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얄개16 (10) 조선어학회와 일본놈학회에 낑긴 걸레통 -휘준- 우리 고교 졸업한 지도 벌써 50년이 넘었죠?아득한 옛날인데도 선생님 중에는 요즘에 뵌 분같이 낯설지 않은 분도 계십니다. 그중 교실에 들어오시자마자 칠판으로 돌아서서 판서부터 하는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들어오시면 인사부터 받고 시작하는 관습까지 잊으신 겁니다. 정년이 가까우신 할아버지 선생님은 노망끼가 조금 있었으나 판서 솜씨는 일품이셨습니다. 20분쯤 쓰고 돌아서서 "빨리 베껴!" 하시곤 손가락의 분필 가루를 입으로 요리조리 불면서 5분 더 기다려 주시고 5분쯤 설명하시던 선생님. 그렇게 두 번 하다 종이 울리면 또 인사도 안 받고 그냥 사라지던 선생님. 어떤 땐 환청으로 들으신 양 종소리도 없었는데 그냥 나가시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쉬는 시간이 늘어나 마냥 좋았습니다. 그 선생님은 귀.. 2025. 3. 14. (9) 학교 수돗가에서 홀딱 벗고 씻던 우리들 -휘준- 고교 2학년이 된다는 건 매우 즐거운 일. 득실거리던 선배들 절반이 떠나고 그만큼 새로 생긴 후배들 앞에서 꺼벙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2학년이 된 때, 우리에겐 커다란 혼란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닉슨이 중공을 방문해서 공산 맹주 모택동을 찾은 사건이다. 닉슨과 주은래의 사진도 연일 매스컴에 떠서 우방들이 혼란에 싸였는데, 우리의 경우 고교입시 때 동점자는 반공도덕 성적순으로 뽑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요즘 같으면 입시요강 바꾸라고 난리 나지 않았겠나. 반공이 모든 걸 이기던 시대였으니 중국에 간 닉슨은 충격 그 자체였다. 두 번째는 3월부터 목욕탕 요금이 62.5%나 오른 것이었다. 물론 이 변화를 사회적 혼란으로 보기엔 다분히 주관적이지만, 한꺼번에 올린 인상 폭이 62.5% 얼마나 큰 .. 2025. 3. 13. (8) 개나 소나 다 모범생인 세상은 -휘준- 개나 소나 다 모범생인 세상은 개나 소, 걔들도 재미없어 싫어한다.공부 꼴찌인 나도 그들이 싫어 학교 담을 넘어 전국체전에 나갔는데, 촌놈이 금메달을 땄다. 30년 후 sbs 방송 공모에 응했다가 수영선수의 글이 재밌다고 뽑혔다. 'sbs 아빠의 도전’여기엔 응모자가 많아 사연이 재밌어야 뽑힌다. 한 가족이 25분간 TV에 나오는 행운.온 가족이 1분만 TV에 나와도 동네방네 자랑하던 때가 아닌가. 방송국 PD가 일주일 내내 집으로 출근, 도전과제는 달걀을 던져 올려 사각 쇠주걱으로 10번 받아내기.PD는 아빠 수영 모습을 꼭 찍어야 한다고 우겼다. 잘 찍어주겠다던 꼬임에 빠져, 풀장에 끌려가 주종목도 아닌 버터플라이를 해보다.늘어난 뱃살에 허리 피칭이 안되어 죽을 뻔, ‘수영선수 익사하다’라는 기사가 .. 2025. 3. 11. (7) 나의 아버지는 탁구장 주인 -휘준- 고교 시절, 싸움꾼이 아닌 내가 주먹패들에게 기죽지 않고 학교에 다닌 것은 불량한 복장 덕분도 있었다. 교복 바지 대신 건빵 주머니가 달린 미군 전투복을 염색해서 입고 중고품 워커를 끌고 다녔는데 선생님께 몇 차례 걸려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엄마한테 워커도 괜찮다고 속이고 산 것이니 구두나 교복 바지 살 돈을 또 타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활지도 선생님에게서 최후통첩이 왔다. ‘부모님을 모셔 올 것’하루를 사흘처럼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학교 앞 탁구장 주인을 아버지로 꾀는 데 성공했다. 탁구장 주인 가짜 아버지가 교무실에서 어떻게 시간을 때우고 나왔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단지 교무실에서 나온 그는 다시는 못 할 짓이라며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고 갔었다. 그리고 복장 문제는 하복 입는 철이 해결해 주었다.. 2025. 3. 8. (6) 체육쌤 하마는 나의 기발함에 지다 -휘준- 응답하라 1972, 검정 교복들이 우글거리는 Y고교 운동장. 뛰노는 아이들 중에는 죄수들이 섞여 있다. 두발단속에 걸려 까까중이 된 놈들이다. 그 시절, 얄개들에게 머리 스타일은 교모를 찢어 쓰거나 나팔바지를 늘이는 일보다 중요한 문제였으므로 빡빡머리가 되는 것은 크고 큰 걱정거리였다. 나는 교실 창가에서 까까중들을 측은히 쳐다보며 친구 따라 처음 간 교회를 생각했다. 검게 윤이 나는 피아노 의자를 노랗게 물들인 연주자의 스커트, 스커트에 어울린 노란 머리띠. 나는 노란 스커트가 잘 어울리는 여학생한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집에 온 후에도 그 노란색은 밥상 위에, 책꽂이 위에, 누우면 천장에서도 떠나질 않았다. 3교시 시작종이 울리고 그녀의 환상이 떠났을 때, 교실엔 김치 냄새가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2025. 3. 7. (5) 그대 한번 만나요, 쭌 -휘준-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강 선수의 편지는 안 오고, 나에겐 운명이랄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중1 HR 시간에 손 한번 잘못 든 죄로 나를 수영반에 가두었던 학교. 그때 나는 물리반, 화학반 이런 공부동아리를 택했어야 했다. 학교는 고2 때 수영부가 해체될 때까지 운동짱들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다른 애들은 엄마가 와서 빼가기도 했지만, 나의 엄마는 하늘에 계셨으니. 학교 대선배인 수영연맹 회장님이 박정희 정권에 찍혀 캐나다로 야반도주하셨고, 후원자가 없어지자 수영부는 코치봉급도 못 주게 되어 흩어졌다. 운동선수에서 자유인으로 풀린 고2 얄개 시절, 그 시절엔 공부 잘하는 애들도 학원엘 다니고 있음을 알았다. 나 같은 돌팍은 더 절실했으니 돈 없는 아버지를 졸라 학원비를 가슴에 품고 종로 2가로 나갔다.. 2025. 3. 6.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