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옆 칸에 아는 사람이 들었을 때,
작은 인기척으로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곳엔 신문을 들고 느긋하게 갈 때도 있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다급히 갈 때도 있지요.
아시아나 특파관리 시절, 표정뿐만 아니라 자세 전체가 일그러졌던 날의 얘깁니다.
배변의 고통을 참으며 화장실을 향해 복도를 걸었습니다.
계속 걷기 힘들 땐 벽보를 보는 척 돌아서서 쉬거나
무릎을 꼬고 까치발을 들며 내공을 쌓기도 했습니다.
오가는 사람과 눈인사를 나눌 때,
이를 악문 미소 때문에 들켰는지도 모릅니다.
가까스로 도착한 화장실 문 앞에서
점잔을 빼며 똑 똑 노크했는데
안에서 "누구세요?"하고 묻는 짱구가 있었습니다.
이 괴팍한 질문에 난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참을 수 없는 게 웃음뿐이겠는가.
입술에서 풋-하고 웃음이 터졌고, 그 소리는 뒤로도 샜습니다.
옆 칸으로 들어선 나는 괴로웠습니다.
물을 걸 물어야지 쓸데없는 대꾸를 해서 나를 웃긴
그 희한한 질문자는 무죄인가? 할 수 없이 나는 팬티를 벗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점점 시원해지는 노팬티의 촉감이 새롭고 좋았습니다.
막연히 짐작했던 생각보다 너무 시원하다 못해 선선한 느낌이랄까.....
얇은 면 한 장의 보온력이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특파관리실 앞엔 예쁜 여직원이 항상 지키고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그녀는 꼭 알 것만 같은 느낌.
걸리적거림과 허전함의 절묘한 만남, 그 경험을 사무실에서 느껴 본 사람에게 묻습니다.
노팬티의 촉감을 알게 해 준 화장실의 그 짱구에게
“외려 고마운 마음을 품어도 좋겠습니까?”
할 수 없이 알게 된 촉감, 이젠 가끔 즐기기도 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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