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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100

🌲 자작나무 숲에서 스미는 마음 : 인제 여행기 -휘준- 자작나무 숲에 다녀왔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겨울을 떠올린다. 눈 쌓인 숲, 하얀 나무껍질, 그 사이로 빨간 패딩 입은 사람이 걷는 풍경. 사진첩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다. 하지만 나는 한여름, 그것도 햇살이 강하게 쏟아지는 7월에 그 숲을 찾았다. 누군가 말하길, 여름의 자작나무는 겨울보다 덜 화려하지만, 훨씬 더 따뜻하고 조용한 시간을 준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이었다. 여름의 자작나무 숲은 녹음 속에 숨어 있는 작은 평화였고, 초록의 파도에 안긴 흰 줄기의 조화는 그 어떤 계절보다도 풍요로웠다. 강원도 인제읍 원대리. 서울에서 두 시간 반쯤 달리면 만나는 이 마을은, 지도상으로는 가까워도 마음속으로 다가가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도로를 벗어나 좁고 굽이진 길로 접어들.. 2025. 7. 5.
윤여선의 土曜斷想 : 잉여 인간과 남은 사람들 [토요 단상(土曜斷想)] (2025.06.28.)========={제 190회}======== 육군 장교였던 막내 고모부님은 제대 후 한 때 영화의 엑스트라 일을 해보셨던 적이 있습니다.군인 연금 덕분에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무료한 시간들을 달래기 위해 잠시동안 엑스트라 일을 하셨던 것이지요.주연 배우의 들러리에서 조연 역할을 하며 나름대로 영화 제작의 한 부분을 맡는다는 자부심도 갖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언젠가는 곤룡포를 입은 임금의 모습으로 어좌에 앉아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셨던 적도 있지요.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또한 엑스트라 연기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던 것임엔 분명합니다.엑스트라 일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얘기해 주신 적이 있는데, 가장 힘든 것.. 2025. 6. 28.
할인 앞에서 흔들리는 나이, 칠순 -휘준- “인생은 짧고, 할인은 순간이다.”이 문장을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내 마음을 정확히 찌른다.칠십 평생을 바람처럼 살아왔건만, 요즘은 “경로우대 됩니다” 한 마디에 괜히 마음이 솔깃한다.찬란한 청춘의 마무리쯤은 할인으로 포장되는 것인가. 그런데 말이다. 할인, 생각보다 별거 없다.“버스는 무료겠네요?”아니다. 돈 낸다.주변 사람들 중 누군가는 아직도 이렇게 묻는다.“어르신은 버스 공짜죠?”그 말 들으면 마음속에서 버스 두 대가 쿵쾅쿵쾅 충돌한다. 수도권 지하철은 무료다. 버스는 아니다.심지어 시내버스는 카드 찍을 때 “삑!” 소리도 크다.그 삑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이 요금은 자존심이 아니라 교통비입니다.”“영화는 시니어 할인 돼요?”웬걸. 안 해준다.영화관에 가면 늘 살짝 .. 2025. 6. 27.
<7> 나만의 콘텐츠가 된다 -휘준- ✍️ 나만의 콘텐츠가 된다 — “글이 쌓이면 나만의 목소리가 생긴다”그냥 시작한 글이, 어느새 나를 닮아간다처음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썼습니다.“오늘 날씨가 덥다. 에어컨도 지쳤겠다.”“아내가 김치볶음밥을 해줬다. 역시 밥심이다.”그냥 일기처럼, 메모처럼, 아침 기지개처럼 쓴 글들이어느 날 문득 뭔가 결이 생기기 시작합니다.문장이 조금씩 매끄러워지고,표현이 풍성해지고,무엇보다 글에 ‘내 말투’가 묻어나기 시작합니다.어떤 사람은 글이 자꾸 시처럼 흘러가고,어떤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유머를 집어넣습니다.누군가는 관찰이 정밀해지고,또 어떤 사람은 공감의 물결을 만들죠.이게 바로 글의 힘이자시간이 만들어내는 콘텐츠의 정체성입니다.처음엔 '그냥' 썼지만,계속 쓰다 보면 어느새 ‘이건 누구 글 같다’는 인상이 생.. 2025. 6. 26.
<6> 삶의 태도가 바뀐다 -휘준- 🪴 삶의 태도가 바뀐다 — 글은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든다글을 쓰다 보면, 나를 다시 보게 된다“사람은 쉽게 안 바뀐다”는 말을 믿었습니다.나이 일흔이 되도록 꾸준히 바뀐 건 체중뿐이라 생각했거든요.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하니, 이상하게 마음가짐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누가 잔소리를 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예전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으면 속으로 꿍하게 미워했습니다.“그 사람 참 이상하지 않아?” 혼잣말에 신경을 거칠게 태우곤 했죠.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혹시 내가 저 사람처럼 비쳤던 적은 없었을까?”글을 쓰면,타인의 행동을 ‘소재’로 삼기 전에먼저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객관화라는 어려운 단어 대신,그저 내 문장을 읽는 나의 눈이 생기거든요.그리고 그 눈은 아주 솔직.. 2025. 6. 25.
<5> 창의적 사고가 자란다 -휘준- 💡 창의적 사고가 자란다 — “일상도 상상도 문장으로 탄생한다”평범한 하루에도 ‘다른 눈’이 생긴다글을 자주 쓰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뭔가를 ‘다르게’ 보기 시작합니다.예를 들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내의 잔소리를 들으면보통은 속으로 이렇게 말하죠.“아이고 또 시작이네…”그런데 글을 쓰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오, 오늘은 서사 구조가 있군. 어제의 복선이 오늘 갈등으로 연결되고 있다.”혹은“이 감정의 폭발은 3일 치 설거지 미이행으로 누적된 결과다. 플롯이 아주 탄탄하군.”일상이 다큐였는데, 어느 날부터 살짝시트콤이 되고, 에세이가 되고, 소설이 됩니다.왜냐고요?글을 쓰는 뇌는 단순히 ‘일어난 일’을 넘어서‘어떻게 보면 더 재미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하거든요.그게 바로 창의성의 시작입니다.. 2025.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