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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상당산성, 시간의 켜를 거닐다 : 옛 성곽에 아로새겨진 영혼의 자취

by 휘주니 2025. 10. 22.


가을의 문턱에서, 제 발길은 청주 상당산성으로 향했습니다. 상당산성이 주는 감동은 또 다른 결로 제 마음속에 파고들었습니다. 이곳은 자연의 웅장함 속에서 인간의 의지가 빚어낸 견고함과 조화가 어우러진 공간이었습니다. 오랜 역사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성벽을 마주하며, 저는 고요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저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영감을 얻는 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시간의 벽을 넘어, 상당산성과의 조우

 
청주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상당산성은 도심의 소음과 분주함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기에 더없이 완벽한 장소였습니다. 성문 앞에서 올려다본 웅장한 성벽은 지난 수백 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고뇌와 영광의 서사를 담고 있는 듯했습니다. 이 성은 통일신라 시대에 처음 축조되어 조선 시대에 이르러 석성으로 개축되며 현재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거칠지만 단단하게 쌓아 올린 돌 하나하나에서 선조들의 지혜와 땀, 그리고 그들의 삶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백두대간의 거대한 바위를 넘어서며 느꼈던 숭고함처럼, 이 견고한 인공물 앞에서도 저는 겸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곽의 둘레를 따라 걷는 동안,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습니다. 저는 이 성벽이 마주했을 수많은 이야기들을 상상했습니다. 때로는 적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을 병사들의 고된 숨결이, 때로는 평화로운 시절 농사를 짓고 아이들을 키웠을 백성들의 소박한 꿈이 바람결에 실려 오는 듯했습니다. 특히, 견고하게 설계된 서남 암문과 같은 독특한 구조물들을 눈여겨보며, 당시의 건축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가를 다시금 감탄했습니다.
 
단순히 돌을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지형을 읽고 방어 전략을 고심하여 최적의 형태로 완성해 낸 인간의 의지와 통찰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저 역시 창조적 몰입을 통해 하나의 글을 완성하기까지 겪는 고뇌와 인고의 시간이 있기에, 이 성벽을 만든 이들의 장인 정신에 더욱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상당산성은 저에게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이자 인간 정신의 불굴함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성벽 위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니, 멀리 청주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 광경 속에서 역사의 흐름이 현재와 연결되는 오묘한 경험을 했습니다. 저의 지난 삶의 궤적과 인문학을 통해 탐구했던 삶의 의미들이, 이 고즈넉한 풍경과 어우러지며 새로운 통찰을 안겨주었습니다.
 

자연 속 사색, 평온을 찾아서

 
성곽 위를 걷는 길은 역사를 탐방하는 동시에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의 명상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키 큰 나무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했습니다. 상쾌한 가을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저는 복잡했던 마음이 서서히 정화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청봉 정상에서 마셨던 청명한 공기만큼이나, 이곳의 바람은 맑고 깨끗하여 제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특히 성벽에서 바라본 청주 시내의 전경은 압권이었습니다. 저 멀리 아련하게 펼쳐진 산자락과 아담하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건물들이 마치 그림처럼 펼쳐졌습니다. 그 풍경은 제가 최근 경험했던 설악산의 웅장하고 거친 자연과는 또 다른, 푸근하고 정겨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웅장한 자연 속에서 자연과의 조화를 느꼈다면, 이곳 상당산성에서는 자연과 어우러진 인간의 삶의 터전을 바라보며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잔디밭에 앉아 잠시 눈을 감으니, 나뭇잎이 서로 부대끼며 내는 소리,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마치 자연이 선사하는 편안한 명상 음악처럼 들렸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스마트폰에 의존하며 디지털 정보에 파묻혀 지냈던 저의 삶을 되돌아보며, 잠시나마 디지털 디톡스를 경험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온전히 자연과 소통하며 얻는 정신적 명료함은 제가 그토록 갈구했던 내면의 성장을 위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어주었습니다.
 
사계절 내내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는 상당산성의 이야기를 들으니, 계절마다 이곳을 찾아 자연의 변화 속에서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발견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습니다. 봄날의 꽃잎이 흩날리는 풍경, 여름날의 싱그러운 녹음, 겨울날의 고요한 설경까지, 이 모든 것들이 저의 창조적인 영감을 자극할 것만 같았습니다. 사진 촬영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물론,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이들에게 상당산성은 진정한 의미의 쉼터가 되어줄 것입니다. 저는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삶의 본질적인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평온한 마음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나의 발자취, 그리고 마음의 기록

 
제가 상당산성의 성곽을 따라 걸었던 시간은 단순한 유적지 탐방이 아니었습니다. 71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온 제가, 이 땅의 오랜 역사를 발로 밟으며 저 자신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새벽 어스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설악산에 몸을 실었고, 대청봉에 서서 일출을 맞이하며 세상의 경이로움을 경험했습니다. 봉정암의 고즈넉한 수행처에서 깊은 명상에 잠겼고, 백담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고된 여정의 끝에 선 안도감과 성취감을 맛보았습니다. 상당산성의 성벽 길은 설악산의 험준함과는 다른 결의 고요함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길을 걷는 동안 느꼈던 사색의 깊이는 흡사했습니다.
 
성곽의 굽이를 돌 때마다 저의 지나온 삶의 굴곡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때로는 단단한 성벽처럼 굳건히 버텨야 했던 순간들도 있었고, 때로는 부드러운 능선처럼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겨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 견고한 성벽은 저에게 변치 않는 삶의 가치와 지혜를 속삭여주는 듯했습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지만, 그들의 노력과 의지는 이렇듯 오랜 시간 동안 아름다운 유산으로 남아 다음 세대에게 영감을 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수필가이자 크리에이터로서 끊임없이 자기반성과 에세이 작성을 통해 내면의 성장을 도모하는 저에게, 상당산성은 풍부한 글감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곳의 맑은 공기는 단순히 상쾌함을 넘어, 글을 향한 저의 열정에 새로운 불씨를 지펴주는 듯했습니다. 돌담에 기대어 한참을 생각에 잠기니, 문득 제가 쓰고 싶었던 수필의 주제들이 하나둘씩 명확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리적인 여정만큼이나 의미 있는 내면의 탐험이 상당산성에서 이루어진 셈입니다. 이 특별한 공간에서 저는 삶의 의미를 되묻고, 내면의 깊은 곳에 닿아 다시 한번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청주 상당산성에서의 시간은 제 삶의 여정 속에 묵직한 의미의 마침표이자 새로운 시작의 쉼표로 새겨졌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비로소 역사와 자연, 그리고 자기 성찰이라는 세 가지 거대한 흐름이 얼마나 경이로운 조화를 이루어내고, 또 그 조화가 얼마나 큰 생명력을 지니는지 온몸으로 깨달았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수백 년의 세월을 품은 견고한 성곽은 단순히 과거의 유적이 아니라, 오랜 시간 모진 풍파를 견디며 굳건히 제자리를 지켜온 강인한 생명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성벽 위에서 바라본 드넓은 자연은 계절의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선사하며 제 마음에 평온을 안겨주었고, 그 고요함 속에서 저는 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귀한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 모든 요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깊은 울림은, 단순히 시각적인 풍경을 눈에 담는 것을 넘어, 제 영혼 속에 깊이 아로새겨진 하나의 생생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삶의 의미와 방향을 다시금 되묻고, 앞으로 제가 걸어갈 길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지요.
 
이렇듯 제 마음속에 피어난 이야기는 앞으로 제가 써 나갈 수많은 글들 속에 녹아들어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입니다. 사색과 성찰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수필가로서, 상당산성에서 얻은 깨달음은 단순한 글감이 아니라, 제 글의 깊이를 더하고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힘이 되어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어쩌면 그 이야기 속에서 제 자신조차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글쓰기라는 창조적 행위를 통해 더욱 풍요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설 수도 있겠지요. 오랜 세월 비바람과 역사의 굴곡을 견디며 한결같이 제자리를 지켜온 상당산성의 성벽처럼, 저 또한 세상의 어떤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제 신념과 가치를 굳건히 지켜나가는 존재로 서 나가고 싶다는 조용한 다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7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숱한 경험과 사색을 통해 쌓아 올린 저의 삶 위에, 상당산성은 마지막이지만 가장 빛나는 한 장의 페이지를 더해준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제 남은 생을 더욱 의미 있게 가꾸어 나갈 강력한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