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동창생 여남은이 모였다.
한참을 떠들다 누군가 스승의 날임을 일깨웠을 때, 쥐똥의 부음(訃音)이 들렸다.
"쥐똥 알지? 어제 죽었대."
선생이 된 친구, 메뚜기가 술잔을 주며 말했다.
맞은편 세모가 받았다. 쥐똥이라! 그 공납금 독하게 받아내던 선생?
쥐똥은 눈이 몹시 작았다. 덩치는 큰데 눈은 쥐똥 만한 남자.
인상도 험악했는데 그는 나의 중학 시절 미술 선생이었다.
미술 숙제가 상상화 한 점씩이었는데, 숙제 검사를 하던 쥐똥이 대뜸 물었다.
"너, 이거 베꼈지?"
"제가 혼자 그린 건데요."
'상상화'는 말 그대로 상상해서 그리는 것인데 쥐똥은 어디선가 본 그림이라는 것이다.
쥐똥은 쥐똥을 크게 뜨며 두 번이나 물었다. 정말이냐고.
까닭을 모르는 나는 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그때 느닷없이 그의 손바닥이 날아왔다.
이 새끼가- 누굴 속여? 따귀가 어찌나 셌던지 뒤로 나가떨어지면서
내 머리가 교실 모서리 안벽을 한 바퀴 돌았다.
한 바퀴라야 두 면에 부딪힌 거지만 따귀까지 합치면 쓰리 쿠션을 당한 셈이다.
번쩍 뜬 별을 이고 몽롱한 정신으로 일어서는 나에게 쥐똥은 또 물었다.
"이 새끼 수영부지, 베꼈어 안 베꼈어?"
" ..... "
주먹이 또 날아 올까봐 아무 말도 못 한 건 아니다.
절대 아니라고 말했는데도 띵한 머리에 이상하게 입술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쥐똥은 범인의 자백이라도 받아낸 듯 돌아섰고,
나는 어지러워서 책상을 손으로 짚어가며 자리로 돌아왔다.
그제야 뺨이 얼얼했고 눈물이 쏟아졌다.
운동부 주제에 너무 잘 그렸단 말인가? 억울했다.
미술이 얼마나 재미있는 과목인가. 글라이더도 만들고 판화나 공작도 하고.
그러나 나는 그때부터 미술이 싫어졌다.
선생의 얼굴은 쳐다보기도 싫었고 도레미의 '미'자만 봐도 미술이 떠올랐다.
음악 시간에도 악몽처럼 떠오르는 미술 선생, 완전 트라우마였다.
우악스런 덩치로 어린 중학생에게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선생이 아이들의 꿈을 키워줘야 하는데 엄마도 없는 아이의 꿈을 밟아버린 것이다.
그건 자기 권위만 생각한 린치였다.
나에게 미술은, 돌아가신 어머니와 유일한 끈이었던 과목이다.
초등 4학년 때 서울시 사생대회에 영등포구 대표로 참가했던 기억 때문이다.
창경궁에서 열렸는데 어머닌 고궁 구경이 처음이라 하셨다.
가냘픈 체구에 위장이 나빠 자주 병원 생활을 하신 어머니.
소풍 때 한번 도 못 오신, 그런 어머니가 소풍 가듯 따라오신 것이다.
50년 넘는 이별에 희미해진 어머니의 기억 중 가장 인상 깊은 모습,
아들 덕에 고궁 구경을 다 한다며 몹시 좋아하시던 모습이 아련하다.
그때 어머니는 지금 그리는 부분은 무어냐고 자주 물으셨다.
질문보다 더 자주 삶은 달걀을 입에 넣어 주면서.
목이 메어 고개를 돌려도 자꾸 주셔서 짜증이 났지만 난 어머니를 보고 웃었다.
짜증이 나도 웃기는 아주 어려서 배운 셈이다.
어머니가 안 먹었기 때문에 남은 달걀을 집에 오는 전차 안에서도 먹었다.
그 귀했던 것을 먹다가 흘렸는데도 야단맞지 않았다.
그런데... 그랬던 어머니가 바로 이듬해 다시는 뵐 수 없는 분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많지 않음이 애잔하다.
쥐똥을 만나지 않았다면 난 화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게 미술의 싹을 자른 미술 선생은 어머니와 나의 유일한 끈을 자른 셈이다.
다행히 예능과 인연이 있어 느지막이 시인이 된 지금도 미술은 또 다른 아쉬움이다.
가끔 작은 글을 써서 선물에 붙일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간단한 삽화 정도는 손수 그려 넣고 싶은 적이 많다.
그럴 때면 어릴 때 꺾인 미술 욕심이 새삼스럽고, 잊고 살던 쥐똥이 되살아난다.
거나해지도록 우리들 중에 깨눈의 장례식장을 묻는 친구는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스승을 고맙게 회상하는 친구도 없었다.
나는 쥐똥처럼 눈을 뜨고 돼먹지 못한 놈들을 둘러보았다.
육십이 넘어도 철부지 같은 녀석들. 내가 암만 쥐똥처럼 노려보아도
녀석들은 그저 '저눔 취했구만' 했으리라. 괘씸한 놈들.
하지만 생각했다. 이젠 쥐똥을 미워하지 말자고. 그는 그래도 스승이 아닌가.
그 옛날 얻어맞을 때, 죽기를 무릅쓰고 나 혼자 그린 그림임을 알렸어야 했다.
그랬다면 나 지금 미술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
이제 영전 앞에라도 찾아가 고해야 한다.
'선생님, 그때 그 그림 진짜 내 거였습니다. 전 선생님 원망 많이 한 놈입니다.'
상한 속에 소주잔을 거푸 털어 넣고 같이 갈만한 놈을 찾아보았다.
유유상종이라 했으니 쓸만한 놈이 있었겠나.
뒤늦게 나타나 호들갑을 떨다 옆에 앉는 꽁치가 만만해 보였다.
그에게 선생님의 부음을 정중히 알리려고 술잔을 건넸다.
그러나 허탈한 내 혀는 이미 꼬부라져 있었다.
"쥐똥 알쥐? 죽었댄다, 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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