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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바다가 안 보이는 바닷가 카페 : 한림 ‘카페 고마워요' -휘준-

by 휘준쭌 2025. 7. 28.

제주에는 바다 가까운 카페가 많다.
아니, ‘바다 보이는 카페’라는 말이 이미 브랜드가 된 지 오래다.
출입문을 열면 바다가 척 펼쳐지고,
라테 잔 너머로 수평선이 보이는 뷰맛집들.
하지만 나는 그런 전형적인 코스에서 한 발짝 비껴 나 있다.
사람들이 바다로 몰릴 때, 나는 한림 서쪽의 조용한 동네로 향한다.

 

그 골목 어귀에 ‘카페 고마워요’가 있다.
이름만 들으면 왠지 고백받는 느낌이지만,
실제로 도착하면 ‘정말 고마워져 버리는’ 공간이다.
우선,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뷰를 기대하고 온 사람은 다소 당황할 수도 있다.


간판도 없다시피 해서,
구글 지도에도 ‘여기 맞아?’ 싶은 위치다.
하지만 그 낯선 의심을 품은 채
작은 정원과 유리창문을 지난 순간부터
이곳이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오래된 주택의 고백
‘카페 고마워요’는 누가 보더라도 전 주인이 살았던 집이다.
현관도, 거실도, 베란다도 그대로 남아 있다.
다만 가구의 위치가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부엌은 커피 바가 되었고, 거실에는 낮은 탁자와 빈백 소파,
그리고 구석엔 LP 턴테이블 하나가 돌아가고 있다.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주방 앞에 서서 메뉴판을 찾았다.
그런데 사장님은 아무런 메뉴판도 내밀지 않으셨다.
대신 “따뜻한 거 드실래요, 시원한 거 드실래요?” 하고 물으셨다.
그날은 흐린 날이었고,
나는 따뜻한 걸 부탁드렸다.


잠시 후, 부드럽고 고소한 향이 나는 커피 한 잔이
조용한 음악과 함께 내 앞에 놓였다.
그 순간, 나는 이 공간이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고르는 마음


‘카페 고마워요’의 또 다른 매력은 음악이다.
이곳의 음악은 늘 적당하다.
조용하지만 존재감이 있고,
잔잔하지만 졸리지 않다.
팝도 있고, 재즈도 있고, 가끔은 오래된 한국 가요도 흘러나온다.


사장님은 플레이리스트가 따로 없다고 하셨다.
그때그때 손이 가는 음반을 올릴 뿐이라고.

그 덕분에 이곳의 음악은 마치
‘지금 내 마음에 필요한 소리’처럼 들린다.
어쩌다 울적한 날에 들리면
그 음악이 나를 토닥이는 것 같고,
기분 좋은 날이면 더 깊어지는 여운이 된다.

 

커피도 음악도 그렇게 ‘선택받는’ 것이 아니라
‘건네받는’ 느낌이다.
그래서 ‘고마워요’라는 이름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바다 없는 바닷가 카페
카페를 나설 때쯤,
다른 손님 한 분이 “여기선 바다가 안 보이네요” 하고 말했다.


사장님은 웃으며 “네, 대신 바닷소리도 안 들리죠”라고 답하셨다.
그 말이 너무 좋아서,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메모장을 꺼냈다.

이곳은 뭔가를 내세우지 않는다.
뷰도 없고, 유명 디저트도 없다.
화려한 조명도 없고, SNS 감성을 노린 포토존도 없다.


하지만 이곳에는 ‘빼기’를 통해 완성된 평온함이 있다.
오래된 주택의 기울어진 문틀,
빈백 위에서 꾸벅 졸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
주방에 쌓인 커피 찌꺼기의 고소한 냄새.
그 모든 것들이 모여 이 공간을 만든다.

 

사실 바다는, 마음속에 있었다.
그 잔잔함과 넓음이, 바다보다 더 바다 같았다.

진심은 낡지 않는다
요즘 카페는 빠르게 바뀐다.
한 시즌에 한 번은 리모델링하고,
메뉴는 트렌드를 좇아 계속 새롭게 바뀐다.


하지만 ‘카페 고마워요’는 다르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자연스러워지고,
작년과 같은 커피 맛이 올해도 같은 진심으로 나온다.

사장님께 여쭤봤다.


“언제까지 이 집을 카페로 하실 건가요?”
그분은 말없이 천장을 한번 올려다보시더니,
“고장 날 때까지요.” 하고 웃으셨다.
그 말에서 고장 나기 전까지는
함부로 바꾸지 않겠다는 고집 같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늘 고마움을 배우고 돌아간다.
커피 한 잔의 진심, 사람 한 명의 느긋함,
그리고 존재 자체로 위로가 되는 공간의 힘.

 

📌 한림 카페 ‘고마워요’는 네이버 지도엔 ‘한림고등학교’ 근처로 검색하면 찾아갈 수 있어요.
주차는 어렵지 않지만, 입구가 골목 안쪽이라 조용히 방문해 주세요.
혹시 간판을 찾지 못하겠다면, ‘작은 정원에 LP가 흐르는 집’이라는 단서 하나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