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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얄개

(11) 하얗게 잊었던 하얀 기억 '셋' -휘준-

by 휘준차 2025. 3. 15.

   

    우리는 쥐를 싫어한다. 아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을까? 그러나 학교마다 통일된 숙제가 쥐꼬리 잘라 오기인 날이 기억난다. 전국적으로 벌어진 쥐 잡기 행사(?). 잡은 증거로 그 꼬리들을 잘라 와야 했고 그 실적은 반별로 경쟁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망측하기도 했지만 엄연한 사실 아닌가.

 

    잊혀진 일은 또 있다. 당시 거리에 있는 화장실엘 들어가려면 돈을 내야 했다. 돈 없으면 화장실도 못 가느냐고 요즘 아이들은 묻겠지만 답은 엄연히 '그랬다.' 아닌가. 버스터미널의 화장실도 유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화장실 직원이 대변이냐 소변이냐를 물어 요금을 달리 받았는데, 소변 요금 내고 들어가 대변 칸으로 건너가다 걸리면 창피를 당하기도 했지 않은가. 어쨌든 화장실 앞에서 돈이 없어 쩔쩔매던 생각이나, 이튿날 쥐꼬리를 잘라 와야 하는 걱정으로 애태운 일들은 모두 가난한 나라에 살았던 흔적 아닐까.

 

    나도 쥐꼬리를 잘라 가는 숙제를 하지 못해 교실에서 얻기로 했다. 그러나 신문지에 몇 개를 싸 온 친구는 그것을 나더러 집어 가라는 것이었다. 녀석의 뒤통수를 갈기고 싶었지만, 쥐꼬리도 못 잡는다는 소문이 날까 봐, 눈 감고 이를 악문 채 두 개를 옮겼는데 얼마나 싫었는지 모른다.

 

    곤혹스러웠던 일은 그때뿐이 아니었다. 햇볕이 뜨거운 어느 날 교복을 입고 단체로 오른 산이 남산으로 기억된다. 지금과 같이 큰 나무가 많지 않아 그늘이 적었고 소나무조차 듬성듬성한 비탈에서 우리는 나무젓가락으로 송충이를 잡아 깡통에 넣었다.

 

    다시 기어 나오는 송충이를 막는 것도 중요한 일. 반별로 모은 그것에 어떻게 점수를 매겼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쥐잡기 못지않게 소름 돋는 기억이다.

 

    쥐꼬리 잘라 오기, 어째서 그런 숙제가 있을 수 있었을까? 내가 자식을 키워보니 어렵잖게 알게 됐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 숙제라면 사족을 못 쓰는 부모들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리라. 아이들 숙제에 열성적으로 덤비는 부모가 얼마나 많았는가. 그 시절 신문 기사 한 토막을 달아 이야기를 맺는다.

 

<25일 저녁 7시를 기해 전국적으로 벌인 쥐 소탕 작전 전과가 일선 행정기관을 통해 집계되는데 서울의 경우 약 400백만 마리가 섬멸됐을 것으로 추산되나 정확한 집계는 4월 2일께나 밝혀질 것이다. 창신동 등 밀집 지역에선 한 집에서 20마리나 잡기도.....(1972.3.28. 동아일보에서)>

 

    컴퓨터가 없던 세상, 전국의 쥐꼬리 계수만 해도 일주일쯤 걸린 건 매우 당연한 일. 그러면 그것들이 전국적으로 잘렸단 말인가. 여학생들도 해왔을까? 무서움 타는 여선생님들이 핀셋을 들고 가짜 쥐꼬리가 아닌가 검사도 했었단다.

 

    그렇다면 피 묻은 꼬리들은 학교 밖 어디로 갔을까? 그 당시엔 쥐가 먹어 없애는 쌀이 많아 창고를 지키는 일이 쥐 잡기였단다.. 쥐꼬리와 함께 싸간 도시락. 그것도 쌀밥은 금지됐고, 잡곡밥인지 검사받고 먹던 시절, 그 밥도 없어서 못 먹었는데 우리는 내일 하루만 무한리필인 식당 ‘신작로 해장국’에서 허리띠 풀어놓고 먹을 것이다.

 

    순대 1미터씩 목에 걸고 마셔보자고 했다. 동창끼리 돌아설 일이 뭐 있겠는가. 다 풀린다. 풀림풀림. 풀림 day.

 https://youtu.be/VB6RzakzgWo?si=IuBLWCf3ZQfrl2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