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대신, 공간의 기분을 바꿔보자
올여름엔 어디도 가지 않았다. 비행기 표를 예약하지도 않았고, 호텔 검색창도 열지 않았다. 대신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나에게 물었다. “지금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어디야?”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테라스가 있는, 나만의 조용한 리조트.’ 어쩌면 우리는 장소보다 분위기를 원하는 걸지도 모른다. 피서란 결국, 피곤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 꼭 어딘가로 떠나야만 가능한 건 아니다. 그러니, 올여름엔 내 방을 리조트처럼 바꿔보자. 떠나지 않아도 충분히 새로울 수 있다.
공간은 생각보다 금세 달라진다. 정리되지 않은 책더미를 치우고, 낡은 러그를 걷어내고, 커튼 하나만 바꿔도 공기는 바뀐다. 테이블 위에 작은 식물 하나, 벽에 붙인 엽서 몇 장만으로도 방은 놀랍게 다른 공간이 된다. 의외로 집은 우리에게 많은 가능성을 숨기고 있다. 지금은 낡은 책상도, 불편한 의자도, 손보면 달라진다. 시작은 마음이고, 다음은 작은 변화다.
- 향기와 음악, 리조트의 무드를 만드는 디테일
우리가 여행지에서 느끼는 가장 강렬한 기억은 오감 중 ‘후각’과 ‘청각’이다. 호텔에 들어서면 풍기는 고유한 향, 풀사이드에 앉아 들리는 잔잔한 음악. 바로 그 기억이 감성을 결정짓는다. 집을 리조트로 바꾸고 싶다면, 이 두 가지를 먼저 바꿔보자. 향기와 소리는 공간의 성격을 가장 빠르게 전환시키는 요소다.
향초나 디퓨저를 활용해 보자. 여름엔 라벤더, 민트, 시트러스 계열이 좋다. 깔끔하고 청량한 향이 실내의 답답함을 씻어준다. 특히 아침엔 상큼한 자몽향, 저녁엔 편안한 우디향이 좋다. 그리고 음악. 호텔 라운지에서 나올 법한 재즈, 보사노바, 자연의 파도 소리 같은 앰비언트 음악을 틀어보자. 스마트폰 스피커 대신,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 하나만으로도 공간의 밀도는 훨씬 높아진다. 이 모든 것은, 비용보다는 감성의 문제다. 리조트는 결국, ‘감각적으로 쉬는 곳’이다.
- 조명의 온도, 내 방의 시간을 바꾼다
하루 종일 켜놓는 형광등 아래서는 여름밤의 낭만도, 낮의 휴식도 흐릿해진다. 조명은 분위기의 8할이다. 아무리 좋은 가구와 멋진 장식을 해도, 조명이 차갑다면 공간은 병원 같고, 식당 같고, 사무실 같다. 반대로, 따뜻한 색감의 조명 하나만 켜도 내 방은 곧 리조트가 된다. 그리고 그 리조트는, 내 마음에 휴식을 준다.
요즘은 조명의 선택 폭이 넓다. 책상 위엔 스탠드형 조명, 침대 곁엔 무드등, 천장에는 낮은 와트의 전구를 달자. 밝기를 조절할 수 있는 전구면 더욱 좋다. 햇빛이 강한 낮에는 커튼을 활용해 빛을 조절하고, 밤에는 간접조명을 중심으로 조도를 낮추자. 특히 침대 곁에 조명 하나만 바꿔도, 수면의 질이 달라진다. 따뜻한 조명의 방은 늦은 저녁을 여유롭게 감싸고, 휴가를 떠나지 않아도 충분히 포근해진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조명을 배치할 때 ‘빛의 그림자’를 생각해 보자. 벽에 생기는 그림자, 바닥에 비치는 은은한 곡선들이 공간에 깊이를 만든다. 리조트의 조명은 밝음보다 ‘무드’를 중시한다. 빛은 밝기보다 분위기로 기억된다.
- 가장 중요한 건, 그곳에 있는 나
어떤 리조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안에 있는 나 자신이다. 공간을 아무리 아름답게 꾸며도, 내가 그 안에서 불안하면 아무 소용없다. 여름휴가 대신 방을 리조트처럼 만든다는 건, 결국 나를 위한 준비다. 바쁜 일상 속에서 멈춰 서고, 내 안의 리듬을 되찾기 위한 의식 같은 것.
그러니, 꼭 기억하자. 방을 꾸미는 것도 좋지만, 그 공간에서 ‘어떻게 쉬는가’가 핵심이다. 스마트폰을 멀리 두고, 커피 한 잔을 들고,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책 한 권을 읽거나, 낮잠을 자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쉬는 법을 잊지 말자. 리조트는 바다 옆에 있지 않아도 된다. 내가 편안한 곳이면 어디든 가능하다.
어쩌면 가장 완벽한 여름휴가는, 가장 익숙한 공간에서 가장 나답게 쉬는 일일지도 모른다. 집에서 보내는 휴가가 ‘아깝다’는 생각은 이제 그만 두자. 내 방을 위한 작은 투자, 그리고 나 자신에게 주는 큰 선물. 그게 올해, 가장 현명한 여름휴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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