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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130

낙엽을 태우면서 / 이효석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같이 뜰의 낙엽을 긁어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건만, 낙엽은 어느덧 날고 떨어져서 또다시 쌓이는 것이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30여 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건만, 날마다의 시중이 조련치 않다. 벚나무, 능금나무 ― 제일 귀찮은 것이 벽의 담쟁이다. 담쟁이란 여름 한철 벽을 온통 둘러싸고 지붕과 굴뚝의 붉은빛만 남기고 집안을 통째로 초록의 세상으로 변해 줄 때가 아름다운 것이지, 잎을 다 떨어뜨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벽에 메마른 줄기를 그물같이 둘러칠 쯤에는 벌써 다시 거들떠볼 값조차 없는 것이다. 귀찮은 것이 그 낙엽이다. 가령 벚나무 잎같이 신선하게 단풍이 드는 것도 아니요, 처음부터 칙칙한 색으로 물들어 재치 없는 그.. 2025. 7. 20.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고, 인생도 정리된다 -휘준- 1.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고 인생도 정리된다요즘은 하루에도 수십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들락날락해요.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고, 갑자기 튀어나오는 고민도 많고…근데 정작 그런 복잡한 마음을 말로 꺼내려면?“아 몰라, 그냥… 그렇다고!”이 한마디로 끝날 때 많죠.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머리가 맑아져요.글을 쓰려면 어쩔 수 없이 '생각 정리'부터 하게 되거든요.예전에 누가 저한테 물었어요.“생각이 정리돼야 글이 써지는 건가요,아니면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는 건가요?”제 대답은 이랬죠.“둘 다요.”진짜 그렇거든요.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고, 생각이 정리되면 내가 뭘 원하는지,어떤 사람인지, 지금 뭘 해야 할지가 조금씩 보여요.글쓰기가 ‘나를 마주하는 도구’라는 말, 괜히.. 2025. 7. 18.
자전거 타고, 아이스크림 들고: 우도에서의 반나절 -휘준- 나는 바다를 건너기 전부터 이미 반쯤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성산항에서 배를 기다리며, 작은 선착장에 앉아 파도를 바라보는 순간부터 그랬다. 우도행 배편은 그리 크지 않다. 마치 시골 버스처럼 정겨운 모양새였다.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들 틈에는 자전거 헬멧을 쓴 젊은이들, 유모차를 민 가족들, 그리고 나처럼 단출한 복장의 여행자들이 뒤섞여 있었다. 배는 출렁이며 15분 남짓의 짧은 항해를 시작했다. 뱃머리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우도를 향해 가는 그 시간은, 여행지로 이동하는 중이 아니라 '또 하나의 여행'처럼 느껴졌다. 바다를 바라보다 보면 생각이 참 단순해진다. “내가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았지?”라는 질문이, 잔잔한 파도에 실려 머릿속을 맴돈다. 파도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대답이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 2025. 7. 17.
삶의 광택 / 이어령 나는 후회한다. 너에게 포마이커 책상을 사 준 것을 지금 후회하고 있다. 그냥 나무 책상을 사 주었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어렸을 적에 내가 쓰던 책상은 참나무로 만든 거친 것이었다. 심심할 때, 어려운 숙제가 풀리지 않을 때, 그리고 바깥에서 비가 내리고 있을 때, 나는 그 참나무 책상을 길들이기 위해서 마른 걸레질을 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문지른다. 그렇게 해서 길들여져 반질반질해진 그 책상의 광택 위에는 상기된 내 얼굴이 어른거린다. 너의 매끄러운 포마이커 책상은 처음부터 번쩍거리는 광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길들일 수가 없을 것이다. 다만, 물걸레로 닦아 내는 수고만 하면 된다. 그러나 결코 너의 포마이커 책상은 옛날의 그 참나무 책상이 지니고 있던 심오한 광택, 나무의 목질 그 밑바닥으.. 2025. 7. 16.
느릿한 파도, 표선해변에서 민속촌까지 -휘준- 제주도는 항상 "핫플레이스"로 불린다. 하지만 정작 진짜 제주다움을 느끼려면, "핫"한 곳보다 "한적한" 곳을 찾는 편이 낫다. 예를 들어, 표선 같은 곳 말이다.제주도의 동남쪽, 지도에서 보면 귤껍질의 아랫부분 즈음에 조용히 붙어 있는 마을, 표선. 처음엔 “표선이 어디야?”라는 반응이었지만, 한 번 다녀오고 나면 “표선이야말로!” 하며 두 눈에 별을 담게 된다. 표선의 상징은 뭐니 뭐니 해도 표선해비치 해변이다. 이름만 들어도 고급 리조트가 연상될 정도로 우아한 이름이다. 사실 이름에 ‘해비치(haevichi)’가 들어가는 건 순우리말 ‘햇빛’에서 온 거라고 한다. 햇빛처럼 맑고 따사로운 바다라니, 기대치부터 올라간다. 실제로 표선해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수평선이 아니라 ‘수면선.. 2025. 7. 14.
종일 우중에 우당도서관을 찾다 -휘준- 우당도서관은 제주도의 3대 도서관 중의 하나다. 제주도서관, 한라도서관과 함께 제주도민의 도서관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용시간은 다른 곳과 같고, 매주 월요일이 휴관일이다.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전도민 독서 마라톤 대회이다. 독서 한 페이지당 마라톤 2미터 뛴 것으로 견주는 대회이다.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에 보이는 미니 인디언 텐트다. 텐트 앞에 주무시는 것을 삼가해주시고, 힐링 독서에 활용해 달라는 게시가 붙어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책을 읽고 있었다.^^ 2025. 7.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