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2학년이 된다는 건 매우 즐거운 일. 득실거리던 선배들 절반이 떠나고 그만큼 새로 생긴 후배들 앞에서 꺼벙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2학년이 된 때, 우리에겐 커다란 혼란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닉슨이 중공을 방문해서 공산 맹주 모택동을 찾은 사건이다. 닉슨과 주은래의 사진도 연일 매스컴에 떠서 우방들이 혼란에 싸였는데, 우리의 경우 고교입시 때 동점자는 반공도덕 성적순으로 뽑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요즘 같으면 입시요강 바꾸라고 난리 나지 않았겠나. 반공이 모든 걸 이기던 시대였으니 중국에 간 닉슨은 충격 그 자체였다.
두 번째는 3월부터 목욕탕 요금이 62.5%나 오른 것이었다. 물론 이 변화를 사회적 혼란으로 보기엔 다분히 주관적이지만, 한꺼번에 올린 인상 폭이 62.5% 얼마나 큰 수치인가. 요즘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높아진 국민 수준에 난리가 날 것이다.
어른 요금이 80원에서 130원으로 올랐다. 50원 차이라고 지금은 웃을지 모르겠으나 당시로는 매우 큰돈이었다.. 사립대학 등록금이 15만 원쯤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도심에서는 꼼짝없이 목욕탕을 이용해야 하는데 62.5%는 부모님께 큰 시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시민 모두가 반대하고 아우성이었는데 우리도 그랬을까? 아니다. 우리는 달랐다. 한 번 삥땅 치면 과거의 두 배에 가까운 돈이 들어오니까.
우리 아스팔트 농구장 농돌이들은 얼마나 뛰어놀았는지 집에 갈 땐 허리춤까지 젖었고, 혁대를 짜면 거기서도 땀이 흘렀다. 봄부터 가을까지 어둑어둑해진 학교 수돗가에서 벗고 씻던 몇 놈들, 지금은 이름도 희미하지만,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겠다고 똥고집을 피우더니 슬그머니 어른이 되어 갔었지.
수업 시간엔 졸다가 쉬는 시간만 되면 날아다니던 놈,
선생님은 자기를 포기했지만 자기는 선생님을 포기할 수 없다던 놈,
단어 외운 뒤 사전 씹어 먹고 별짓 다 했지만 영어성적 바닥이던 놈,
국어시간에 교과서 터프하게 읽다가 사레들려 고생하던 놈,
회충약도 캐러멜이라고 뺏어 먹던 놈,
학교 생일도 아닌데 자기 생일이라고 학교 쉬던 놈,
목욕비 탄 날은 일요일에도 학교 오던 놈,
보고 싶은 애들 중엔 이미 이승을 뜬 친구도 많다.
인생은 그렇게 덧없거늘, 우리는 아직도 하얀 삥땅은 괜찮다며 돈을 쫓아 뛰고 있진 않은지.
삥땅의 길은 끝이 없는 길? ㅎㅎ
https://youtu.be/XSed6-p0cwY?si=fIyzL4xQVs_sHo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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