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7 버려지는 시간의 두 번째 삶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 많은 시간을 흘려보낸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일에 치여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기도 한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흘러간 시간을 ‘낭비’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정말 버려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시간도 두 번째 삶을 얻을 수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다시 돌아보고, 의미를 부여할 때 시작된다. 흘러간 시간은 단순히 지나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르게 바라볼 때 새로운 가치로 되살아난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의 재발견 아침부터 바쁘게 시작된 하루,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이미 흘러간 시간들을 세곤 한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10분,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는 3분, 커피를 준비하며 흘러간 5분, 사람들은 그냥 흘려보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2025. 9. 2. 버려지는 것들의 두 번째 삶 -휘주니-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것들을 버린다. 종이 한 장, 깨진 그릇, 낡은 옷, 더는 쓸모 없어진 물건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것은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나고, 어떤 것은 기억의 한 자락에 머물러 다시 빛난다. 나는 그것을 ‘두 번째 삶’이라 부르고 싶다. 오늘은 내가 걸어오며, 살아오며 마주친 버려진 것들의 두 번째 이야기를 기록해 본다. 종이와 책이 남기는 흔적 아침에 우편함을 열면, 전단지와 광고지가 쏟아져 나온다. 대부분은 곧장 휴지통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 종이들이 모두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한때는 나무였고, 햇빛을 머금고 자라던 생명이었다. 그것이 잘려 나와 종이가 되었고, 다시 인쇄되어 세상에 뿌려졌다. 사람들은 그것을 스쳐 지나가며 버리지만.. 2025. 8. 30. 세대별 언어 사전 만들기 언어는 시대의 거울이다. 같은 단어라도 어느 세대가 쓰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지고, 그 뉘앙스도 바뀐다. 마치 하나의 단어가 시간 여행을 하듯, 세대를 넘나들며 새 옷을 입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세대별 언어 사전’을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10대, 20대, 그리고 50대 이상이 똑같은 단어를 어떻게 다르게 쓰는지를 살펴보는 일. 이 사전은 국립국어원의 공식 자료가 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세대 간의 오해를 줄이는 다리 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단어, 다른 세상 먼저 예를 들어보자. “엄청나다”라는 단어. 50대 이상에게 엄청나다는 말은 주로 놀라운 사건, 혹은 심각한 사태에 쓰였다. “요즘 물가가 엄청나게 올랐어.” 여기서 엄청나다는 곧 걱정이나 부담의 색채를 띤다. 반면 20대에게 엄청.. 2025. 8. 29. 소리의 여행기 도시는 눈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귀로도, 그리고 마음으로도 기억된다. 사람마다 여행의 흔적을 남기는 방식은 다르다. 어떤 이는 사진을 찍고, 어떤 이는 냄새를 기록한다. 나는 조금 다르다. 내가 길 위에서 담아 두는 것은 소리다. 소리는 사라지는 듯하지만 묘하게 오래 남는다. 눈을 감아도, 어떤 소리들은 내 안에서 다시 울린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를 ‘소리의 여행기’로 기록해 본다. 시장의 외침에서 시작된 아침 아침 산책길에 전통시장을 지난다. 그곳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오늘 참외 달아드려요, 아주 달아요!” 상인의 외침은 마이크도 없이 시장 전체를 울린다. 옆 가게에서는 “오백 원만 더!” 하는 흥정의 목소리가 섞여 들려온다.그 소리들은 단순히 장사를 알리는 소리가 아니다. 거.. 2025. 8. 29. 오늘을 기록하는 한 문장 심리학 하루를 응축한 말 하루가 끝나고 불을 끄기 전, 우리는 대개 핸드폰 화면 속으로 마지막 시선을 던진다. 뉴스 헤드라인, 유튜브 영상, 혹은 메신저 대화창. 하지만 그 속에는 내 하루가 없다. 오히려 남의 말과 소식만 가득하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전부터 작은 실험을 하고 있다. 이름하여 ‘한 문장 심리학’. 하루를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습관이다. 긴 글도 아니고, 멋진 글도 아니다. 그냥 하루를 응축한 말, 그것이면 충분하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날은 “오늘은 걷는 게 기도였다”라는 문장이 튀어나온다. 비록 종교적 색채를 띤 듯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하다. 그날은 괜히 답답해서 동네를 한참 걸었다. 걸으면서 스스로 위로받았다는 뜻을 문장으로 남긴 것이다. 또 어떤 날은 “입안에 남은 김치찌개의 매.. 2025. 8. 29. 한라산 그림자 아래, 삶의 굴곡을 읽다 -휘주니- 한라, 그 영원의 숨결과 삶의 파고 제주도의 8월은 육지와는 또 다른 의미로 뜨겁다. 한라산 정상 부근을 제외하곤 짙푸른 녹음이 섬 전체를 뒤덮고, 강렬한 태양 아래 제주는 생명의 기운으로 충만하다. 이글거리는 여름 태양빛 아래, 거대한 한라산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웅장한 실루엣은 해가 뜨고 질 때마다 길게 드리워졌다가 짧게 움츠러들기를 반복하며, 마치 영원과 같은 시간의 흐름을 침묵으로 증언하는 듯하다. 이 산 앞에 서면, 팔순을 바라보는 내 70년 세월도 그저 한 점 티끌처럼 느껴진다. 고작 70년이라니. 한라산의 수억 년 역사 앞에 인간의 시간은 어찌 이리 덧없는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짧은 삶 속에 담긴 파고를 생각하면 다시금 숙연해진다. 70년. 그 속엔 수많은 뜨거운 8월이 .. 2025. 8. 28.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