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82 무심한 저 해조음이 들리십니까? -휘준- 영종도에서 지금 저는 끝이 안 보이는 활주로 앞에 서있습니다. 이 넓디넓은 대지를 여럿 거느린 공항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나 공항은 이 섬의 한 귀퉁이일 뿐입니다. 섬을 둘러싼 해변은 또 얼마나 클까요. 드넓은 해변이 어찌나 망망한지 물이 썰리면 해안선은 아득히 물러납니다. 광활하게 드러난 뻘엔 물 자국마다 햇빛이 담겨 반짝반짝 거립니다. 저 햇빛을 밟아보고 싶은 충동은 출근 때마다 이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한 번도 그리하진 못했습니다. 출근을 조금 빨리 하거나 퇴근을 좀 늦추면 되는데, 그것이 그렇게 어렵습니다. 무엇 때문에 쫓기듯 살아야 하는지요. 매일 오가면서도 해안도로에 잠시 내려섰다 간 적도 없으니 말입니다. 다시 바다를 봅니다. 아주 멀리 반짝임 사이에 개미처럼 꼬물거리는 것이 있습니다. .. 2025. 3. 28. 당신, 30초만 돌아보셔 -휘준- © mayurgala, 출처 Unsplash '당신, 딱 걸렸어!' 나이가 들면서 넓어지는 아내의 상식 중엔 이런저런 모임의 아줌마들 수다에서 얻는 것이 많으리라.그리고 그런 경우를 자기에게 대비시켜 보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출근하려는 내게 아내는 눈썹을 추키며 물었다. "당신, 공일공 삼삼사오가 누구야?" "뭔 소리야?" "통화 가능한가요?라고 찍혀있던데?" 밤새 내 핸드폰을 뒤진 모양이다. 비가 오는 저녁, 국화차 향기가 좋네요.이거는 또 누꼬? 친구들한테 배운 대로 척척 들어맞네.반말투로 보아, 단서를 잡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가끔 컴퓨.. 2025. 3. 27. (15) 그땐 우리도 우리가 한심했다 -휘준- 고2 얄개시절, 그러니까 50여 년 전, 우리가 저지른 일 중에 범죄인 줄 알고 저지른 일이 딱 하나 있다. 정말 장난으로 말해본 거였는데 그 말을 들은 두 친구가 착 달라붙는 바람에 우리의 모의는 급속히 합의됐다. 셋이서 시험지를 훔치기로 한 것이다. 시험기간 중엔 교실에 남아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많았는데,밤이 이슥해지면서 불 켜진 교실이 몇 남지 않았을 때 우리는 비장한 마음으로 2층 교무실을 털었다. 그것은 타이거마스크의 박달 몽둥이 때문이다. 그는 수학선생이지만 마스크를 안 써도 반칙왕 같이 생긴 남자인데 시험문제 하나 틀리는데 무조건 한 대씩 때렸다. 다른 애들은 몇 개 틀렸나를 걱정했지만 선수생활 때문에 수업을 자주 빼먹은 나는 몇 개 맞을까가 궁금한 처지였다. 그러니 몽둥이 앞에 도둑질인들 .. 2025. 3. 26. (14) 오필이와 하재억과 유실영 어머니와 나의 엄마 -휘준- 고교 졸업 후 처음으로 모인 반창회에서 오필이 군을 만났다. 약 50년 만의 만남인데 퍼뜩 떠오른 추억은 고1 때 운동회다. 반의 체육부장으로서 출전 선수 명단을 짜고 있던 내가 필이에게 “너 단거리 빠르던데 100미터 좀 뛰어주라.” 했더니, 엄마한테 물어보고 답은 내일 주겠단다. “야 난 5천 미터도 물어보지 않고 뛰는데, 그거 잠깐 뛰는 걸 무슨 엄마한테 물어보냐?” "야 너, 100미터 달리기 선수 좀 해 줘라.""안돼, 엄마한테 물어보구.""나는 5000미터도 물어보지 않고 뛰는데, 뭘 그런 것까지 엄마한테 허락받냐?""아냐, 난 물어봐야 돼!" 이게 고교 1학년들의 대화로 보일까? 선수 명단 제출 기한이 당일이어서 "쪼다새끼" 하며 빼버렸던 필이에게 그때 답변이 왜 그랬냐고 물었다.할아버지가.. 2025. 3. 25. (13) 짜장면과 뺑코와 나무젓가락 -휘준- 짜장면과 나무젓가락 그리고 뺑코 백과사전에서 짜장면을 검색해 보니, 짜장면(-醬麵) 또는 자장면(-醬麵)은 양파, 양배추 등 채소와 돼지고기에 기름으로 튀긴 춘장을 넣어, 굵은 국수에 비벼서 먹는 '한국식 중국 요리'라고 나와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식 중국 요리'라는 말이다. 짜장면은 중국의 자장몐이 한국식으로 변형된 것이다. 산동 요리를 기반으로 하는 대부분 한국식 중국 요리처럼 그 대표 격인 짜장면은 인천이 시작점이라고 나온다. 짜장면은 중국의 산둥반도 지역의 가정식이었던 자장몐(炸醬麵)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하여 만들어진 음식이라는 것이다. 1890년대 중국 산둥(山東) 지방에서 건너온 부두 근로자들이 인천항 부둣가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춘장에 국수를 .. 2025. 3. 24. 수필 -피천득-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수필은 가로수에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이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화 우미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 빛이거나 진주 빛이다. 비단.. 2025. 3. 23. 이전 1 ··· 7 8 9 10 11 12 13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