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단상(土曜斷想)] (2025.05.24.)
========={제 185회}========
'클로버'는 '토끼풀'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식물입니다.
다른 잡풀들과 달리 땅에 깔려 있는 동글동글한 이파리가 장식용으로 몸에 달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풀이지요.
어렸을 적에 이 클로버의 꽃을 따서 꽃 바로 아래 줄기를 반으로 갈라 그 틈으로 다른 꽃줄기를 넣어 연결해 반지나 팔찌를 만들어 차고 다녔던 것은 웬만큼 나이 든 이는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추억입니다.
"생각난다 그 오솔길
그대가 만들어준 꽃반지 끼고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
이제는 가버린 가슴 아픈 추억....."
가수 '은희'가 불렀던 <꽃반지 끼고>라는 노래 속의 꽃반지도 이 클로버 꽃으로 만든 천연 장신구였던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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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에 나가면 이 클로버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산책길에 이 클로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밭을 만나면 당연한 것처럼 그 앞에 멈추어 서서 무언가를 찾곤 하는데, 그것은 네 잎 달린 클로버이지요.
네 잎 달린 클로버 줄기가 그것을 찾은 사람에게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는 속설입니다.
그 속설이 어떤 연유로 그리 전해져 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력이 꽤 깊었던 것 같습니다.
멀리는 고대 잉글랜드의 켈트족들이 네 잎 달린 클로버를 찾으면 이를 부적처럼 몸에 간직하고 전장(戰場)에 나갔다고 하더군요.
그 네잎 클로버가 전장에서 자신의 안전을 지켜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녀사냥이 횡행했던 중세 유럽의 종교적인 암흑기에는 자신의 몸을 불운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많은 여인들이 이 네 잎 클로버를 부적처럼 소중히 몸에 품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리고 좀 더 가까이로는, 전쟁을 지휘 중이던 나폴레옹이 어느 날 클로버 밭에 서 있다 우연히 네잎 클로버를 발견하고는 이를 가까이 보려 허리를 굽힌 순간, 바로 그 위로 총알이 지나갔다는 것이지요.
만일 네잎 클로버를 자세히 보기 위해 허리를 굽히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저격병의 총에 맞았을 것이고, 이에 따라 세계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실화인지, 혹은 꾸며낸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네잎 클로버가 지닌 행운의 이야기 속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나폴레옹과 관련된 전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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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네 잎 달린 클로버를 찾을 수 있는 확률은 1만 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행운의 여신의 도움 없이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가까운 확률이지요.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 준 행운을 지닌 사람만이 찾을 수 있는 귀한 선물로서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찾으려 해도 보이지 않는 네 잎 클로버이지만, 이를 여러 장 갖고 있는 사람도 있더군요.
플라스틱으로 소중히 코팅된 네 잎 클로버를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아 지갑 속에 넣고 다녔던 적이 있는데, 행운의 부적으로서보다 하나의 기념품 정도로 가볍게 여기다 언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지금은 기억조차 없습니다.
네 잎 클로버를 찾은 사람에게 행운이 찾아오는 것인지, 혹은 이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 행운을 지니게 되는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둘 다가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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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며 문학평론가인 '이어령' 선생의 글들 중에 <네잎의 클로버>라는 제목의 수필이 있습니다.
이 글 속에는 누나와 함께 네 잎의 클로버를 찾으려고 클로버 밭을 헤맸던 어린 시절, 어느 봄날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린 이어령과 누나는 경쟁이라도 하듯 네 잎의 클로버를 찾으려 한나절을 클로버 밭에서 해맸지만, 네잎 클로버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네 잎 클로버 찾기에 지친 어린 이어령이 생각해 낸 것은 가짜를 만들어 누나를 놀려주자는 것이었지요.
"갑자기 이 세상에 네 잎 달린 클로버란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없다면--없다면 만들 수밖에 없다. 누나는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보지는 못할 것이다. 가짜라도 네 이파리의 클로버를 만들어야 한다. 클로버의 잎사귀 하나를 줄기째 찢어 내서 세 잎 달린 클로버의 줄기에 갖다 붙였다. 아주 그럴듯하게 침을 발라서..... 숨을 죽이고 몰래 숨어서 행복의 모조품을 만들어 낸 셈이다."
이렇게 만든 네 잎의 클로버에 순진한 누나는 쉽게 속아 넘어갔고, 이에 신이 난 이어령은 똑같은 방법으로 두개를 더 만들었습니다.
누나는 부러워하며 셋 중 하나만 달라고 간청하지요. 심지어 울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어령은 누나가 아무리 애원해도 이를 주지 않습니다. 아니, 줄 수 없는 것이지요. 주는 순간 그것이 모두 가짜라는 것이 바로 들통나 버릴 테니까 말입니다.
그 당시의 안타까웠던 마음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이어령은 그의 수필에 다음과 같이 남깁니다.
"모조품은 남이 속아줄 때만이 진짜처럼 행세할 뿐입니다. 누님, 자기 자신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모조품의 비극입니다. 이것들은 남에게 자신이 행복한 체 보이려고 꾸며낸 속임수들이지요. 남들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어 주면 자기가 행복한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 인간들입니다.
누님, 왜 사람들은 큰 대문을 세우고 싶어 하는지 아십니까? 페르시아 왕처럼 왜 사람들은 자기가 다 소유할 수도 없는 많은 방을 원하는지 아십니까? 남들에게 그렇게 보이고 싶은 거예요. 모조품인 줄 알면서도 남에게 들키지 않으면 진짜와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지요. 제 스스로 제 행복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때의 네 잎 클로버는, 누님! 가짜였어요."
어린 시절의 가짜 네잎 클로버와 관련된 이어령의 독백은, 온갖 허위와 허식으로 행복을 가장하며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그 행복이 가짜임이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짜를 앞에 내세워 자신의 행복을 과시하며 살아가면서도, 정작 그 행복을 증명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사는 오늘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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