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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130

바다가 안 보이는 바닷가 카페 : 한림 ‘카페 고마워요' -휘준- 제주에는 바다 가까운 카페가 많다.아니, ‘바다 보이는 카페’라는 말이 이미 브랜드가 된 지 오래다.출입문을 열면 바다가 척 펼쳐지고,라테 잔 너머로 수평선이 보이는 뷰맛집들.하지만 나는 그런 전형적인 코스에서 한 발짝 비껴 나 있다.사람들이 바다로 몰릴 때, 나는 한림 서쪽의 조용한 동네로 향한다. 그 골목 어귀에 ‘카페 고마워요’가 있다.이름만 들으면 왠지 고백받는 느낌이지만,실제로 도착하면 ‘정말 고마워져 버리는’ 공간이다.우선,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그러니 뷰를 기대하고 온 사람은 다소 당황할 수도 있다.간판도 없다시피 해서,구글 지도에도 ‘여기 맞아?’ 싶은 위치다.하지만 그 낯선 의심을 품은 채작은 정원과 유리창문을 지난 순간부터이곳이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오래된 .. 2025. 7. 28.
저지리 곶자왈 속 비밀 : '하루나무'라는 카페 -휘준- 애월은 어느새 너무 유명해졌다.바다 앞 뷰 카페마다 차들이 밀려 있고,라떼 한 잔을 위해 줄을 서야 하는 곳이 되었다.그곳의 매력을 부정할 순 없지만,제주에 몇 번 다녀온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사람보다 숲이 그리워지는 시점이 온다.그럴 때 나는 저지리로 간다.애월의 옆 동네,지도에서 찾으려면 고개를 갸웃해야 하는 그 조용한 마을.관광 코스엔 빠지기 십상이고,택시는 도로명 대신 ‘그 삼거리 지나 오른쪽’이라 말해야 겨우 도착하는 그런 곳이다.간판 없는 카페, 하루나무처음 '하루나무'를 찾았을 땐,이 근방을 세 바퀴쯤 돌았던 기억이 난다.내비게이션에 나오는 주소는 정확하지 않았고,작은 표지판 하나 없이 길모퉁이에 그냥 존재하는 이 집을나는 카페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마당 안으로 조심스레 발을 디뎠을 때,‘혹시.. 2025. 7. 27.
윤여선의 土曜斷想 : 구두닦이 토요 단상(土曜斷想)] (2025.07.26.)========={제 194회}========오래전, 어느 월간지에 글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사무실 가까이서 구두 닦는 일을 하던 어느 미화원(美靴員)에 대해 언급했던 글이지요. 그 미화원은 여자분이었는데, 당시 인천공항의 물류단지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글의 내용 중에 문제 되는 부분은 없는 줄 알았는데, 이를 괜히 썼다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나중에 일어난 한 '사건' 때문이었습니다.그 글이 잡지에 실리고 난 어느 날, 당사자인 미화원 아주머니가 사무실에 들어와 아무런 이유 없이 직원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직원들 중 누군가와 시비가 벌어졌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 화를 내는 이유를 물어보았지만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직.. 2025. 7. 26.
냉장고에 들어가고 싶은 날, 이런 음식 어때요? -휘준- 여름, 입맛도 더위 먹는다찌는 듯한 무더위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에어컨 바람은 한계에 다다르고, 부채질은 이미 의미를 잃었다. 무언가를 먹기는커녕, ‘씹는다’는 행위 자체가 귀찮아지는 날이 있다. 밥상을 차리는 손도, 그걸 받아먹는 입도 동시에 파업 중이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냉장고 안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여름은 입맛을 앗아가는 계절이다. 유독 무기력하고, 아무리 먹어도 개운하지 않다. 더운 날일수록 몸은 에너지를 덜 쓰려 하고, 소화력은 떨어진다. 이럴 때일수록 무리한 식사는 오히려 독이다. 그래서 필요하다. 차갑고 가볍고, 조리 과정도 단순한 음식들. 입맛을 살리는 건 자극이 아니라 온도의 변화일 때가 있다. 한입 먹는 순간, 온몸이 시원해지는 그런 음식. 오늘은 그런 요리를 소개하려.. 2025. 7. 25.
여름휴가 대신, 내 방을 리조트로 만드는 법 -휘준- 여행 대신, 공간의 기분을 바꿔보자올여름엔 어디도 가지 않았다. 비행기 표를 예약하지도 않았고, 호텔 검색창도 열지 않았다. 대신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나에게 물었다. “지금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어디야?”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테라스가 있는, 나만의 조용한 리조트.’ 어쩌면 우리는 장소보다 분위기를 원하는 걸지도 모른다. 피서란 결국, 피곤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 꼭 어딘가로 떠나야만 가능한 건 아니다. 그러니, 올여름엔 내 방을 리조트처럼 바꿔보자. 떠나지 않아도 충분히 새로울 수 있다.공간은 생각보다 금세 달라진다. 정리되지 않은 책더미를 치우고, 낡은 러그를 걷어내고, 커튼 하나만 바꿔도 공기는 바뀐다. 테이블 위에 작은 식물 하나, 벽에 붙인 엽서 몇 장만으로도 .. 2025. 7. 23.
죽녹원과 메타세쿼이아길 -휘준- 올여름은 어딘가로 가고 싶으면서도, 그 어딘가가 너무 멀지 않았으면 좋겠고, 또 너무 유명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사진은 예쁘게 나왔으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덜 더웠으면 좋겠다는 욕심 많은 마음이 슬그머니 올라왔다.욕심은 욕심일 뿐이라고 누군가는 말했지만, 나는 그런 바람이 모여 만든 장소를 알고 있다. 전남 담양, 바람의 통로라 불릴 만한 그곳. 이름만 들어도 초록빛이 솟아오르는 그곳, 죽녹원과 메타세쿼이아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처음에 대나무숲이 무슨 재미일까 싶었다. 나무는 나무고, 그늘은 그늘이지, 대나무가 만든 그늘이라고 특별할 게 있을까? 그런데 막상 발을 들이고 나니, 이건 그냥 ‘그늘’이 아니었다.죽녹원의 바람은 바람 자체로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라,.. 2025. 7.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