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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할인 앞에서 흔들리는 나이, 칠순 -휘준-

by 휘준쭌 2025. 6. 27.

“인생은 짧고, 할인은 순간이다.”

이 문장을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내 마음을 정확히 찌른다.
칠십 평생을 바람처럼 살아왔건만, 요즘은 “경로우대 됩니다” 한 마디에 괜히 마음이 찡하다.
찬란한 청춘의 마무리쯤은 할인으로 포장되는 게 이 시대의 관행인가.

 

그런데 말이다. 할인, 생각보다 별거 없다.

“버스는 무료겠네요?”
아니다. 돈 낸다.

주변 사람들 중 누군가는 아직도 이렇게 묻는다.
“어르신은 버스 공짜죠?”
그 말 들으면 마음속에서 버스 두 대가 쿵쾅쿵쾅 충돌한다.

 

서울 지하철은 무료다. 버스는 아니다.
심지어 시내버스는 카드 찍을 때 “삑!” 소리도 크다.
그 삑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 요금은 자존심이 아니라 교통비입니다.”

“영화는 시니어 할인 돼요?”
웬걸. 안 해준다.

영화관에 가면 늘 살짝 기대한다.
창구 직원이 “어르신 할인 됩니다” 하길.


그런데 젊은 직원은 묻지도 않는다. 그냥 정가 결제창이 떡 하니 떠 있다.
한 번은 용기 내어 물었다.
“시니어 할인 없나요?”
그 직원, 당황한 표정으로
“아… 지금은 그런 혜택은 없습니다.”

 

그 순간 내 눈앞이 1.85:1 와이드 화면처럼 넓어졌다.
주인공은 나고, 장르는 씁쓸한 다큐였다.

“경로우대”라는 이름의 양날검
경로우대. 참 고마운 말인데, 왜 이렇게 입에 안 붙는지 모르겠다.
왠지 모르게 ‘나는 아직 괜찮다’는 증명서를 가슴팍에 달고 다니는 기분이다.

식당에서
“어르신 두 분 자리 있으세요.”
라는 말을 들으면, 한편으론 고맙고, 한편으론
‘저기요, 저 아직 테니스 치고 자전거도 탑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그런데 또 웃긴 건, 실제로 할인해 준다고 하면…


눈빛이 반짝인다.
마음과 현실 사이의 줄다리기, 이게 바로 칠순의 짜릿한 스포츠다.

‘어르신 요금제’, 써본 후기
경로우대가 되는 곳은 생각보다 적지만, 되면 현실감이 팍팍 든다.

재작년 경주에 갔을 때 일이다.

석굴암 불국사 등 사람이 많은 곳은 70세부터 경로할인이라고 쓰여있어서 꼼짝없이 돈 내고 들어갔다.

그런데 이제 만 70세고 생일도 지났으니, 어디든 자신 있다.

작년 우리 나이 70세 땐 아들아이 성화에 칠순여행으로 베트남을 다녀왔다.

대청봉 두 번, 지리산 천왕봉 두 번, 백운대 두 번, 오대산 태백산 등을 다녔다.

칠순들은 잘 가지 않는 곳이다.


칠순들이 잘 가는 곳은 이런 곳들이다:

미술관/박물관 → 지역 따라 무료. 문화생활은 할 만하다.

동네 헬스장 → 오전 한정 할인. 근데 오전에 자꾸 졸림.

문화센터 강좌 → 종이 접기부터 스마트폰 교실까지. 자존심은 잠시 넣어두자.

수목원, 공원 입장료 → 무료 또는 천 원. 여긴 자주 가도 눈치 안 보임.

단, 모든 것이 혜택만 있는 건 아니다.


시간은 많아졌고 지출은 줄었지만, 자존심을 지갑에 접어 넣는 기술이 필요하다.

체면보다 실속, 그것도 내 나이의 특권
처음엔 ‘내가 벌써 경로?’ 싶었지만, 이제는 안다.
할인은 단순한 가격 차감이 아니라 삶의 훈장이라는 걸.
조금은 느긋해져도 되는 나이, 이제는 ‘싸게 살 자격’도 있는 거다.

이쯤 되면 ‘체면’과 ‘실리’ 사이에서 한쪽으로 기울어야 한다.
내가 선택한 쪽은… 실리다.
왜냐고? 체면은 남들이 챙겨주지 않지만,
할인은 내가 챙기면 바로 적용된다.

 

거기다가 나는 블로거다. 칠순 블로거는 많지 않다. 내년엔 유튜버가 된다.
나이 들수록 할인을 당당히 누리는 법을 배운다.
체면도 좋지만, 남은 삶의 스킬은 잘 쓰고 덜 쓰는 법이다.
연금은 고정이고, 소비는 예술이다.
그 예술의 첫걸음은 바로, 할인이다ㅎㅎ. 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