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21. 보돌미역 종로점에서 사은회 열렸던 거 기억들 하시죠? 거기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신문 가십난에 실려도 무난한. 지금 아무리 되뇌어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에요.
사진 무난히 찍고 대충 앉아 한잔하고 있는데, 홍성대 군이 등을 두드리며 “선생님이 너 찾으신다.” “오잉, 나를 아는 선생님이 계시다고?” 선생님 쪽을 보니 하마선생님이 이쪽을 보고 손을 들었습니다. 네 눔이 맞다는 뜻이었죠.
아니 제가 선생님을 길에서 알아뵈는 것은 있을 수 있어도, 선생님이 거꾸로 학생을 알아보는 일은 ‘세상에 없다’가 정상 아닙니까? 거기다가 저도 70 노인인데 고삐리 때 얼굴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대도 같이 있었던가? 선생님께 갔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이 “너 왜 나한테 인사 안 해?” 진짜 화내시는 모습은 아니어서, 저도 원 쿠션 돌려서 답했습니다. 얄개들의 순발력을 발휘해서 다른 친구 이름을 댔죠. “안녕하십니까, 농구부 이규합니다 하하하”
하마 선생님께선 “이름 같은 건 모르겠고 인사할만한 눔이 등 돌리고 앉아 술만 마시고 있으니 서운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저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가 여쭈었더니 “하여간 기억난다.”는 말씀만 되풀이하셨습니다.
제겐 경기·경복에도 없는 얄개 십여 편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하마의 미소, 내가 졌다’ 였습니다. 고2 때 하마의 ‘두발단속’에 걸려 앞머리를 밀렸는데, 그때 제 주변엔 여학생이 셋 있었습니다. 어디서든 연락만 오면 번개처럼 튀어나가야 되는데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이 궁리 저 궁리 앞궁리 뒷궁리 끝에 머리 깎인 허연 살에 먹물을 바르고 학교에 갔습니다. 모자를 써도 빡빡머리와 스포츠가리는 확 다르지 않았습니까? 여학생들을 만나기 전에 저는 빡빡머리가 될 순 없었습니다.
지각을 할지언정 뛰어서 등교하진 않았습니다. 머리에 땀이 나면 안 되거든요. 먹물이 말라붙어 가려워도 긁었다간 큰일 납니다. 고행의 순교자는 결국 하마에게 다시 걸리고 말았습니다. 모의고사 시간에 감독관 하마가 가까이 오고 있었는데 겁이 난 나는 먹물 바른 부위를 왼손으로 덮었습니다.
하마는 요놈 잡았다며 손바닥을 들추었는데 커닝페이퍼는 없고 땀에 녹은 먹물만. 아뿔싸 귀를 잡힌 채 앞으로 끌려나가 작살나기 직전... (2편은 다음 주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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