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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당신, 30초만 돌아보셔 -휘준-

by 휘준차 2025. 3. 27.

 

'당신, 딱 걸렸어!'

 

나이가 들면서 넓어지는 아내의 상식 중엔 이런저런 모임의 아줌마들 수다에서 얻는 것이 많으리라.

그리고 그런 경우를 자기에게 대비시켜 보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출근하려는 내게 아내는 눈썹을 추키며 물었다.

 

 

"당신, 공일공 삼삼사오가 누구야?"

                                                                                   "뭔 소리야?"

    "통화 가능한가요?라고 찍혀있던데?"

 

밤새 내 핸드폰을 뒤진 모양이다.

비가 오는 저녁, 국화차 향기가 좋네요.

이거는 또 누꼬? 친구들한테 배운 대로 척척 들어맞네.

반말투로 보아, 단서를 잡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가끔 컴퓨터에 관한 질문 때문에 여류 동호인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받는다.

문자로 전화걸기 적당한 시간을 묻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고, 그냥 재미로 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떤 땐 발신 번호가 일부만 찍히기도 한다.

그때는 '오호 센스 있는 여자네!' 했었는데 이번엔 그것이 문제가 될 줄이야.

010-3345로 시작하는 번호가 누구냐는 것이다.
다 찍힌 번호면 의심이 없는데 오히려 반 만 찍힌 번호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말문이 막혔다.

"그거 친한 직원이 나 골탕 먹이려고 장난친 거야!"

지갑에서 비상연락망을 펴서 코앞에 들이대며 펄럭였다.

하늘의 도움으로 썸씽있던 시인과 국번호가 같은 번호가 있어서 내 목소리는 더 커졌다.

걸어봐 걸어보라고, 아이고 내가 이러고 세상 살아야 돼?

 

아내는 그걸 들고 전화기 앞으로 씨근대며 갔다. 큰일 났다.

그 직원은 나와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인데, 나는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가 믿는 하나님은 가끔 내 편이 되기도 한다.

나의 불행은 그녀의 불행과도 직결되니까.

뒤돌아선 그녀는 비상연락망을 접어 내게 그냥 내밀었다.

그 직원과 통화가 된다해도 창피스럽게 무슨 얘기를 나누겠나 했다는 것이다.

그 대목에서 나는 악센트를 높이는 걸 잊지 않았다

 

"그게 수상쩍은 전화면 내가 그걸 왜 안 지웠겠어? 내가 그렇게 머리 나쁜 줄 알아?"

머리 나쁜 나, 구사일생으로 출근했다. 머리 나쁜 자는 한 눈 팔지 말지어다.(2002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