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

윤여선의 土曜斷想 : 한일전 경기장의 생생한 분위기

by 휘준쭌 2025. 8. 10.
    (2025.07.19)

========={제 193회}========

 

며칠 전에는 살아오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일을 새롭게 해 봤습니다.

국제적인 축구시합

그것도 늘 관심 있게 보아온 한.일 라이벌전을, 텔레비전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관람했던 것이지요.

지금까지는 주로 텔레비전을 통한 중계방송만 보아왔는데, 이번 축구경기는 집에서 가까운 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리고, '동아시안컵' 결승인 데다, 한. 일 라이벌 전이라는 데서 처음부터 현장 관람의 유혹을 강하게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입장권 예약 방법도 모르고, 운동장까지 가는 것도 번거롭게 느껴져 망설이고 있던 차에, 마침 아들이 관람권 두 장을 구입했으니 축구장으로 나오라는 연락을 해 와, 국제적인 이벤트로서의 축구 시합의 현장 관람을 평생 처음으로 결행했던 것이지요.

여유 있게 출발한다고는 했지만, 경기장 멀리서부터 차가 밀리기 시작하더니, 막상 운동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주차장이 만차(滿車)라며 차를 돌려 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경기는 이미 시작되었는데, 운동장 밖으로 나와 한참을 헤매다 가까스로 한 가게 앞에 차를 대고, 아들을 만나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니, 벌써 전반전이 끝나 있었습니다.

 

전광판에 0:1이라는 스코어

전광판 표시를 살펴보니 전반전에서 일본에게 한 골 먹혔다는 표시였던 것이지요.

미르스타디움이 워낙 커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왔는데도 의외로 남은 자리가 많아, 예약석에 앉지 않고, 아들과 함께 한국 진영 가까운 자리로 옮겨 앉았습니다.

 

그동안은 중계방송만 보아 왔기 때문에 미처 몰랐지만, 많은 사람들이 애써 경기장을 찾아와 관람하려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경기장의 분위기에 흠뻑 젖고 싶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이지요.

 

거실의 소파에 앉아, 중요한 장면의 클로즈업과 리플레이를 편하게 보는 것도 물론 좋긴 하지만, 경기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은 현장에서의 직접 관람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게다가 붉은 악마가 이끄는 응원과 관중들의 힘찬 함성은 현장에서의 직접 관람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지요.

 

붉은 악마라는 우리 고유의 축구 응원단

 

<붉은 악마>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우리 고유의 축구 응원단이고, 이들이 만드는 응원 분위기는 경기장 전체를 압도합니다.

우리 선수가 적진을 뚫고 쇄도(殺到)할 때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함성은 오직 현장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일체감의 통쾌한 표출입니다.

 

우리 선수들이 수세에 몰리거나, 사기가 떨어졌다 싶을 때,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사기를 올려줄 때는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시울 마저 뜨거워지더군요.

.
이번에 한.일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동안, 인간은 그의 생(生)이 다할 때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도록 운명 지어진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축구 관람을 통해 전혀 알지 못했던 스포츠라는 새로운 분야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물론 스포츠에 대해 몰랐다거나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은 이의 석연치 않은 측면만 주로 보아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도 '3S'라는 용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Sports', 'Screen', 'Sex'의 3S는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어휘들이지요. 이 셋 중 가장 앞에 놓인 것이 '스포츠'인 것입니다.

 

역대 군사정부가 독재에 대한 반감(反感)을 완화하기 위해 국민들의 관심과 시선을 '스포츠'와 '영화나 텔레비전', 그리고 '섹스' 쪽으로 유도하려 했다는 일반적인 선입감이 스포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이지요.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인간사에서 스포츠처럼 깨끗하고, 공정하고, 정직한 부분도 없는 게 사실입니다. 스포츠가 인류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평화'와 '화해'입니다.

 

고대 올림피아드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은 올림피아드에서 경기가 열리는 1~3개월 동안은 전쟁을 멈추고, 심지어는 사형집행도 중지했다는 것이지요. 오늘날에도 전쟁과 이념을 떠나 거의 모든 국가가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도 스포츠가 지닌 평화와 화해의 정신 때문이지요.

스포츠가 인간에게 주는 또 하나의 고귀한 교훈은, 정정당당한 경쟁과, 결과에 승복하는 페어 플레이 정신입니다.

 

힘들게 닦아온 기량을 혼신을 다해 경기에 쏟아붓지만, 경기가 끝나면 결과에 승복하고, 웃는 얼굴로 경쟁을 벌였던 상대방 선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악수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스포츠입니다. 스포츠가 보여주는 이러한 아름다운 모습은, 국민들에게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추한 싸움만 보여주는 오늘날의 정치가들이 본받고 배워야 하는 점입니다.

 

일본에게 0:1로 져 아쉬움이 크지만, 개인적으로는 잠시나마 예전 젊었던 시절의 한 때로 돌아간 듯한 행복을 느끼게 해 준 고마운 축구 경기 관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