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단상(土曜斷想)] (2025.06.28.)
========={제 190회}========
육군 장교였던 막내 고모부님은 제대 후 한 때 영화의 엑스트라 일을 해보셨던 적이 있습니다.
군인 연금 덕분에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무료한 시간들을 달래기 위해 잠시동안 엑스트라 일을 하셨던 것이지요.
주연 배우의 들러리에서 조연 역할을 하며 나름대로 영화 제작의 한 부분을 맡는다는 자부심도 갖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곤룡포를 입은 임금의 모습으로 어좌에 앉아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셨던 적도 있지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또한 엑스트라 연기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던 것임엔 분명합니다.
엑스트라 일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얘기해 주신 적이 있는데, 가장 힘든 것이 야간 촬영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촬영 일정이 주연 배우에게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김밥이나 간단한 도시락으로 식사하고, 주연 배우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일의 대부분이라 하셨지요. 주연 배우가 제 시간에 나타나면 다행이지만, 겹치기 출연 등으로 한정 없이 늦어지는 때도 있고, 아예 오지 않는 때도 있다고 했습니다.
주연 배우가 늦게 올 경우, 그가 올 때까지 무한정 기다려야 하고, 만일 다른 일 때문에 아예 오지 않을 때에는 하는 수없이 한밤중에라도 신변품을 싸들고 발길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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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엑스트라(extra)'는 '나머지', 즉, '잉여(剩餘)'를 뜻하는 말이지요. 중심이 되는 사물 주변의 미미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혹은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도 일컬어지지요.
영화 촬영의 경우, '단역 '배우'라든지, '보조 연기자'라는 좋은 말도 있는데 왜 굳이 '엑스트라'라는 말을 썼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영화 제작을 위해 희생되는 엑스트라 연기자들의 애환을 떠올리다 보면, 세상살이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많이 있음을 느낍니다.
작가 '손창섭'의 단편 소설 <잉여인간>은 주류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손창섭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작품 속의 인간들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그저 삶이라는 물결 위에 떠 부유(浮遊)할 뿐입니다.
치과 의원 원장으로서 성실히 살아가지만, 임대료와 간호사의 월급조차 제 때 주지 못하는 서만기. 세상을 향한 비분강개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불평불만 분자 채익준. 세상살이에 대한 모든 뜻을 잃은 채 아내의 눈치만 보며 살아가는 무능한 인간 천봉우.
이 소설의 인물들은 대부분 주류(主流) 사회에서 밀려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곳을 향한 분노와 저주, 또는 무관심으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입니다.
치과 의원이 세든 건물의 소유주로서 임대료를 제때 내지 못하는 것을 빌미로 원장 서만기를 유혹하는 천봉우의 아내와, 서만기를 짝사랑하는 간호사, 그리고 형부만 바라보며 결혼조차 하지 않는 서만기의 처제조차도 주류사회에 어울리지 못하는 인물들입니다. 이 작품을 쓴 작가 손창섭 조차도 주류 문단에 어울리지 못헀던 사람이지요.
그 자신도 또 다른 하나의 잉여인간으로서 우리나라의 문단에 적응하지 못하고 1973년에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은둔해 살다가 2010년에 그곳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공부하고 일본인 부인과 결혼했던 그는 아마도 한국의 주류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껄렁껄렁한 시나 소설이나 평론 줄을 쓴다고 해서 그게 뭐 대단한 것처럼 우쭐대는 선민의식, 말하자면 문화적인 것 일체와 문화인이라는 유별난 족속 일체가 싫은 것이다.
-손창섭, <신의 희작(戱作)> 중
그는 또 그의 대표작이라할 수 있는 <잉여인간>으로 '동인문학상'을 탔을 때 당선소감으로 다음과 같은 말도 했지요.
"하고 많은 물건 가운데 하필이면 인간으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 일찍이 나는 인간행세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조금도 자랑을 느껴본 적이 없다."
작가 손창섭 본인이나 그의 작품들 속의 인물들처럼 세상에는 주류에 들어오지 못하고 변두리에 머물러 사는 인간들이 많지요. 인간 사회에는 세 부류의 인간군(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심인(中心人)'과 '참여인(參與人)'과 '주변인(周邊人)'이지요.
사회의 중심에 선 중심인과 중심인의 주변에서 그를 돕는 참여인, 그리고 주류 사회의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주변인들이 그들입니다. 이들 중 '주변인'들을 '엑스트라', 혹은 '잉여인간'이라 불러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구성원의 많은 부분을 이루는 이들에 의해 인간 사회는 살아 움직이는 것이지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인간군에 속해 있으리란 생각입니다. 엑스트라들이 없으면 영화가 제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처럼, 인간 사회에 이 주변인들이 존재하지 않을 때, 삶은 무미건조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중심인들과 참여인들이 주변인, 즉 엑스트라들에게 관심을 갖고, 때로는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엑스트라의 한 사람으로서 오지않는 주인공을 기다리며 한 밤중의 어두운 언덕길을 무연(無然)히 내려다보고 계셨을,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지금은 계시지 않는 막내 고모부님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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