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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숲에서 나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 -휘준-

by 휘준쭌 2025. 7. 29.

안녕, 오랜만이야.
정말로 오랜만이지.
이렇게 천천히 걷는 건 몇 달 만인지,
이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은 몇 년 만인지
숲 속을 걷다 멈춰 선 이 자리에서
나는 너에게 처음으로, 아주 조용히 말을 건다.

나에게 보내는 편지
나에게 보내는 편지


사실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었지만
나는 너를 보지 않았다.
매일 거울 앞에서 얼굴은 들여다보았지만
네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피곤하지는 않은지,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요즘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그런데 오늘 이 숲길에서
나는 문득 너의 숨소리를 들었다.


아주 작은 들숨과 날숨,
바람결에 따라 흔들리는 풀잎처럼
살아 있다는 너의 증거가,
이 조용한 나무 사이에서 선명하게 느껴졌다.
숲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너를 꺼내주었다.
소란한 도시의 소음 속에 가려졌던
너의 작은 목소리를
내가 처음으로 듣게 된 오늘,
나는 비로소 너를 안다.


아무도 없는 이 숲길에서
나는 나를 기다리게 두었다.
서두르지 않았고, 무언가를 해내야겠다는
의지도 내려놓았다.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너는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동안 수고했어.”
그 한마디에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마다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았는데,
그 답은 언제나 네 안에 있었구나.
나를 이해하고, 나를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였구나.
예전엔 이런 숲길이 지루했지.
하지만 이제는 안다.


걷기 위해 걷는 길이 얼마나 소중한지.
목적 없이 걷는다는 건,
마음이 제자리를 찾고 있다는 신호라는 걸.
너는 늘 말없이 나를 기다려왔구나.
나는 이제 너와 잘 지내보고 싶다.
모든 계획과 일정, 관계와 기대 속에서
너를 잃지 않도록,
가끔은 너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주기로 한다.


그게 오롯이 너를 살리는 방법이자
나를 지키는 약속이니까.
앞으로도 네가 불안할 때
나는 너의 편이 되어주겠다.
네가 외로울 때
혼자 있더라도 혼자라고 느끼지 않게 해 줄게.


네가 방향을 잃었을 때
빨리 찾으려고 애쓰기보다
잠시 멈춰서도 괜찮다고 말해줄게.
오늘 이 숲길은
사실 아무 특별할 것도 없는 길이었지만,
너와 마주 앉은 이 벤치 위에서
나는 오래전 잃어버린 나를 되찾았다.
더 이상 바쁘기만 한 하루에 휩쓸리지 않고,
잠깐이라도 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로 한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 사이를 회복해 나가자.
편지의 끝에 무언가 대단한 다짐을 적고 싶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너는 원래 조용한 사람이니까.
그냥 오늘 하루,
이 나무 사이에서 웃은 너의 얼굴을 기억하자. 고마워.


참, 오랜만이야. 그리고 미안했어.
앞으로는 더 자주 찾아올게.
네가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기 전에
내가 먼저 손 내밀게.
오늘 숲에서 만난,
나의 가장 진짜인 나에게. 너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