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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도시를 깨우는 일꾼들 : 5. 새벽 꽃시장 상인

by 휘준쭌 2025. 8. 17.

 

꽃시장 상인

   아침 6시, 여전히 반쯤 잠든 도시를 벗어나 강변 쪽으로 나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공기 속에 섞인 것은 매캐한 매연이 아니라, 은은하고 진한 꽃향기다. 트럭과 사람들, 플라스틱 상자와 포장지,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색깔들이 모여 있는 곳. 바로 새벽 꽃시장이다.

 

   반쯤 잠든 도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꽃은 오후나 저녁, 누군가를 위해 준비된 선물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꽃의 하루는 이른 새벽, 아직 해가 뜨기도 전부터 시작된다. 오늘 나는 이 시장에서 20년째 장사를 한다는 박미정 씨를 만났다.

 

 “어서 와요. 이 시간에 처음 오셨죠?”
 그는 화려한 장미 한 다발을 묶던 손을 멈추고, 미소를 지었다. 주름 사이로 묻어나는 피곤함 속에도, 눈빛은 맑았다. “여긴 새벽이 제일 바쁜 시간이에요. 소매상, 꽃집, 호텔, 행사장 다 여기서 꽃을 가져가죠. 6시면 이미 절반은 거래가 끝나요.”

 

 시장 안은 예상보다 훨씬 활기찼다. 각 부스마다 트럭이 멈춰 서고, 사람들은 바삐 상자를 실었다 내렸다. 경매가 막 끝난 꽃들이 줄지어 놓였고, 새로 들어온 수국, 백합, 튤립, 장미들이 형형색색으로 반짝였다.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거대한 냉풍기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손놀림은 그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이건 오늘 아침 경매에서 산 장미인데, 색이 참 곱죠?”
 박 씨는 한 송이를 꺼내 보여줬다. 새벽 이슬이 아직 잎에 맺혀 있었고, 줄기는 탄탄했다. “꽃은 하루 차이로 가격이 확 바뀌어요. 날씨, 수요, 행사 시즌에 따라 다르죠. 그래서 눈이 빨라야 하고, 손도 빨라야 해요.”

 

 그는 내게 경매의 규칙을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새벽 3시, 경매장은 짧고 빠른 말들이 오가며 가격이 결정된다.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는 거래 속에서 원하는 꽃을 확보하려면 경험과 감각이 필수다. “초보 땐 그냥 예뻐 보여서 샀다가, 팔지도 못하고 버린 적이 많아요. 그때 돈이 얼마나 아까웠는지.” 그는 고개를 저었다.

 

 손전등을 들고 꽃고르기

 

   시장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꽃 고르기’였다. 전국 각지에서 온 소매상들이 손전등을 들고 꽃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줄기의 길이, 잎의 상태, 꽃잎의 펼쳐짐 정도를 눈으로 재고 손끝으로 느꼈다. 좋은 꽃은 금세 팔려 나갔다. “여기선 꽃이 상품이자 생계예요. 감상만 하다간 금방 놓쳐요.” 박 씨의 말이 귀에 남았다.

 

 6시 30분, 시장은 여전히 붐볐지만, 장사꾼들의 표정에는 조금씩 여유가 돌기 시작했다. 박 씨는 커다란 양동이에 물을 채워 새로 들어온 꽃들을 넣었다. “물에 넣는 것도 기술이에요. 온도, 절단 각도, 보존제… 다 맞춰야 오래 가죠.” 그는 장미 줄기를 대각선으로 자르며 말했다.

 

 나는 물었다. “이 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어요?”
 그는 잠시 손을 멈추더니, 먼 곳을 바라봤다. “코로나 때요. 행사, 결혼식, 다 취소됐죠. 꽃은 팔 데가 없는데, 냉장고에 두면 하루이틀만에 시들어 버리잖아요. 그때 버린 꽃들이… 지금도 생각하면 속이 쓰려요.” 목소리가 낮아졌다.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

 

 하지만 그는 곧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꽃을 그만두진 못했어요. 힘들어도, 매일 새벽에 이 향기를 맡으면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이 나거든요. 꽃은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요. 손님이 꽃을 받아 웃는 순간, 힘든 거 다 잊어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주변 상인들은 하나둘씩 짐을 싸기 시작했다. 트럭 짐칸에 꽃이 가득 실리고, 시장 밖으로 향했다. 거기 실린 꽃들은 몇 시간 뒤 도시 곳곳에서 축하와 위로, 고백과 사과의 순간을 장식하게 될 것이다.

 

 해가 떠오르기 전, 나는 시장을 나왔다. 꽃향기가 옷과 머리카락에 깊게 배어 있었다. 돌아보니, 시장은 이미 다음 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꽃은 매일 새롭게 피어나지만, 그 새벽을 가꾸는 손들은 오래도록 변함없이 거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