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99 나는 허수아비 진짜 허수아비 -휘준- © mosayyebnezhad, 출처 Unsplash허수아비 /휘준"오케바리?"전철에 막 오르려는데 누가 귀에다 소리를 버럭 질렀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문간에 선 한 청년이 핸드폰을 받고 있었고 내 귀가 그의 입을 스친 꼴이었다. 문이 닫히자 차내가 조용해지고 그의 목소리도 줄어들었다. 그는 제 친구와 약속 장소를 정하는 모양인데 '찾아올 수 있겠지?'라는 뜻으로 그 말을 외쳤던 것이다.그놈의 "오케바리?"외모도 준수한 청년이 여자친구의 머리칼을 연신 쓰다듬으며 말끝마다 ‘오케바리?’를 연발했다. 주위의 눈총도 모르는 체 상스러운 말투로 전화에 열중하고 있는 젊은이 둘은 흔한 말대로 '한 쌍의 바퀴벌레' 같았다. 전철이 서고 문이 열리자 소음이 커지고 그의 목소리도 다시 커졌다."XX놈아 앞대가리에 .. 2025. 3. 12. 구두 -계용묵- 구두 수선을 주었더니, 뒤축에다가 어지간히는 큰 징을 한 개씩 박아 놓았다. 보기가 흉해서 빼어 버리라고 하였더니, 그런 징이래야 한동안 신게 되구, 무엇이 어쩌구 하며 수다를 피는 소리가 듣기 싫어 그대로 신기는 신었으나, 점잖지 못하게 저벅저벅, 그 징이 땅바닥에 부딪치는 금속성 소리가 심히 귓맛에 역(逆)했다. 더욱이 시멘트 포도(鋪道)의 딴딴한 바닥에 부딪쳐 낼 때의 그 음향(音響)이란 정말 질색이었다. 또그닥 또그닥, 이건 흡사 사람은 아닌 말발굽 소리다. 어느 날 초으스름이었다. 좀 바쁜 일이 있어서 창경원(昌慶苑) 곁담을 끼고 걸어 내려오노라니까, 앞에서 걸어가던 이십 내외의 어떤 한 젊은 여자가 이 이상히 또그닥거리는 구두 소리에 안심이 되지 않는 모양으로, 슬쩍 고개를 돌려 또그닥 소리의.. 2025. 3. 9. 첫 키스 도둑 -휘준- 눈부신 아침이다.햇살은 팔랑대는 아내의 옷고름에 자줏빛으로 부서진다. 약국을 지나 가구점 거울에 뒷모습을 살짝 비춰 보며, 비녀가 정말 어울리냐고 물어보는 아내가 예쁘다. 자주색 저고리에 연보라 치마. 허리까지 빗질하던 긴 머리를 쪽 쪄 올려 목이 하얗게 드러난 여자. 쪽 찐 머리 옆에서 내 아내가 맞나 다시 쳐다본다.이런 외출이 얼마 만인가. 참 드물었다. 결혼 20년 동안 손가락으로 셀만큼. 연애시절까지 24년의 연륜이지만 한복 차림의 아내는 또 다른 새로움이다. 환한 아내의 표정. 오랜 세월 무던히도 순종해 준 아내에게 난 몇 점쯤 되는 남편일까.20년은 아내가 억척 여인으로 변한 세월이기도 하다. 맞벌이에,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집안 잔일에 종종걸음을 친 세월이다. 이사도 8번이나 했지만 한 .. 2025. 3. 1. 이전 1 ··· 14 15 16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