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혀와 돌담의 귀, 제주 옛이야기의 숨결을 걷다
제주라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푸른 바다, 솟아오른 한라산, 그리고 우뚝 선 돌하르방. 그러나 이 익숙한 풍경 뒤편, 혹은 그 익숙함 속 깊숙이 숨어있는 제주의 진짜 심장 박동을 느끼고 싶다면, 관광객의 북적거림을 잠시 뒤로하고 투박하게 쌓아 올린 검은 돌담이 끝없이 이어지는 옛길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제주의 진정한 이야기는 시끌벅적한 관광지 대신, 이곳 돌담 사이를 휘감아 도는 바람의 속삭임과, 그 바람의 모든 것을 묵묵히 들어준 돌담의 귀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돌담길은 마치 시간의 터널과 같아서,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수백 년 제주의 삶과 지혜가 바람처럼, 혹은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다가온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가 된다. 바람의 혀, 제주의 ..
2025. 12. 23.
휴애리 자연생활공원, 가을 산책의 핑크빛 초대장
제주 남원에 자리한 휴애리 자연생활공원은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다. ‘휴(休)’는 쉼이요, ‘애리(愛里)’는 사랑의 마을이라니, 이보다 따뜻한 초대장이 있을까. 이름만 들어도 벌써 벤치에 앉아 쉬고 싶은 기분이 드는데, 9월의 휴애리는 그야말로 계절의 화원, 아니, 가을 풍경의 종합선물세트다. 코스모스가 바람에 설레고, 핑크뮬리가 분홍빛 연기를 피워 올리며, 방문객들의 마음은 어느새 동심으로 회귀한다. 이쯤 되면 ‘공원 산책은 무료로 받는 심리치료’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코스모스, 가을의 손편지 휴애리를 찾는 9월의 첫인상은 단연 코스모스다. 길가와 정원마다 심어놓은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릴 때면, 마치 누군가 오래된 편지지에 꾹꾹 눌러쓴 가을의 편지를 받아 드는 기분이 된다. 꽃잎은 얇지만 그 속에..
2025.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