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에서
지금 저는 끝이 안 보이는 활주로 앞에 서있습니다. 이 넓디넓은 대지를 여럿 거느린 공항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나 공항은 이 섬의 한 귀퉁이일 뿐입니다. 섬을 둘러싼 해변은 또 얼마나 클까요. 드넓은 해변이 어찌나 망망한지 물이 썰리면 해안선은 아득히 물러납니다. 광활하게 드러난 뻘엔 물 자국마다 햇빛이 담겨 반짝반짝 거립니다.
저 햇빛을 밟아보고 싶은 충동은 출근 때마다 이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한 번도 그리하진 못했습니다. 출근을 조금 빨리 하거나 퇴근을 좀 늦추면 되는데, 그것이 그렇게 어렵습니다. 무엇 때문에 쫓기듯 살아야 하는지요. 매일 오가면서도 해안도로에 잠시 내려섰다 간 적도 없으니 말입니다.
다시 바다를 봅니다. 아주 멀리 반짝임 사이에 개미처럼 꼬물거리는 것이 있습니다. 빛살 때문에 가물거리지만 그것은 사람입니다. 조개를 캐고 있겠지요. 저 사람들은 평생을 다녀도 이 너른 갯벌을 다 밟아볼 수는 없습니다. 악착같이 벌어서 뻘을 떠나보겠다는 저들이 너무 작아서 더 풍요로워 보이는 풍경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새삼 깨닫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저들은 언제쯤 뻘을 떠날 수 있을까요.
저는 세계적 규모라는 첨단 시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더위와 추위도 모르는 곳에서 저들을 내다보며 내가 낫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부끄러운 세월이지요. 누가 나은 들 이 광활한 대지 위에선 모두 개미가 아니겠습니까. 쳇바퀴 돌 듯 달려온 세월 끝에 개미만한 지식과 개미만한 재산이 남겠지요. 그렇다면 잃을 것도 고작 그것뿐인데 작은 일탈조차 쉽지 않으니 직업을 바꾸거나 시골에 정착을 해보겠다는 심산은 꿈에 그칠 것 같습니다.
제 아내의 하나뿐인 언니는 시골에 살고 있습니다. 그 언니의 외아들이 제 아이들에겐 하나뿐인 이종사촌이지요. 그런데 입시 지옥을 갓 벗어난 그 아이에게, 그 천진스런 가슴에 청천벽력이 떨어졌습니다. 스무 살인 녀석이 글쎄 몇 년밖엔 못살지도 모른다니요. 세상에 이렇듯 무참한 날벼락이 어디 있습니까. 간이 굳어 가는 병이라는데 병원에서도 손을 떼었습니다. 정상인처럼 무심히 살게 놔두는 게 가장 오래 살리는 방법이라 했답니다. 본격적인 증세가 시작되면 병원을 찾기 전에 먹일 극약 두 봉을 내민 게 퇴원 처방의 전부입니다.
그 약을 받아든 부모의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 가엾은 아이는 지금 학교기숙사에 가 있습니다. 대학은 졸업해 무엇 하냐는 부모 곁을 떠나있습니다. 떠나고 남는 연습일까요? 한데 녀석은 조금도 환자 같은 데가 없습니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청년입니다. 그래서 더욱 믿기지 않습니다. 제 병을 잘 아는 녀석이 이모네 집이라고 놀러왔을 때, 하도 구김이 없어서 마음에 두었던 얘기는 하나도 못했습니다. 술이 금물인 녀석 앞에서 혼자 술에 취해 고개 숙이고 있다가 용돈 몇 푼 준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녀석의 집은 마을에서 꼽히는 부농(富農)입니다. 재산이 무슨 소용 있냐며 울먹이던 그의 부모가 시름시름 앓다가도 일어나는 것은 거두던 논밭에 일이 밀렸기 때문입니다. 억척스레 불린 농토를 돈으로 따지면 평생을 써도 다 못 쓸 재산이건만 논밭에 묶여 명줄 다해 가는 자식을 보러 갈 새도 없습니다.
천생 농삿꾼인 아이의 부모는 돈을 쓸 줄 모릅니다. 그러나 논 한 자락 팔아서 아들과 여행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여야지 하며 입술을 깨물고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커다란 변화입니다. 순박한 그들이 생때같은 자식의 죽음을 실감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고 나면 배추 거두랴 가축 먹이 주랴 집을 떠나지 못합니다.
부모가 그러면 저라도 나서야 합니다. 그러나 녀석은 저를 싫어합니다. 녀석이 어렸을 때, 커서 훌륭한 사람 되라고 제가 엄하게 대했던 탓입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내와 아이들 등을 그곳으로 떠미는 일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식구들도 제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참으로 서글픈 노릇입니다. 떠날 쪽도 남는 쪽도 변함이 없습니다.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어쩌면 섣부른 변화가 더 괴로운 현실일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뻘에 한 번 나가보지 못하듯 아무도 자기가 살던 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녀석의 병을 미리 안 것은 오히려 가혹한 형벌이 아닐는지요. 눈물로 지새우던 그 아이의 엄마도 '저렇게 멀쩡한 것이 설마 죽으랴!'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별 앞에 변화가 없듯이 이별 뒤에도 변하는 건 없을 겁니다. 이 너른 세상에 그 녀석이 왔다간 흔적은 저 갯벌에 찍힌 발자국 같은 것이겠지요. 제 흔적인들 무엇이 다를까요.
다시 고개를 듭니다. 바다는 너무 평화로워서 세상엔 나쁜 일이 아무것도 일어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갯벌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조용히 아주 조금씩 밀물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지요. 인생은 그저 이렇게 뻘 한 줌 움켜보지 못하고 뻘뻘대다가 한갓 저 무심한 해조음이 되고 마는 것은 아닐는지요. 아직도 끝없는 활주로의 끝에 나는 한 점으로 세워져 있고 바다는 환영처럼 평온할 뿐 말이 없습니다. (200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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