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99

늙어가는 틈에 낀 틈바구니 -휘준- 같은 직장에서 30년 넘게 같이 늙은 동료 셋이 세 번째 만난다. 고교 동창이다. One table에 네 명이 좋은 것 같아 한 명을 더 물색 중인데, 만남 장소에서 집이 멀지 않은 친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한 명은 학교가 달라도 직장 동료였으면 좋겠다고 하고, 또 하나는 직업이 달라도 동창 중에서 구하기를 원했다. 직장 동료를 원하는 쪽에선 회사 에피소드나 경험담 나누기를 좋아하지만, 자꾸 과거 얘기 나눔은 좋은 방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재미있는 친구가 나타났다. 공대 4학년 때 매우 드물게 은행에 합격하여 지점장으로 정년퇴직한 친구다. 은행은 상대 애들도 떨어지곤 했지 않았나. 집도 우리 동네와 가까웠다. 반가운 마음에 대뜸 단톡에 올렸다.​두 사람 동의하시면 57회 동기 한 명 초대.. 2025. 6. 16.
윤여선의 土曜斷想: 배론 성지의 토굴과 백서 [토요 단상(土曜斷想)] (2025.06.14.)========{제 188회}======== 고향집 뒷산 계곡에는 큰 토굴(土窟)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른들 말씀으로는 6.25 전쟁 때 동란을 피하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파놓았던 굴이라 했지요.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그 토굴은 폐쇄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 우리 개구쟁이들의 놀이터나 쉼터가 되곤 했습니다.그 안에 들어가 누우면 땅 깊은 곳으로부터 미세한 울림이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더운 여름에도 어딘가로부터 바람이 스며들어 오는 듯한 시원함이 느껴졌습니다. 개구쟁이들은 이 굴에 만족지 않고 계곡 위로 좀 더 올라가 골짜기의 단단한 흙벽을 파내어 또 다른 토굴을 만들었지요.그 굴은 어른들이 알지 못하는 우리들만의 피난처가 되어, 혼날 짓을 저지르고.. 2025. 6. 15.
출근길에 만난 빵빵한 핫팬츠 -휘준- 무더운 여름날, 아침부터 만원 전철에 시달리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러나 출근시간을 조금만 늦추면 사람들 틈은 훨씬 넓어진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가는 행운을 얻을 때도 있다. 게다가 시야에 화사하거나 노출이 멋진 여인이 있을 땐 억세게 운수 좋은 날. 아름다운 여인이 옆에 있는 날엔 내 차림새를 한 번 보게 된다.빗물 떨어지는 우산 끝에 귀퉁이가 젖은 종이 가방이 올려다본 샐러리맨. 자주 들기 싫은 그것에는 아내가 다려준 근무복 3벌이 담겨 있다. 일주일 치를 한꺼번에 가져가라는 아내의 지혜를 선반 위에 가만히 올려놓고, 말쑥한 척 옷매무새를 고쳐 선다.앞엔 젊은 여인. 하얀 목 뒤로 가느다란 목걸이가 둥글지 않게 얹힌 모습에서 땀기운을 느끼며,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향기를 흠흠거린다. 등 뒤로.. 2025. 6. 14.
난생 처음 보는 고교 동창생 -휘준- 늦은 저녁을 먹는데 조문 메시지가 몇 개 들어온다. '어머니의 별세를 애도드리며, 고인의 명복을...'​바로 전화를 걸었다. "뭔 소리야, 우리 어머니 돌아가신 지 7년이 넘었는데?""동창 홈피에 부고 떴던데?""그으래?"확인해 보니 동창 중에 동명이인이 있었는데,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한 반에 60여 명씩 8반이라서 작은 학굔 아니었지만 동계 진학 제도로 대부분이 중고교 6년을 같이 다녔는데, 같은 학년의 동명이인을 몰랐다니 수긍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애들도 몰랐으니, 내게 위로를 보내는 것이겠지. 조문 메시지는 계속 들어왔다. 나는 메시지마다 즉답을 달았다. '동창회 부고 내 것 아니다. 동명이인이란다.' 부고에 적힌 계좌로 부조금을 보낸 친구들이 있어서, 일일이 답변을 아니 보낼 수는.. 2025. 6. 13.
뉴질랜드와 누질랜도 -휘준- 인천공항에 잠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공항은 항상 떠나고 들어오는 사람들로 붐빕니다.국제공항인데도 옛날엔 심야에 들어오는 비행기가 없어서 공항이 꿈벅꿈벅 잠들기도 했었지만, 요즘은 24시간 가동되기에 그곳은 항상 살아있습니다. 분위기가 들떠 있거나 포옹을 오래 나누는 사람들은 출국자들이고 피곤해 보이거나 말이 없는 사람들은 입국자들입니다. 어느 편에든 우리나라 5,60대 아주머니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산파들이지요. 그분들은 시끄럽고 질서를 잘 안 지키십니다. 조용하던 입국검사장이 시끌시끌해지면 영락없이 우리나라 비행기가 도착한 겁니다. 지방에서 온 단체 여행자들은 같은 색의 모자를 쓰거나 같은 색의 조끼를 입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체가 주는 소속감과 안도감의 도구이며 낯선 외.. 2025. 6. 12.
아들아, 정직하지 않아도 좋다 -휘준- '아들아, 정직하게 커야 한다.' 막내 녀석이 초등학생 시절 해수욕을 하다가 바다에서 뛰어나와 오줌 마렵다고 화장실을 찾을 때 순진하다고 웃을 게 아니라 숫기 쪽을 염려했어야 했다.위장 전입을 통해 목동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시켰더니 자기와 같은 중학 출신 친구가 없어 다니기 싫다며 유난히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아내와 난 별 제안을 다했다.등하교 때마다 승용차로 모시겠다. 핸드폰을 사주겠다. 반 석차가 중간만 가도 간섭하지 않겠다. 용돈은 두 배로 팍 늘려주겠다. 눈 딱 감고 보름만 버텨주어라. 다음 달에 전학시켜 주마.그래도 막무가내로 졸라대는 아이는 교실에서 가만히 앉아있어도 어느 친구가 다가와 '너 편법 전입생이지?'하고 물을 것만 같단다. 별 쇼를 다하다 부아가 난 듯 아내가 소리쳤다."야 이놈.. 2025.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