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단상(土曜斷想)] (2025.08.09)
========={제 19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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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성당 교우 몇 명과 함께 강원도 평창에 가서 이틀 동안 잘 지내고 왔습니다. 피서라기보다, 평소에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끼리 풍광이 수려한 곳을 찾아가 함께 휴식을 취하며 이런저런 회포를 풀었던 것이지요.
강원도 평창은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곳인 만큼 산이 높고, 골도 깊은 청정지역입니다. 다른 교우들이 캠핑장의 짙은 나무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담소를 나누고 있는 동안, 준비해 간 낚싯대로 물이 힘차게 내려오는 냇가에 내려가 낚시를 했습니다. 깊은 골짜기를 굽이쳐 내려오는 풍부한 물만큼 고기들도 많아, 짧은 시간 동안 적으나마 찌개를 끓일 수 있을 정도의 물고기를 낚았지요.
어린 시절의 고향냇가
흐르는 물속에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동안, 마음은 줄곧 어린 시절 고향의 냇가를 넘나들었습니다. 평창의 좁고 물길이 빠른 개울과 달리, 고향의 마을 앞에는 폭이 넓은 백사장과 함께 넓은 내[川]가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지요.그 냇물의 물길이 빠른 곳을 찾아가, 물 한가운데 서서 낚시를 드리우면 물고기가 수월찮게 낚여 올라왔습니다.
주로 피라미 종류였지만, '칠어(七魚)'라 불리는 '끄리'등 큰 고기도 잡혔지요. 물고기를 많이 잡은 날은 단백질 맛보기 힘든 시골에서 모처럼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지금은 단백질의 공급원으로서 물고기를 잡기보다, 그저 낚시 줄에 매달려 나오는 고기의 몸부림을 통해 느끼는 '손맛'을 즐기기 위해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낚시가 스포츠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추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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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어느 시기부터 낚시 도구를 사용해 물고기를 잡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원시 시대의 동굴 벽화 가운데 물고기 그림이 보이고, 낚시도구처럼 여겨지는 뼛조각이 유물 가운데서 발견된다는 점에서 아마도 인류의 삶과 함께 시작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금속이 개발되면서, 동물의 뼈를 깎아 만든 낚시 바늘이 금속제로 대체되고, 중세에 이르러 귀족들의 중요한 취미 중 하나로 발전되었지요. 고대 중국에서는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 자연 속으로 들어간 선인(仙人)들의 유유자적한 모습을 낚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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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산에는 새가 날지 않고
모든 길에 인적이 끊겼다.
외로운 배에 도롱이 걸치고 삿갓 쓴 늙은이
눈 내리는 추운 강에서 홀로 낚시를 한다.
(千山鳥飛絶 萬經人踪滅 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중국 당나라 시인이자 문필가로서, 당.송 8대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유종원(柳宗元)의 <강설(江雪)>이란 시입니다.
눈 내리는 추운 강에서 낚시를 하는 노인의 모습은 속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연 속에 하나로 녹아있습니다.
낚시에 걸려있는 세 가지 뜻
"낚시에는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미끼로 고기를 낚는 것은 녹(祿)을 주어 인재를 발탁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좋은 미끼, 즉 후(厚)한 녹봉에 좋은 인재가 목숨을 걸고 일하는 것이지요. 세 번째로는, 낚은 고기의 크기에 따라 그 쓰임새가 다른 것처럼, 사람마다 다른 능력과 소질에 따라 알맞은 지위나 역할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기원전 11세기 무렵, 강태공(姜太公)이 그를 찾아온 주나라의 문왕에게 한 말입니다. 군왕(君王)이 인재를 발탁하는 방법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을 낚시에 비유한 것인데, 강태공, 즉, 태공망(太公望)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육도삼략(六稻三略)>의 가장 첫머리에 나오는 말입니다.
강태공은 70세가 되도록 관직을 맡지 못한 채, 집 근처 위수 강가에서 낚시질만 하며 세월을 보냈다고 하지요. 생활이 어려워 집을 나갔던 아내가 강태공이 부귀해진 후 다시 돌아오자, "한번 엎질러진 물은 물동이에 다시 담을 수 없다[覆水不返盆]"고 한 고사(故事)는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강태공의 낚시
강태공이 강에 드리웠던 낚시는 일반적인 바늘이 아니라, 갈고리가 없는 곧은 낚시였다고 하지요. 혹은 낚시가 물로부터 세치 높은 곳에 떠 있었다고도 합니다. 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세월만 낚기 위한 것이었다는 뜻이지요. 오랜 기다림 끝에 문왕을 만나 그를 도와 주 나라를 세우고, 그 공으로 제나라를 받아 최초의 군주가 된 사람이 강태공입니다.
"준비된 기다림은 가장 강한 전략이다."
육도삼략 가운데 나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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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알려주고자 했던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의 '로버트 래드포드'가 감독을 맡고, '크레이그 셰퍼'와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입니다. 목사인 아버지와 두 아들 간의 사랑과 아픔을 미국 몬태나주 강가에서의 송어 낚시라는 상징을 통해 보여주는 이 영화는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거의 돕지 못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베풀 것인지, 얼마나 자주 베풀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설사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완전한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낚시를 신앙처럼 사랑했던 작은 아들 '톰'이 폭력배들에게 맞아 죽은 후, 그를 회상하며 강단에서 설교하는 '맥클레인' 목사의 말속에는 작은 아들을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을 마음껏 베풀어 주지 못했던 회한으로 가득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들의 현재의 삶과 안생 자체도 낚시의 연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삶이 녹아 흐르는 인생의 외줄기 강가에서, 그 위에 떠 내려오는 사랑, 명예, 행복, 운, 부(富), 건강 등을 낚기 위해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우리가 현대의 또 다른 강태공들이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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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여선/관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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