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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아, 리어카와 그 때 그 감자 -휘준-

by 휘준쭌 2025. 5. 23.

1960년대 말, 여름철이면 학교에서 오전 수업만 하고 동대문 수영장으로 가서,

온몸이 파김치가 되도록 수영을 배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체벌에 대한 긴장과 혹독한 훈련으로 허기진 채 수영장을 나서면

호떡, 냉차, 구운 감자 따위를 파는 리어카가 즐비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축구장 뒷길에서 지금의 전철역까지 띄엄띄엄 늘어선 먹거리들.
기름 둘러 프라이팬에 구운 감자가 석양빛에 번들거리면 왜 그리도 그게 먹고 싶었는지....
첫 집을 참고 지나 봤자 그런 리어카를 수십 개 지나쳐야 버스정류장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아줌마들은 사방에서 불렀습니다.
"학생, 회수권도 받아 어여 와~"
내 버스표 받아다가 자기 아들 주려는 것이겠지요.

10원만 내면 감자 두 개와 햇볕에 종일 데워져 미지근한 냉수지만 큰 주전자의 물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엄마에게 탄 회수권은 매일 남는 게 없기 때문에 군것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배가 너무 고파서 하나 남은 회수권을 들고 리어카 앞에 섰습니다.

감자를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리고 걸었지만 프라이팬에 쇠칼 뒤집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쇠칼 소리 들릴 때마다 침을 꼴깍이다가 에라 먹고 보자 했던 거지요.

그리고 차비가 없어서 동대문부터 마포까지 집을 향해 걸었습니다.

머리가 좀 큰 때라면 '누나, 한 번만!' 하고 넉살 좋게 버스에 타보기라도 했으련만

중학생 땐 그럴 요령도 없었습니다. 그 시절 추리닝은 귀해서 운동선수 아니면 입을 수 없었습니다.


투박한 재질이지만 말 그대로 유니폼이었고
선수랍시고 으스대던 모습에 구걸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터덜터덜 걸어서 광화문쯤 왔을 때 군것질한 배는 다 꺼졌습니다.

거기서 아현동까지 점점 무거워지는 가방에 엉기다시피 집에 오며 버스 회수권으로 배를 채운 일을 후회했습니다.

 

지금도 TV를 보다 감자 뒤집는 쇠칼 소리가 나면 그 옛날 구르마에서 굽던 감자가 되살아나 침이 꼴깍 넘어갑니다.

그런 제가 지금 먹을 것은 무한정 먹을 수 있고 또 찌는 살이 겁나 스스로 운동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좋아진 세상인가요.

 

먹을 걸 너무 잘 먹어서 성인병으로 세상을 일찍 떠난 친구들도 여럿 있습니다.

이젠 오래 살기 위해 적게 먹으라는 표어가 사방팔방 붙은 시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