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36 뉴질랜드와 누질랜도 -휘준- 인천공항에 잠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공항은 항상 떠나고 들어오는 사람들로 붐빕니다.국제공항인데도 옛날엔 심야에 들어오는 비행기가 없어서 공항이 꿈벅꿈벅 잠들기도 했었지만, 요즘은 24시간 가동되기에 그곳은 항상 살아있습니다. 분위기가 들떠 있거나 포옹을 오래 나누는 사람들은 출국자들이고 피곤해 보이거나 말이 없는 사람들은 입국자들입니다. 어느 편에든 우리나라 5,60대 아주머니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산파들이지요. 그분들은 시끄럽고 질서를 잘 안 지키십니다. 조용하던 입국검사장이 시끌시끌해지면 영락없이 우리나라 비행기가 도착한 겁니다. 지방에서 온 단체 여행자들은 같은 색의 모자를 쓰거나 같은 색의 조끼를 입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체가 주는 소속감과 안도감의 도구이며 낯선 외.. 2025. 6. 12. 아들아, 정직하지 않아도 좋다 -휘준- '아들아, 정직하게 커야 한다.' 막내 녀석이 초등학생 시절 해수욕을 하다가 바다에서 뛰어나와 오줌 마렵다고 화장실을 찾을 때 순진하다고 웃을 게 아니라 숫기 쪽을 염려했어야 했다.위장 전입을 통해 목동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시켰더니 자기와 같은 중학 출신 친구가 없어 다니기 싫다며 유난히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아내와 난 별 제안을 다했다.등하교 때마다 승용차로 모시겠다. 핸드폰을 사주겠다. 반 석차가 중간만 가도 간섭하지 않겠다. 용돈은 두 배로 팍 늘려주겠다. 눈 딱 감고 보름만 버텨주어라. 다음 달에 전학시켜 주마.그래도 막무가내로 졸라대는 아이는 교실에서 가만히 앉아있어도 어느 친구가 다가와 '너 편법 전입생이지?'하고 물을 것만 같단다. 별 쇼를 다하다 부아가 난 듯 아내가 소리쳤다."야 이놈.. 2025. 6. 11. 기절한 꽃게가 나를 기절 시키다 -휘준- 기절한 꽃게 아내가 아이들 좋아하는 게장을 담가야겠다고 해서 운전기사로 따라나섰습니다. 오랜만에 가보는 소래포구였고 쌈지막한 회에 캔맥주라도 한 잔 걸치면 아내가 운전하겠지 하는 기대감도 있었지요. 싱싱한 산 게로만 담가야 한다는 게장감의 시세는 1Kg에 그러니까 서너 마리에 22,000~25,000원 정도였는데 우린 맨 첫 집으로 다시 갔습니다. 제가 보기엔 다 같아 보였는데 아내는 그 집 것이 싸고 알이 굵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스름돈을 받던 아내가 이상한 질문을 했어요.“아줌마, 이 소쿠리는 네 마리 중에 왜 맨 위에 것만 움직이죠?” 한 마리만 살고 나머지 세마리는 죽은 거 아니냐고 묻더군요. 주인은 죽은 게 아니고 추워서 잠시 기절했다는 거예요. 그래도 의심을 풀지 않고 되묻는 아내의 말투는 심했.. 2025. 6. 10. 연금은 들어오는데, 마음이 새는 날엔 -휘준- 매달 25일, 어김없이 연금이 들어온다.알림음도 없이 조용히 들어오는데, 그 조용함이란 참 어지간하다. 마치 혼자 밥 차려먹고 설거지까지 다 마친 날의 고요함처럼. 일은 다 끝났는데 어쩐지 허전한 그런 느낌이다.지갑은 쫀쫀한데 마음이 헐렁하다.예전에는 돈이 없어서 고민이었는데, 이젠 쓸 일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이게 사치인가, 숙명인가, 나도 모르겠다.허전한 날엔 뭐라도 산다.어느 날은 그랬다. 아내는 친구랑 약속이 있다며 일찍 나가고, 나는 혼자 늦은 아침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문득 허전해졌다. 바람은 따뜻했고 해는 쨍했지만, 속은 좀 비어 있었다. 어쩐지 아내 몰래 뭔가를 사야 할 것 같은 날이다.그래서 컴퓨터를 켰다.‘뭘 좀 사볼까’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손이 자연스럽게 마우스를 잡는다. 그러.. 2025. 6. 9. 윤여선의 土曜斷想: 키 작고 못생긴 매실나무 한 그루 [토요 단상(土曜斷想)] (2025.06.07.) ========={제 187회}========밭의 벤치 옆에는 키 작은 매실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왔던 나무이지요.심긴 지 꽤 오래됐는데도 많이 자라지 않고, 생긴 모양도 볼품없어 큰 관심을 주지 않았던 나무입니다.벤치에 앉으면 앙상한 가지가 가끔 몸에 닿아 귀찮다는 생각만 들뿐, 돌보아 주기는 물론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지요.며칠 전, 밭작물에 물을 주다가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그날따라 그 나뭇가지들이 어깨에 자주 닿아 신경이 쓰였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가지들이 어깨를 스치며 세미한 자극을 주는 것이었지요. 귀찮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평소와 달리 벤치에 앉은 채 작으나마 관심을 갖고 그 나무를 올려보았는데, 한.. 2025. 6. 8. 핸드폰을 목에 건 어머니는 척척박사 -휘준- 우리가 새 천년이 열렸다며 들떠있던 2000년대 초반, 제 어머니는 여든 문턱에 계셨습니다. 작고 날씬하신 어머니는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해를 몹시 힘겨워하셨습니다. 무릎도 자주 아프고 기운도 예전같이 않으시다면서. 어머니는 보약을 드신 적이 없습니다. 힘들어하실 적마다 권해드려도 한사코 마다하셨습니다. 보약을 먹으면 죽을 때 고생한다는 잘못된 상식을 굳게 믿고 계셨지만, 자식의 씀씀이를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크셨겠지요. 그 어머니에겐 홀로 된 큰며느리와 저희 부부, 손자 둘 손녀 둘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그마한 집도 있습니다. 그 집 때문에 혼자 사십니다. 2002년, 저는 살던 동네에서 조금 외곽으로 나오면서 같은 값에 방이 하나 더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방 넷 중 큰 방 하나를 4년째 .. 2025. 6. 7. 이전 1 ··· 3 4 5 6 7 8 9 ··· 2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