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멀쩡한 날 오후, TV 화면 속을 유영하던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의 비경이 마음 깊이 들어왔습니다. 검푸른 현무암 기둥들이 켜켜이 솟아오른 모습은 마치 자연이 빚어낸 거대한 병풍 같았어요.
3.6 km의 잔도길, 짧은 길은 아니었기에 "70이 넘었으니 나도 노인인데 저런 아찔한 길을 꼭 가야 하나?" 잠시 머릿속에 티격태격이 일었지만, 이내 마음속에선"아니, 지금 아니면 언제 또 해보겠어!"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짧은 고민 끝에,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여행자의 심정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편안한 신발 끈을 고쳐 매고, 가벼운 배낭을 멘 채 설렘 반, 긴장 반으로 길을 나선 그날의 아침은 꽤나 상쾌했습니다.
드르니 마을 매표소를 지나 순담으로 향하는 잔도 길, 첫발을 내딛는 순간, 강철로 만들어진 내리막 난간에 의지한 채 발아래 펼쳐진 풍경,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발아래로는 아득한 깊이의 한탄강이 거친 물줄기를 쉼 없이 쏟아내며 수억 년의 시간을 웅변하는 듯했고, 눈앞에 굳건히 솟아있는 육각형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들은 자연이 빚어낸 최고의 예술 작품이었어요.
"허어, 천지창조주는 참으로 위대하시구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걷는 내내, 내 손은 쉴틈 없이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젊은 시절이었다면 저 멀리 보이는 절경까지 단숨에 내달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며 순간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려 애썼습니다.
때로는 흔들리는 잔도에 다리가 후들거리기도 했지만, 상쾌한 강바람과 시원한 물소리가 제 걸음을 응원해 주는 듯했습니다. 이 험준한 지형에 이렇게 안전하고 멋진 길을 만들어낸 분들의 노고에 새삼 감탄하며, 인간의 지혜와 자연의 조화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한탄강의 거친 물살과 함께 흘러온 세월의 흔적을 걷다 보니, 제 인생길도 저 주상절리처럼 겹겹이 쌓여 단단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로는 아찔한 절벽을 만났고, 머리위로 처진 철망에 돌 떨어지는 길도 만났고, 때로는 순한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갔던 많은 시간들.
환희와 역경이 뒤섞인 저의 70년 인생길이 잔도 위에서 파노라마처럼 지나갔습니다. 주름진 손으로 난간을 더 굳게 잡으며 문득 작은 웃음이 났습니다. "70년 인생길도 이렇게 꿋꿋이 잘 걸어왔는데, 3.6km쯤이야!" 하는 생각에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지고, 마음속에 묵직한 자신감이 차올랐습니다.
숨이 차오를 때마다 저 멀리 보이는 주상절리의 장엄함이 저를 일으켜 세우는 듯했고, 그 풍경 속에서 저 역시 대자연의 일부임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침내 순담에 도착했을 때, 온몸에 퍼지는 상쾌함과 함께 마음속 깊이 잊을 수 없는 뿌듯함이 밀려왔습니다. 발끝부터 전해지는 짜릿한 성취감은 그 어떤 비싼 선물보다 값진 것이었습니다.
발 아래 사납게 흐르는 강물을 보며 어릴 적 수영 배우던 때를 생각했습니다. 고1 때 수구를 처음 접했습니다. 경영 때완 영법이 다른 수영을 익혀야 했고, 양손에 벽돌을 들고 기합 받듯 물에 떠있던 기억도 있습니다.
아샤 물개 조오련이 고3이었고, 제가 고1이었는데 2, 3학년 형들을 제치고 제가 수구 골키퍼로 뽑혔습니다. 다른 학교엔 없는 일이죠. 3학년에 국대 2명이 있었는데 그 형들 덕분에 서툰 1학년 제가 혼계영에서 전국체전 우승도 했습니다.
서툰 1학년이 수구 골키퍼라고 잠시 폼을 잡을 때도 있었지만 공부는 바닥을 기었습니다. 수영장이 멀어 단축수업을 많이 한 탓이었습니다. 고3인데도 영어로 우리집 주소도 쓸 줄 몰랐습니다. 한심한 아이는 성적표까지 보관 중인 전교 꼴찌였습니다.
그래도 어찌저찌 글도 쓰고 시도 쓰고, 컴퓨터도 또래보다 잘하는 돌팔이 돌머리가 됐습니다. 자주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휴~ 돌머리가 문학을 한 건 매우 다행한 일’ ‘어휴~ 매우 돌머리가 컴퓨터를 한 건 아주 다행한 일’ 이런 푸념이 열 번쯤 지나면 한 살을 더 먹습니다.
공부를 잘 할 리가 없는 고교 운동선수들 육상부 농구부 럭비부... 그 돌팍들 틈에서 수영부는 딱 한 가지는 남긴 장사, 그들은 어느 강물에 빠져도 생존한다. 이거 아닙니까? 요즘 세간의 이슈, 물에 빠져 고귀한 생명을 앗긴 군인이나 공무원을 위해 특검을 한다 어쩐다 시끄러운데.... 수영 선수들은 저런 한탄강 물속에서도 살아나올 수 있다는 것이 끝까지 남는 위안.
고교 동기 중 추 아무개군은 공부를 참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죠. "야 넌 얼굴도 못 생겨서 연애도 못 할 텐데, 왜 그렇게 성적이 나쁘냐? 나는 너와 반대여서 바쁘지만." 답은 단박에 돌아왔습니다.
"내가 아무리 공부 못해도 너는 이긴다."
고1 때 전성기를 누렸던 수영부에서 뒷문으로 들어왔던 국대 2명이 고대 경영학과로 나르고, 고 2때 와해된 수영부. 그래서 운동선수에서 일반 학생으로 돌아온 내가 공부해 보겠다고 몸부림을 쳤지만 그게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입니까?
나머지 공부 교실에서, '강'과 '추' 이런 얘기로 꼴찌의 한을 달랜 적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공부 바닥은 내가 찍었으니 저는 '추'에게도 진 꼴찌였죠.
첨부하는 영상은 1999년도에 sbs TV ‘아빠의 도전’에 저희 가족이 25분 동안 나왔던 추억 중에 일부입니다.
TV에 1분 이상 나오기,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죠?
강바람에 스쳐 가는 은빛 머리카락, 살짝 저리지만 상쾌한 다리. 이 모든 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여전히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는 느끼고 왔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2025.10.10. 대청봉에 예약했습니다. 단풍 찍으러. 거기 칠순 노인은 없지만 갑니다. 2025.09.20
첨부하는 영상은 1999년 sbsTV '아빠의 도전'에 우리 가족만 반 시간 출연했던 추억 중의 하나.
담당 PD가 우리집에 일주일간 살다시피 하며 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찍어댔었죠.
그때 잠시 물에 떠다닌 모습을 붙여 봅니다^^ 제 전공 종목은 아니지만, 대학생 딸내미 앞에서 흉내는 냈습니다^^
그리고 첫사랑 J에게도 붙입니다.
J, 제주에 한번 놀러오시우. 노래의 배경처럼, 모닥불 한번 피울 날을 끝까지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