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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후사함'과 사물함이 같다구? -휘준-

by 휘준쭌 2025. 4. 28.

5분의 여유

 

'전철역까지 도보 5' 이는 아파트 분양광고에 흔한 문구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내가 현재 사는 곳은 정말 5분 거리고 동네도 마음에 든다. 성인 남자의 빠른 걸음이긴 하지만 정직한 광고라고 볼 때 이 단지의 다른 선전도 믿게 했음은 물론이다.

 

내가 타는 전철은 8분 간격으로 다닌다. 전철역까지 버스를 타야 했던 동네에 살 때는 버스의 간격이나 속도를 종잡을 수 없어 미리 집을 나서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그 앞 전철을 탈 때도 많았으나 '도보 5'의 거리에선 정확히 목표한 전철을 탈 수 있으므로 지금은 매일 일정한 시간에 집을 나선다.

 

아침시간에 5분의 여유, 이게 얼마나 좋았던지. 그러나 이내 게을러져 5분 거리를 3,4분에 주파하느라 거의 매일 뛰다시피 출근을 해왔다. 늘 타던 전철을 놓치면 하차역에서 이어지는 통근버스를 타지 못한다. 그래서 앞차를 목표로 출근도 해보았지만 신발장 앞에서부터 뛰기는 마찬가지였다.

 

정확하게 지나가 버리는 전철. '정확''정직'과 통한다. 그래서 늦었다 싶어도 열심히 뛰면 전철은 늦게 일어난 게으름을 어김없이 보상해 주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 우연히, 아주 우연히 일찍 집을 나섰다. 10분전 그러니까 보통 때보다 5분 빨리. 그러나 금세 나는 놀란다. 5분의 여유에 이렇게 바뀌다니. 여학생까지도 나를 앞지르도록 느긋한 걸음으로 두리번거리며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까지 살핀다. 옆에서 종종걸음으로 서두르는 사람을 측은히 쳐다보며 생각한다.

 

'여보슈, 조금만 일찍 나서면 이렇게 사색도 하며 걸을 수 있어요'라고 으스대본다.

어쩌면 그동안 일찍 나선 날이 한 번도 없어서 이제야 5분의 여유를 알게 되었을까 한심하기도 했지만 그야 누가 알랴.

 

택시 합승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문 열기 전인 가게들의 썰렁한 모습. 담배꽁초와 쓰레기로 너절한 거리, 특별한 모습이 아니건만 특별해 보이는 동네. 어제도 비슷한 모습이었을 텐데 생뚱스러운 아침풍경. 내일은 좀더 일찍 나와 저쪽 동네의 아침도 구경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지저분하겠지. 자세히 보니 자잘한 쓰레기가 구석구석 많기도 하다. 나지막한 쥐똥나무 울타리는 아예 해묵은 꽁초 밭이고 봉지나 종이컵 따윈 어느 구석에선가 바람에 날려 와 저렇게 굴러다닐 것이다. 이 거리는 언제쯤 꽁초 하나 없이 말끔해질까?

 

어느 날 갑자기 천지개벽이 일어나 세상 사람들이 모두 깨끗해진다면……. 정말 정직한 세상이 된다면 직업을 잃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우선 나부터 출근할 곳이 없어질 것이다경찰, 법원, 교도소, 수많은 아파트의 경비아저씨들까지. 또 법무사, 변호사 같은 업무를 생각하면 이 세상의 절반은 사람의 나쁜 짓 때문에 먹고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많은 관공서의 인원도 반으로 줄 것이다.

 

그러면 관공서 주변에서 먹고사는 무수한 사람들도 절반으로 줄어들겠지. 말끔하고 유쾌한 거리에 '범죄'라는 단어조차 없는 밝은 세상, 그런 낙원은 저들의 밥벌이 때문에 오지 않을 것인가.

 

올해도 생명처럼 개발한 프로그램을 불법복제로 빼앗겨 유망한 벤처기업들이 문을 닫았고, 가짜 상표들 때문에 정직한 기업이 망하고 성실한 근로자들이 실직을 당했다. 일반 서민들도 예외는 아니다. 갖가지 등기 보증 증명 따위로 얼마나 불필요한 장치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가. 사람이 사람을 못 믿어 빼앗겨야 하는 시간들. 그게 인생의 절반쯤은 아닐까.

 

'목격자를 찾습니다. 알려주시면 후사함.' 애타게 뺑소니 운전사를 찾는 플래카드 옆으로 재잘재잘 조무래기들이 지나가다가 '후사함'이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 귀엽다. '크게 보답하겠음' 그러나 그게 정말 보답받을 일인가.

 

맑은 눈망울을 보며 어떻게 설명할까 머뭇대는데 한 꼬마가 우리 학교에 '사물함'이 있다며 까치발을 든다. '후사함''사물함'같은 것이 아니겠냐고. 쪼르르 육교를 오르는 아이 중 누군가는 되뇌어보았으리라. '알려주시면 사물함?'

 

세상에 누구도 자기 자식에게 '정직'을 가르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자라면 정직하고 밝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가방을 메고 신발주머니와 준비물을 들어 두 손이 자유롭지 못한 아이들. 저 아이들은 사물함이 있어도 또래 친구들을 못 믿어 항상 신발주머니를 들고 다니는 것이리라. 여린 아이들이 언제까지 신발을 들고 다녀야 하나.

 

역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보이자 '아직도 2,3분은 남았겠지.' 소매를 들어 시계를 본다. 그런데... 아뿔싸, 여전히 10분이나 남은 시계에 나는 또 한 번 놀라고 만다. 서버린 시계. 초침이 멈춰있다. 부리나케 두 계단씩 뛰어오른다.

 

휑한 플랫폼.. 정직한 전철이 야속하다.

건전지가 다 되어 서버린 정직한 시계가 정직하게 살고 싶은 나를 허탈하게 올려다보고 있다.

출근하기 싫다. (200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