, 하루 종일 근무하고 이틀간 쉬는 것이니까 많이 쉬는 것 같아도, 8시간 근무하고 16시간 휴식하는 시스템과 같은 조건이니 더 노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3일에 한번씩 출근하는 남자들을 동네에선 맨날 노는 놈들로 보는 시각도 있었습니다.간첩이 아닌가 의심받기도 했고, 병가 등으로 하루 결석하면 연속 5일을 놀았으니, 이웃나라 여행하기도 용이했었습니다. 그런 시절엔 낮에 같이 놀 친구가 귀했습니다. 그래서 한낮에 헬스클럽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곳도 테니스장이나 볼링장, 수영장같이 아줌마들 천지였습니다.그러니 저는 아줌마들 얘기를 아니 쓸 수.. 2025. 5. 17.
지갑은 얇아도 마음은 부푼 5월 5월이 오면 지갑이 바빠진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갑을 열어야 할 ‘사유’가 줄줄이 날아든다.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경조사도 많은 달이 아닌가.어쩌다 이 많은 날들이 다섯 글자 ‘감사의 마음’에 줄줄이 매달려 있나 싶다.문자 메시지엔 ‘5월 가정의 달, 풍성한 혜택’이란 광고가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지고,마트는 빨간 카네이션과 선물 세트로 꽃밭이 된다.이쯤 되면 5월은 ‘가정의 달’이라기보다 ‘소비의 달’이 아닌가 할 때도 있다.젊었을 땐 그게 또 신이 났던 때도 있었다.선물 고르느라 눈이 반짝였고, 카드 한도는 위험했지만 마음은 뿌듯했다.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고르던 선물들은 뻔해지고.받는 쪽도 “아이고, 이 나이에 또 뭘 다…” 하며 손사래 치는 게 일상이다.그래서 올해 나.. 2025. 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