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절한 꽃게
아내가 아이들 좋아하는 게장을 담가야겠다고 해서 운전기사로 따라나섰습니다. 오랜만에 가보는 소래포구였고 쌈지막한 회에 캔맥주라도 한 잔 걸치면 아내가 운전하겠지 하는 기대감도 있었지요.
싱싱한 산 게로만 담가야 한다는 게장감의 시세는 1Kg에 그러니까 서너 마리에 22,000~25,000원 정도였는데 우린 맨 첫 집으로 다시 갔습니다. 제가 보기엔 다 같아 보였는데 아내는 그 집 것이 싸고 알이 굵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스름돈을 받던 아내가 이상한 질문을 했어요.
“아줌마, 이 소쿠리는 네 마리 중에 왜 맨 위에 것만 움직이죠?”
한 마리만 살고 나머지 세마리는 죽은 거 아니냐고 묻더군요. 주인은 죽은 게 아니고 추워서 잠시 기절했다는 거예요. 그래도 의심을 풀지 않고 되묻는 아내의 말투는 심했습니다. 저는 주인이 불쾌할까 봐 아내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소래가 어떤 곳인데 죽은 걸 팔겠냐구? 당신 말 좀 가려서 해요.”
빨리 사고 빨리 가자고 아내를 끌었어요. 그래야 옆 골목에 가서 회라도 한 접시 맛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아내는 싱싱할 때 빨리 요리를 해야 한다며 귀가를 서둘렀습니다.
서울로 오는 길엔 교통체증이 심했습니다. 회도 못 얻어먹고 집에 와서 보니까, 꽃게에서 상한 냄새가 난다며 아내는 속상해했습니다. 아내의 지적이 맞았고 기절했다는 세 마리는 죽은 것이었습니다.
화가 치밀어 당장 달려가 따지고 싶었지만 교통체증이 있는 시간대라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세 마리는 버리고 한 마리는 찌개를 끓이면서도 아내는 불안해했습니다. 양념까지 얹어 버리게 될까 봐.
아니 정말 나쁜 사람들, 불과 한두 시간이면 들통날 거짓말을 어찌 그렇듯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을까요?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작년에도 멍청히 당한 일이 두 번이나 있어서 올해 신년 벽두어는 ‘속지 말자 갑신년’이라고 써두었는데 사흘도 못되어 속고 말았네요. (2004년 1월 3일)
그 시장이 몇 년 전 없어지고 새로 지었는데, 요즘은 그런 상인이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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