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에 잠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공항은 항상 떠나고 들어오는 사람들로 붐빕니다.
옛날엔 심야에 들어오는 비행기가 없어서 공항이 잠깐 잠들기도 했었지만, 요즘은 24시간 가동되는 공항이기에 그곳은 항상 살아있습니다. 분위기가 들떠 있거나 포옹을 오래 나누는 사람들은 출국자들이고 피곤해 보이거나 말이 없는 사람들은 입국자들입니다.
어느 편에든 우리나라 5,60대 아주머니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산파들이지요. 그분들은 시끄럽고 질서를 잘 안 지키십니다. 조용하던 입국검사장이 시끌시끌해지면 영락없이 우리나라 비행기가 도착한 겁니다.
지방에서 온 단체 여행자들은 같은 색의 모자를 쓰거나 같은 색의 조끼를 입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체가 주는 소속감과 안도감의 도구이며 낯선 외국에서도 무리를 잃지 않는 수단이 되지요.
앞사람의 조끼, 그것은 그들이 거리의 풍경보다 더 많이 쳐다보고 다닌 것일 수도 있습니다. 며칠 동안 앞의 아줌마 뒤통수만 보고 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잖아요.
고생을 손끝에 달고 살아오신 아주머니들은 양모이불, 무스탕, 건강식품 등을 많이 사오시지만 대부분 자식들 주려고 사 오신답니다. 아직도 자기 호사는 하실 생각이 없는 분들이지요.
설사 그분들이 조금 시끄럽고 질서에 조금 미숙하면 어떻습니까. 내가 정장차림으로 근엄하게 서 있으면 어려워할까 봐 어깨를 살갑게 치며 슬쩍 긴장을 풀어드립니다.
"아주머니, 어디 갔다오세유?"
할머니는 다시 자기 앞에 서 있는 친구의 등을 칩니다.
"할머니, 우리 어디 갔다 오능겨?"
앞의 할머니가 뒤에서 물은 할머니 코에 대고 알려줍니다.
"누질랜도"
뒤에 선 할머니는 말없이 나를 돌아보기만 합니다. 알아들었느냐는 뜻입니다. 당신이 정확히 옮기기 힘든 발음 같습니다. 내가 얼른 또박또박 복창을 합니다.
"뉴, 질, 랜, 드? 우와 할머니 되게 좋은 데 갔다 오시네요!"
할머니는 어린아이처럼 으쓱으쓱 걸어 나가십니다. 좋은 곳에 다녀오시지만 그곳의 상품이 우리 것보다 별반 좋지 않은 것도 아시는 모양입니다. 작년 다르고 지난봄 다르게 그분들의 가방 부피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가방 수가 좀 더 줄고 크기도 줄어야 합니다. 그런 날은 머지않겠죠. (2002년)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아, 정직하지 않아도 좋다 -휘준- (2) | 2025.06.11 |
---|---|
기절한 꽃게가 나를 기절 시키다 -휘준- (3) | 2025.06.10 |
연금은 들어오는데, 마음이 새는 날엔 -휘준- (0) | 2025.06.09 |
핸드폰을 목에 건 어머니는 척척박사 -휘준- (2) | 2025.06.07 |
죄와 벌 '쌩구라' -휘준- (2) | 2025.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