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122 어휴 사기꾼님, 정말 감사합니다 -휘준- 교회에서 부른다며 아내가 아침 일찍 나가버린 날, 이런 아침이 흔치 않아 새로 사 온 sttepper도 해보고 설거지까지 했다. 설거지 해치우기는 아내의 칭찬을 듣는데 가장 확실한 일감인데, 세제를 약간만 쓰는 그릇 닦기는 나의 특기이다. 9시에 문 여는 도서관에 가려고 가방을 메며 핸드폰을 찾는데 없다. 내 방에 없으면 거실엔 분명히 있던 핸드폰이 오리무중이다. 내 방을 한 번 더 뒤지고 거실의 소파 밑까지 훑어도 없다. 주방에도 없다. 혹시 화장실에? 없다. 나가야 하는 시간이 지나가자 슬슬 초조해진다. 배터리 잔량도 모르고, 진동으로 해놓은 폰이라 못 찾으면 난감한 일이 벌어진다. 두 식구 사는 집이라 아내 폰으로 찾아야 하는데, 오늘은 아내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다. 밖엔 비가 오는데 우산 없.. 2025. 4. 30. 무식을 고치는 약이라도 있었으면 -휘준- 무식한 걸 고칠 약은 어디에도 없다네5년 전 처음 안경을 썼을 땐 생각보다 훨씬 선명히 보인 세상에 감탄했었다. 안경의 위력이 신기하기도 하여 그것을 벗어 이리저리 뜯어보기도 했었다. 당시 텔레비전 화면이 흐린 것은 낡은 기계 탓이므로, 어느 때고 화질이 조금 더 나빠진 때 즉각 바꾸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안경을 쓰고 보니까 화면이 그렇게 잘 보일 수가 없었다. 멀쩡한 재산을 버릴 뻔했다.. 반년 가까이 텔레비전 탓만 하며 흐릿한 화면을 보아온 나의 우매함은 그래서 그 끝이 유쾌했었다. 그러나 요즘에 나타난 나의 무지는 그렇지 않다. 책을 볼 일이 많아졌고 모니터부터 켜야 되는 업무 앞에서 눈이 쉬이 피로해지기에 안경 탓을 했었다. 하지만 멀쩡한 안경이 아깝기도 하여 지금보다 조금.. 2025. 4. 29. '후사함'과 사물함이 같다구? -휘준- 5분의 여유 '전철역까지 도보 5분' 이는 아파트 분양광고에 흔한 문구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내가 현재 사는 곳은 정말 5분 거리고 동네도 마음에 든다. 성인 남자의 빠른 걸음이긴 하지만 정직한 광고라고 볼 때 이 단지의 다른 선전도 믿게 했음은 물론이다. 내가 타는 전철은 8분 간격으로 다닌다. 전철역까지 버스를 타야 했던 동네에 살 때는 버스의 간격이나 속도를 종잡을 수 없어 미리 집을 나서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그 앞 전철을 탈 때도 많았으나 '도보 5분'의 거리에선 정확히 목표한 전철을 탈 수 있으므로 지금은 매일 일정한 시간에 집을 나선다. 아침시간에 5분의 여유, 이게 얼마나 좋았던지. 그러나 이내 게을러져 5분 거리를 3,4분에 주파하느라 거의 매일 뛰다시.. 2025. 4. 28. 두부 장수 - 외솔 최현배 - 서울의 명물―아니 진경의 하나는 확실히 행상들의 외치는 소리이다.조석으로, 이 골목 저 골목에는 혹은 곧은 목소리로, 혹은 타목으로,또 남성으로, 혹은 여성으로제가끔 제 가진 물건들을 사 달라고 외친다.이 소리에 귀가 닳은 서울 사람에게는 아무 신기할 것 없겠지만,처음으로 서울로 올라온 시골 사람의 귀에는 이 행상들의 외는 소리처럼이상야릇한 서울의 진풍경은 없을 것이다. 오늘에서 돌이켜 생각하면 꼭 13년 전의 일이다.내가 시골서 백여 리를 걸어 겨우 경부선 물금역에 가서 생전 처음 보는기차를 타고 공부차로 서울에 와 잡은 주인집은관훈방 청석골 정 소사의 집이었다. 같이 온 동무도 있거니와 이 주인집에 묵는 학생들은 고향 친척도 있고,또 영남 학생들이기 때문에 오늘날 당장에는그리 설다는 느낌이 일어나지 .. 2025. 4. 27. [5] 글쓰기는 나를 다듬는 일이다 -휘준- 1. 정신없는 하루 속에서 길을 잃은 나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숨 가쁜 하루가 시작된다. 알람을 끄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머릿속으로 오늘의 일정을 정리하며 세수를 한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는 이미 회사 메신저에 알림이 몇 개쯤 와 있고, 그걸 확인하다 보면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마음이 지쳐버린다. 그렇게 아등바등 버티며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지면 어느새 또 하루가 지나간다. 그런 날이 반복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지?’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드라마를 보다 잠깐 웃기도 했지만, 내가 진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들여다본 적이 있던가. 어떤 일이 나를 기쁘게 하고, 무엇이 서운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마치 스스로를 가만히 돌볼.. 2025. 4. 26. [4] 기회는 글을 타고 온다 -휘준- 1. 글 하나가 인생을 바꾸는 순간예전에 친구의 자기소개서를 도와준 적이 있어요.경력도 평범하고, 스펙이라고 해봐야 남들 다 하는 자격증 몇 개.‘이걸로 될까?’ 싶었는데, 글이 참 감동적이더라고요.솔직하고 따뜻한 문장이 있었어요.자기가 왜 이 일을 하고 싶은지, 왜 이 조직이어야만 하는지.형식은 평범했지만 마음이 담겨 있었죠.결과요?단번에 합격했습니다.면접에서도 “자기소개서가 참 인상 깊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요.그 얘기를 듣고 한참 멍해졌습니다.글 하나가 사람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구나.진심이 담긴 글 한 편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 그게 참 놀라웠어요.2. 글은 ‘보이지 않던 나’를 보이게 한다우리는 대개 말로 승부를 봅니다.면접이든, 소개팅이든, 회의든— 다 말로 설득하.. 2025. 4. 25. 이전 1 ··· 11 12 13 14 15 16 17 ··· 2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