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54 피천득의 '은전 한 닢', 이재성의 '동전 한 닢' 내가 상해에서 본 일이다. 늙은 거지 하나가 전장(錢莊)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일 원짜리 은전 한 닢을 내놓으면서,"황송하지만 이 돈이 못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전장 사람의 입을 쳐다본다. 전장 주인은 거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돈을 두들겨 보고 '좋소' 하고 내어준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돈을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놓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다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 다른 전장을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을 꾸물거리다가 그 은전을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은으로 만든 돈이오니까?" 하고 묻는다.전장 주인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다보더니,"이 돈을 어디서 훔쳤어?"거지는 떨리는 .. 2025. 5. 25. 윤여선의 土曜斷想 '클로버와 토끼풀' [토요 단상(土曜斷想)] (2025.05.24.)========={제 185회}========'클로버'는 '토끼풀'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식물입니다.다른 잡풀들과 달리 땅에 깔려 있는 동글동글한 이파리가 장식용으로 몸에 달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풀이지요.어렸을 적에 이 클로버의 꽃을 따서 꽃 바로 아래 줄기를 반으로 갈라 그 틈으로 다른 꽃줄기를 넣어 연결해 반지나 팔찌를 만들어 차고 다녔던 것은 웬만큼 나이 든 이는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추억입니다."생각난다 그 오솔길그대가 만들어준 꽃반지 끼고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이제는 가버린 가슴 아픈 추억....."가수 '은희'가 불렀던 라는 노래 속의 꽃반지도 이 클로버 꽃으로 만든 천연 장신구였던 셈이지요.요즘 들에 나가면 이 클로버들이 .. 2025. 5. 24. 아아, 리어카와 그 때 그 감자 -휘준- 1960년대 말, 여름철이면 학교에서 오전 수업만 하고 동대문 수영장으로 가서,온몸이 파김치가 되도록 수영을 배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체벌에 대한 긴장과 혹독한 훈련으로 허기진 채 수영장을 나서면호떡, 냉차, 구운 감자 따위를 파는 리어카가 즐비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축구장 뒷길에서 지금의 전철역까지 띄엄띄엄 늘어선 먹거리들.기름 둘러 프라이팬에 구운 감자가 석양빛에 번들거리면 왜 그리도 그게 먹고 싶었는지....첫 집을 참고 지나 봤자 그런 리어카를 수십 개 지나쳐야 버스정류장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아줌마들은 사방에서 불렀습니다."학생, 회수권도 받아 어여 와~"내 버스표 받아다가 자기 아들 주려는 것이겠지요.10원만 내면 감자 두 개와 햇볕에 종일 데워져 미지근한 냉수지만 큰 주전자의 물을 얼마든.. 2025. 5. 23. 부부의 날, 우리는 아직도 데이트 중 -휘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아침 식탁에서 아내가 물었다. 아내는 뭔가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나는 순간 땀이 났다.“설마… 당신 생일? 아니지, 어버이날은 지났고, 스승의 날도 지났는데…”“후후. 바로 ‘부・부・의・날’입니다!”“그거 만든 사람이 아직도 부부일까…”사실 난 부부의 날이 있는 줄도 몰랐다. 결혼기념일은 혼자 기억했다가 대여섯 번 까먹었고, 생일도 몇 번이나 깜빡했다. 그런데 아내는 유난히 이 날에 집착한다.“우리 한강 한번 갈까요? 여유롭게 산책도 하고, 손도 잡고…”“손은 안 놓고 살았는데 굳이 또 잡아야 하나?”“이 양반, 낭만이 없어요. 나 오늘만큼은 ‘연애 시절 감성’으로 살 거예요.”그리하여 우리는 한강으로 향했다. 아내는 운동화를 신고 나는 한물간 로퍼를 신었다. 옷장에서 찾.. 2025. 5. 22. 5월의 바람은 나를 자꾸 옆길로 데려간다 -휘준- 5월의 바람은 묘한 힘이 있다.창문을 반쯤 열어놓고 있으면,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와 나를 흔든다. 무언가를 하던 손이 멈추고, 나도 모르게 먼 산을 바라보게 된다.바람이 어디서 불어왔는지는 모르겠는데, 마음 어딘가 깊은 곳을 스치고 지나간다. 오늘도 그랬다.별다른 일도 없던 날이었다. 마요네즈가 다 떨어졌다는 아내의 말에 허리쌕 하나 차고 집을 나섰다.그저 마트에 들렀다가 곧장 돌아올 생각이었다.그런데 대문을 나서는 순간, 바람이 살짝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오래된 친구처럼, 아무 말 없이 슬쩍. 그래서 나는 방향을 틀었다.마트 말고 전철역으로. 10분만 타면 아주 오래전에 살던 동네에 이른다. 내가 서른 즈음이었을까. 퇴근길마다 일부러 돌아 걷던 길이 아직도 있었다.집에 빨리 가고는 싶었지만, 막상.. 2025. 5. 21. 내 팬티를 벗긴 자, 그는 무죄인가 -휘준- 화장실 옆 칸에 아는 사람이 들었을 때,작은 인기척으로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곳엔 신문을 들고 느긋하게 갈 때도 있고일그러진 표정으로 다급히 갈 때도 있지요. 아시아나 특파관리 시절, 표정뿐만 아니라 자세 전체가 일그러졌던 날의 얘깁니다.배변의 고통을 참으며 화장실을 향해 복도를 걸었습니다.계속 걷기 힘들 땐 벽보를 보는 척 돌아서서 쉬거나무릎을 꼬고 까치발을 들며 내공을 쌓기도 했습니다. 오가는 사람과 눈인사를 나눌 때,이를 악문 미소 때문에 들켰는지도 모릅니다.가까스로 도착한 화장실 문 앞에서점잔을 빼며 똑 똑 노크했는데 안에서 "누구세요?"하고 묻는 짱구가 있었습니다.이 괴팍한 질문에 난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참을 수 없는 게 웃음뿐이겠는가. 입술에서 풋-하고 .. 2025. 5. 20.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2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