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얄개시절, 그러니까 50여 년 전, 우리가 저지른 일 중에 범죄인 줄 알고 저지른 일이 딱 하나 있다.
정말 장난으로 말해본 거였는데 그 말을 들은 두 친구가 착 달라붙는 바람에 우리의 모의는 급속히 합의됐다.
셋이서 시험지를 훔치기로 한 것이다. 시험기간 중엔 교실에 남아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많았는데,
밤이 이슥해지면서 불 켜진 교실이 몇 남지 않았을 때 우리는 비장한 마음으로 2층 교무실을 털었다.
그것은 타이거마스크의 박달 몽둥이 때문이다.
그는 수학선생이지만 마스크를 안 써도 반칙왕 같이 생긴 남자인데 시험문제 하나 틀리는데 무조건 한 대씩 때렸다.
다른 애들은 몇 개 틀렸나를 걱정했지만 선수생활 때문에 수업을 자주 빼먹은 나는 몇 개 맞을까가 궁금한 처지였다.
그러니 몽둥이 앞에 도둑질인들 망설일 여유가 있었을까.
이튿날의 시험과목이 수학과 사회인 날이었다.
나머지 공부하느라 최후까지 교실에 남은 애들은 61명 중에 47등, 48등, 그리고 꼴등인 나 셋이었다.
내 밑으로 럭비부와 농구부가 번갈아 바닥을 기고 있었고 민간인(?)도 두엇 있었다.
내가 민간인을 깔고 있다는 사실은 엄청나게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들은 나 때문에 자주 혼이 났고 그때마다 나는 상대적인 칭찬을 들었다.
칭찬을 들을 때마다 성적을 더 올리려고 다짐했지만
마음만으론 안 되는 게 성적임을 아는 까닭에 나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현관 지붕에서 연통을 타고 올라 2층 교무실 창틀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키가 조금 큰 죄로 내가 나섰다.
두 친구는 나를 받쳐주고 복도 쪽으로 잽싸게 돌아가서 망을 보다가 내가 나올 때를 알려주기로 했다.
창문으로 들어가서 정문으로 나오기, 가슴은 퉁탕퉁탕 뛰었지만 모든 일은 순조롭게 끝났다.
두 과목 시험지를 거머쥔 우리는 세상을 놀라게 할 마음에 설레었다.
한 과목이라도 반 Top을 해본다는 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일 뿐이었다.
우리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두 과목 덕에 우리의 평균성적이 반 평균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사실에 들떴다.
마치 노다지를 캔 놈들처럼 환호하며 복도를 뛰어다녔다.
우리는 더 이상 반 평균을 깎아먹는 놈들이 아니라는 선언식도 가졌다.
더 이상 공부할 필요가 없으므로 우리는 보무도 당당히 교정을 나섰다.
중국집 다다미방에 앉자마자 시험지와 책을 폈다.
주인아저씨는 들어오자마자 담배 피우는 놈은 봤어도 책부터 피는 놈들은 처음 본다며 갸우뚱거렸다.
참고서까지 펴놓고 열심히 풀었으나 우리는 한계는 곧 드러나고 말았다.
그 대가리가 그 대가리 아닌가.
서울에 전화 있는 집이 반도 안 되던 시절이어서 어디 전화로 물어볼 만만한 친구도 없었다.
중국집 문 닫는 시간까지 열심히 풀었으나 우리는 우리가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이튿날 묘한 기분으로 신기한 시험지를 받았지만 우리 셋의 점수는 겨우 반 평균 정도라는데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내 점수를 미리 알고 시험을 치르는 기상천외한 사건 앞에 씁쓸한 입맛만 다셨다.
그러나 우리는 미처 몰랐지만 중대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 시원찮은 점수 때문에 우리는 완전범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교무실에 도둑이 든 것은 쉬쉬하는 가운데 알려졌고,
우리가 놀랄만한 점수를 얻었다면 우리는 단박에 걸렸을 것이다.
우리의 모의는 서로 다른 문제를 하나씩 틀려주는 것까지였는데 정말 위험하고 어린 생각들이었다.
어른이 되서야 그 범죄의 크기가 엄청난 것임을 알았지만
지금도 그 밤이 생각나면 섬뜩한 추억 하나 창밖 가스관을 타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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