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얄개15 (15) 그땐 우리도 우리가 한심했다 -휘준- 고2 얄개시절, 그러니까 50여 년 전, 우리가 저지른 일 중에 범죄인 줄 알고 저지른 일이 딱 하나 있다. 정말 장난으로 말해본 거였는데 그 말을 들은 두 친구가 착 달라붙는 바람에 우리의 모의는 급속히 합의됐다. 셋이서 시험지를 훔치기로 한 것이다. 시험기간 중엔 교실에 남아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많았는데,밤이 이슥해지면서 불 켜진 교실이 몇 남지 않았을 때 우리는 비장한 마음으로 2층 교무실을 털었다. 그것은 타이거마스크의 박달 몽둥이 때문이다. 그는 수학선생이지만 마스크를 안 써도 반칙왕 같이 생긴 남자인데 시험문제 하나 틀리는데 무조건 한 대씩 때렸다. 다른 애들은 몇 개 틀렸나를 걱정했지만 선수생활 때문에 수업을 자주 빼먹은 나는 몇 개 맞을까가 궁금한 처지였다. 그러니 몽둥이 앞에 도둑질인들 .. 2025. 3. 26. (14) 오필이와 하재억과 유실영 어머니와 나의 엄마 -휘준- 고교 졸업 후 처음으로 모인 반창회에서 오필이 군을 만났다. 약 50년 만의 만남인데 퍼뜩 떠오른 추억은 고1 때 운동회다. 반의 체육부장으로서 출전 선수 명단을 짜고 있던 내가 필이에게 “너 단거리 빠르던데 100미터 좀 뛰어주라.” 했더니, 엄마한테 물어보고 답은 내일 주겠단다. “야 난 5천 미터도 물어보지 않고 뛰는데, 그거 잠깐 뛰는 걸 무슨 엄마한테 물어보냐?” "야 너, 100미터 달리기 선수 좀 해 줘라.""안돼, 엄마한테 물어보구.""나는 5000미터도 물어보지 않고 뛰는데, 뭘 그런 것까지 엄마한테 허락받냐?""아냐, 난 물어봐야 돼!" 이게 고교 1학년들의 대화로 보일까? 선수 명단 제출 기한이 당일이어서 "쪼다새끼" 하며 빼버렸던 필이에게 그때 답변이 왜 그랬냐고 물었다.할아버지가.. 2025. 3. 25. (13) 나무젓가락과 뺑코 -휘준- 짜장면과 나무젓가락 그리고 뺑코 백과사전에서 짜장면을 검색해 보니, 짜장면(-醬麵) 또는 자장면(-醬麵)은 양파, 양배추 등 채소와 돼지고기에 기름으로 튀긴 춘장을 넣어, 굵은 국수에 비벼서 먹는 '한국식 중국 요리'라고 나와있다. 짜장면은 짬뽕, 우동과 함께 대표적인 한국식 중국 요리로 꼽힌다. 짜장면은 중국의 자장몐이 한국식으로 변형된 것이다. 산동 요리를 기반으로 하는 대부분 한국식 중국 요리처럼 그 대표 격인 짜장면은 인천이 시작점이라고 나온다. 짜장면은 중국의 산둥반도 지역의 가정식이었던 자장몐(炸醬麵)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하여 만들어진 음식이라고 한다. 1890년대 중국 산둥(山東) 지방에서 건너온 부두 근로자들이 인천항 부둣가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춘장에.. 2025. 3. 24. (12) 미술 선생님과 쥐똥 -휘준- 5월 15일, 동창생 여남은이 모였다. 한참을 떠들다 누군가 스승의 날임을 일깨웠을 때, 쥐똥의 부음(訃音)이 들렸다. "쥐똥 알지? 어제 죽었대." 선생이 된 친구, 메뚜기가 술잔을 주며 말했다. 맞은편 세모가 받았다. 쥐똥이라! 그 공납금 독하게 받아내던 선생? 쥐똥은 눈이 몹시 작았다. 덩치는 큰데 눈은 쥐똥 만한 남자. 인상도 험악했는데 그는 나의 중학 시절 미술 선생이었다. 미술 숙제가 상상화 한 점씩이었는데, 숙제 검사를 하던 쥐똥이 대뜸 물었다. "너, 이거 베꼈지?" "제가 혼자 그린 건데요." '상상화'는 말 그대로 상상해서 그리는 것인데 쥐똥은 어디선가 본 그림이라는 것이다. 쥐똥은 쥐똥을 크게 뜨며 두 번이나 물었다. 정말이냐고. 까닭을 모르는 나는 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 2025. 3. 17. (11) 하얗게 잊었던 하얀 기억 '셋' -휘준- 우리는 쥐를 싫어한다. 아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을까? 그러나 학교마다 통일된 숙제가 ‘쥐꼬리 잘라 오기’인 날이 기억난다. 전국적으로 벌어진 쥐 잡기 행사(?). 잡은 증거로 그 꼬리들을 잘라 와야 했고 그 실적은 반별로 경쟁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망측하기도 했지만 엄연한 사실 아닌가. 잊혀진 일은 또 있다. 당시 거리에 있는 화장실엘 들어가려면 돈을 내야 했다. 돈 없으면 화장실도 못 가느냐고 요즘 아이들은 묻겠지만 답은 엄연히 '그랬다.' 아닌가. 버스터미널의 화장실도 유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화장실 직원이 대변이냐 소변이냐를 물어 요금을 달리 받았는데, 소변 요금 내고 들어가 대변 칸으로 건너가다 걸리면 창피를 당하기도 했지 않은가. 어쨌든 화장실 앞에서 돈이 없어 쩔쩔매던 .. 2025. 3. 15. (10) 조선어학회와 일본놈학회에 낑긴 걸레통 -휘준- 우리 고교 졸업한 지도 벌써 50년이 넘었죠? 아득한 옛날인데도 선생님 중에는 요즘에 뵌 분같이 낯설지 않은 분도 계십니다. 그중 교실에 들어오시자마자 칠판으로 돌아서서 판서부터 하는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들어오시면 인사부터 받고 시작하는 관습까지 잊으신 겁니다. 정년이 가까우신 할아버지 선생님은 노망끼가 조금 있었으나 판서 솜씨는 일품이셨습니다.. 20분쯤 쓰고 돌아서서 "빨리 베껴!" 하시곤 손가락의 분필 가루를 입으로 요리조리 불면서 5분 더 기다려 주시고 5분쯤 설명하시던 선생님. 그렇게 두 번 하다 종이 울리면 또 인사도 안 받고 그냥 사라지던 선생님. 어떤 땐 환청으로 들으신 양 종소리도 없었는데 그냥 나가시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쉬는 시간이 늘어나 마냥 좋았습니다. 그 선.. 2025. 3. 14.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