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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122

구두 -계용묵- 구두 수선을 주었더니, 뒤축에다가 어지간히는 큰 징을 한 개씩 박아 놓았다. 보기가 흉해서 빼어 버리라고 하였더니, 그런 징이래야 한동안 신게 되구, 무엇이 어쩌구 하며 수다를 피는 소리가 듣기 싫어 그대로 신기는 신었으나, 점잖지 못하게 저벅저벅, 그 징이 땅바닥에 부딪치는 금속성 소리가 심히 귓맛에 역(逆)했다. 더욱이 시멘트 포도(鋪道)의 딴딴한 바닥에 부딪쳐 낼 때의 그 음향(音響)이란 정말 질색이었다. 또그닥 또그닥, 이건 흡사 사람은 아닌 말발굽 소리다. 어느 날 초으스름이었다. 좀 바쁜 일이 있어서 창경원(昌慶苑) 곁담을 끼고 걸어 내려오노라니까, 앞에서 걸어가던 이십 내외의 어떤 한 젊은 여자가 이 이상히 또그닥거리는 구두 소리에 안심이 되지 않는 모양으로, 슬쩍 고개를 돌려 또그닥 소리의.. 2025. 3. 9.
첫 키스 도둑 -휘준- 눈부신 아침이다.햇살은 팔랑대는 아내의 옷고름에 자줏빛으로 부서진다. 약국을 지나 가구점 거울에 뒷모습을 살짝 비춰 보며, 비녀가 정말 어울리냐고 물어보는 아내가 예쁘다. 자주색 저고리에 연보라 치마. 허리까지 빗질하던 긴 머리를 쪽 쪄 올려 목이 하얗게 드러난 여자. 쪽 찐 머리 옆에서 내 아내가 맞나 다시 쳐다본다.​이런 외출이 얼마 만인가. 참 드물었다. 결혼 20년 동안 손가락으로 셀만큼. 연애시절까지 24년의 연륜이지만 한복 차림의 아내는 또 다른 새로움이다. 환한 아내의 표정. 오랜 세월 무던히도 순종해 준 아내에게 난 몇 점쯤 되는 남편일까.​20년은 아내가 억척 여인으로 변한 세월이기도 하다. 맞벌이에,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집안 잔일에 종종걸음을 친 세월이다. 이사도 8번이나 했지만 한 .. 2025.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