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7 유배지 제주, 지성의 섬이 되다: 선비들의 고독과 사색 -휘주니- 그리고 그들의 발자취가 현대 제주에 남긴 정신적 유산 제주, 하면 우리는 흔히 푸른 바다와 야자수가 어우러진 휴양의 섬을 떠올린다. 넘실대는 파도 소리, 감귤 내음 가득한 바람, 그리고 흑돼지 향연이 펼쳐지는 오감만족의 공간.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수식어 뒤편에는, 꽤나 고독하고 처절했던 제주의 또 다른 얼굴이 숨어 있다. 바로 '유배지(流配地)'로서의 제주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조선 시대 수많은 지식인과 사상가들의 고뇌와 사색이 깊이 배어 있는 '지성의 섬'이기도 했다. 한양에서 쫓겨난 이들이 절해고도 제주에서 느꼈던 절망과 깨달음, 그리고 그들이 남긴 발자취는 오늘날 제주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정신적 유산이 되었다. 흑돼지나 감귤처럼 달콤하고 자극적인 맛은 아니지만, 제.. 2025. 8. 28. 사라져가는 제주어, 기억 속의 속살 -휘주니- 제주어를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마치 먼 옛날의 유물을 조심스럽게 꺼내 드는 듯한 마음이 된다. 단순한 지역 방언이 아니다. 그것은 수천 년간 이 섬의 바람과 파도, 오름과 바다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삶이 빚어낸 결정체다. 그 단어 하나하나에는 거친 자연 속에서 피어난 강인한 생명력과, 외부 세력의 침략과 핍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섬사람들의 끈질긴 정신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표준어가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제주만의 정서와 역사가 그 언어의 결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점점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언어라 하지만, 내게 제주어는 묵묵히 제주의 모든 것을 품어 온 어머니의 속살과 같다. 투박하고 투명한, 그래서 더욱 애틋한 '삶의 시'가 아닐 수 없다.언어는 곧 삶의 지문.. 2025. 8. 27. 오름, 나를 찾아 떠나는 고독한 여정 -휘주니- 제주의 오름. 한라산을 중심으로 마치 봉긋한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솟아오른 360여 개의 작은 산들. 저마다 독특한 모양새와 빛깔, 그리고 이름이 제주의 바람과 햇살 속에 어우러져 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성산일출봉이나 용눈이오름 같은 유명한 오름의 정상에서 탁 트인 풍광을 감상하며 감탄사를 쏟아내지만, 내게 오름은 그저 풍경의 일부가 아니다. 때로는 친구처럼 다정하고, 때로는 현자처럼 침묵하며 나를 기다려주는 존재. 특히나 발길 닿기 힘든, 혹은 이름조차 생경한 덜 알려진 오름들은, 나를 찾아 떠나는 고독한 여정의 시작점이 되어주곤 한다. 북적이는 인파와 시끌벅적한 소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나는 홀로 서서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면의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소리에 집중한다. 정상을 .. 2025. 8. 27. 검은 현무암 해변, 바다의 눈물과 약속 -휘주니- 제주는 내게 늘 위로와 안식을 주는 섬이다. 특히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은 바로 검은 현무암 해변들. 수억 년의 시간을 품고 파도와 부대끼며 빚어진 그 검은 돌들은, 제주의 거친 생명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눈부신 백사장과는 또 다른, 묵직하면서도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랄까. 시린 겨울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바다를 지키고 선 그 풍경은, 마치 오랜 삶의 고뇌를 견뎌낸 노인의 얼굴처럼 깊고 고요하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으로 너무 깊이 발을 들이밀다 보면, 이내 마주하게 되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틈새마다 끼어 있는 플라스틱 조각들, 형형색색의 어망 부표,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쓰레기들. 마치 이 아름다운 해변이 흘리는 소리 없는 눈물처럼, 그 모든 것들이 제주의 바다가 감내하고 있는 고통을 증언하.. 2025. 8. 27. 바람과 돌담이 속삭이는 제주의 옛 이야기 -휘주니- 제주가 품은 이야기 제주는 말이지, 돌하르방의 인자한 미소만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섬이여. 그 숱한 이야기가 어디에 깃들어 있나 보면, 난 기어이 이 제주 땅의 꼬불꼬불한 돌담길에 닿더라마. 육지 사람들은 그저 '돌덩이'라 할지 모르지만, 이 섬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겐 이 돌담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역사고, 피와 땀이 서린 삶의 증거인 게지. 70 평생 제주 바람을 벗 삼아 살아온 나에게 돌담은 단순한 경계가 아니여. 속삭이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면, 마치 나지막한 목소리로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늙은 할망 같달까. 어르신들은 이 돌담을 두고 '밭담'이라 불렀어. 밭의 경계를 나누고, 드센 제주 바람을 막아주고, 오가는 가축들까지 품어주던 살림의 터전이었지. 제주의 땅은 척박했어. 화.. 2025. 8. 26. 기억의 서랍을 여는 사람 우리 삶의 거대한 기억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사진첩을 넘기다 보면, 이 작은 기계가 단순한 통신 도구를 넘어 우리 삶의 거대한 기억의 서랍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안에는 첫 번째 여름휴가에서 아이가 지었던 천진난만한 웃음이 있고, 이별 후 말없이 지나간 쓸쓸한 계절의 풍경이 있으며, 잊고 지냈던 친구들과의 어느 밤의 수다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앨범 속 사진 한 장 한 장을 만질 때마다 과거의 공기가 손끝에서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불안을 느낀다. 수십만 장의 사진들이 과연 안전할까? 언젠가 이 데이터가 사라져 버리진 않을까? 하드 드라이브가 고장 나고, 클라우드 서비스가 종료되고, 파일 형식이 시대에 뒤처져 더 이상 열어볼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이 모든 기억들은 어떻게 .. 2025. 8. 26.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