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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고, 아이스크림 들고: 우도에서의 반나절 -휘준- 나는 바다를 건너기 전부터 이미 반쯤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성산항에서 배를 기다리며, 작은 선착장에 앉아 파도를 바라보는 순간부터 그랬다. 우도행 배편은 그리 크지 않다. 마치 시골 버스처럼 정겨운 모양새였다.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들 틈에는 자전거 헬멧을 쓴 젊은이들, 유모차를 민 가족들, 그리고 나처럼 단출한 복장의 여행자들이 뒤섞여 있었다. 배는 출렁이며 15분 남짓의 짧은 항해를 시작했다. 뱃머리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우도를 향해 가는 그 시간은, 여행지로 이동하는 중이 아니라 '또 하나의 여행'처럼 느껴졌다. 바다를 바라보다 보면 생각이 참 단순해진다. “내가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았지?”라는 질문이, 잔잔한 파도에 실려 머릿속을 맴돈다. 파도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대답이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 2025. 7. 17.
삶의 광택 / 이어령 나는 후회한다. 너에게 포마이커 책상을 사 준 것을 지금 후회하고 있다. 그냥 나무 책상을 사 주었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어렸을 적에 내가 쓰던 책상은 참나무로 만든 거친 것이었다. 심심할 때, 어려운 숙제가 풀리지 않을 때, 그리고 바깥에서 비가 내리고 있을 때, 나는 그 참나무 책상을 길들이기 위해서 마른 걸레질을 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문지른다. 그렇게 해서 길들여져 반질반질해진 그 책상의 광택 위에는 상기된 내 얼굴이 어른거린다. 너의 매끄러운 포마이커 책상은 처음부터 번쩍거리는 광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길들일 수가 없을 것이다. 다만, 물걸레로 닦아 내는 수고만 하면 된다. 그러나 결코 너의 포마이커 책상은 옛날의 그 참나무 책상이 지니고 있던 심오한 광택, 나무의 목질 그 밑바닥으.. 2025. 7. 16.
한라산 큰 오름, 1년 반 만에 다시 오름 -휘준- 작년 1월 칠순 생일에 아내와 함께 오른 한라산, 1년 반 만에 다시 찾았다. 바로 전날 비가 종일 내린 날이니 날씨만 맑으면 엄청 시야가 좋겠다면서. '두 달 살기' 8일 차에 거처인 동문로터리 쪽에서 환승지에 닿는 시내버스가 없는 시각이라 택시를 탔다. 택시비 5500원을 제하고는 노인교통복지카드 소지자이므로 그다음 교통비는 들지 않았다. 성판악 정류장에 내려 간단 준비를 하고 성판악 통제소를 통과하니 아침 7시. 이정표 지도대로라면 정상까지 12시에 도착이 예상된다. 5시간, 이 시간은 진달래 대피소에서 점심 먹는 시간 30분을 합한 시간이다. 속밭 대피소에서 간단 휴식 후, 사라오름을 지나서,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했다. 여기선 밥 먹고 30분간 쉬기로 했으니 느긋해도 되는데, 그러지 못했다. .. 2025. 7. 15.
느릿한 파도, 표선해변에서 민속촌까지 -휘준- 제주도는 항상 "핫플레이스"로 불린다. 하지만 정작 진짜 제주다움을 느끼려면, "핫"한 곳보다 "한적한" 곳을 찾는 편이 낫다. 예를 들어, 표선 같은 곳 말이다.제주도의 동남쪽, 지도에서 보면 귤껍질의 아랫부분 즈음에 조용히 붙어 있는 마을, 표선. 처음엔 “표선이 어디야?”라는 반응이었지만, 한 번 다녀오고 나면 “표선이야말로!” 하며 두 눈에 별을 담게 된다. 표선의 상징은 뭐니 뭐니 해도 표선해비치 해변이다. 이름만 들어도 고급 리조트가 연상될 정도로 우아한 이름이다. 사실 이름에 ‘해비치(haevichi)’가 들어가는 건 순우리말 ‘햇빛’에서 온 거라고 한다. 햇빛처럼 맑고 따사로운 바다라니, 기대치부터 올라간다. 실제로 표선해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수평선이 아니라 ‘수면선.. 2025. 7. 14.
종일 우중에 우당도서관을 찾다 -휘준- 우당도서관은 제주도의 3대 도서관 중의 하나다. 제주도서관, 한라도서관과 함께 제주도민의 도서관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용시간은 다른 곳과 같고, 매주 월요일이 휴관일이다.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전도민 독서 마라톤 대회이다. 독서 한 페이지당 마라톤 2미터 뛴 것으로 견주는 대회이다.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에 보이는 미니 인디언 텐트다. 텐트 앞에 주무시는 것을 삼가해주시고, 힐링 독서에 활용해 달라는 게시가 붙어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책을 읽고 있었다.^^ 2025. 7. 13.
윤여선의 土曜斷想 : 엉뚱 생각 대체역사(代替歷史) ========={제 192회}========(2025.07.12.)가끔 엉뚱한 생각을 해보는 때가 있습니다. 만약 6.25 전쟁 당시 아군의 최후 보루였던 낙동강 전선이 무너지고, 부산이 함락되어 이승만 대통령 정부가 일본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하는 것이지요.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지만, 지금의 북한처럼 김일성 왕국에 충성을 바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밀고하고, 제한된 자유로 이웃 동네로의 나들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이 되겠지요. 물론 이러한 생각은 하나의 공상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절대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닙니다. 역사의 흐름은 인간의 자의(恣意)만이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신(神)의 섭리에 영향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2025.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