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를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마치 먼 옛날의 유물을 조심스럽게 꺼내 드는 듯한 마음이 된다. 단순한 지역 방언이 아니다. 그것은 수천 년간 이 섬의 바람과 파도, 오름과 바다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삶이 빚어낸 결정체다. 그 단어 하나하나에는 거친 자연 속에서 피어난 강인한 생명력과, 외부 세력의 침략과 핍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섬사람들의 끈질긴 정신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표준어가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제주만의 정서와 역사가 그 언어의 결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점점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언어라 하지만, 내게 제주어는 묵묵히 제주의 모든 것을 품어 온 어머니의 속살과 같다. 투박하고 투명한, 그래서 더욱 애틋한 '삶의 시'가 아닐 수 없다.

언어는 곧 삶의 지문
제주어는 이 땅에 뿌리내린 삶의 가장 명확한 지문이다. 거친 현무암밭을 일구고, 검푸른 바닷속 해녀의 숨비소리에 기댔던 이들의 삶이 고스란히 언어에 스며 있다. 예를 들어, 제주에는 바람을 뜻하는 다양한 표현들이 있다.
육지의 '바람'이라는 단어 하나로는 담아낼 수 없는, ‘하늬바람(서풍)', '마파람(남풍)', '된바람(세찬 바람)', '살바람(찬바람)' 등, 바람의 방향과 세기, 그리고 그것이 삶에 미치는 영향까지 세밀하게 구분 지어 불렀으니, 이는 바람과 함께 살 수밖에 없었던 섬사람들의 절박한 생존 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바다 역시 마찬가지다. 조업의 상태, 파도의 높이, 갯바위의 특성까지를 아우르는 다채로운 단어들은 단순히 대상을 지칭하는 것을 넘어, 삶의 매 순간이 곧 자연과의 치열한 대화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정낭(대문 역할을 하는 나무)', '올레(골목길)'와 같은 단어들은 제주 특유의 주거 문화와 공동체 의식을 함축한다.
담장이 없는 제주의 대문인 정낭은 열림과 닫힘의 정도에 따라 집주인의 재실 여부를 알리고, 돌담으로 이어진 구불구불한 올레는 단순히 길이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가 형성되는 소통의 공간이었으니, 이 단어들 속에는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되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던 섬사람들의 소박하고도 깊은 삶의 방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그 민족과 지역의 독특한 환경, 문화, 그리고 그 속에서 형성된 삶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살아있는 기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할망의 입김, 기억 속의 속살
제주어, 그 언어 속에는 일제 강점기와 4.3의 비극을 견뎌낸 할망들의 한과 눈물이 스며 있었고, 자식을 향한 무한한 사랑과 거친 바다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애끓는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표준어의 말끔함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삶의 거친 풍파를 오롯이 맞아낸 이들의 깊은 정서와 서사가 녹아 있는 것이다. '지드레(천천히)', '이녁(너/당신)', '하영(많이)' 같은 단어들은 듣기만 해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어머니의 품속처럼 아늑한 온기가 느껴진다. 제주어를 들을 때마다 나는 단순히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옷을 입고 다가오는 지난 시절의 기억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 같기도 하고, 어머니의 나지막한 자장가 같기도 한, 가장 근원적이고 내밀한 기억의 속살인 것이다.
사라져 가는 언어, 남겨진 그림자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주어는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것이 언어의 숙명이라지만, 제주어의 소멸은 단순한 변화를 넘어선다. 방송 매체의 발달, 교육의 표준화, 그리고 젊은 세대들의 유출로 인해 제주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환경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표준어를 쓰고, 집에서도 부모님 세대는 자녀에게 표준어로 말할 것을 권한다. 제주어는 어느덧 '옛날 말', '사투리'라는 편견 속에서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제주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이들은 점차 고령화되고, 그들의 목소리가 침묵하는 날이 오면, 제주어는 사전 속의 죽은 단어들로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언어의 소멸은 단순히 의사소통 방식 하나를 잃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언어와 함께 존재했던 독특한 사고방식, 문화, 역사, 그리고 무엇보다 그 언어로만 표현 가능했던 섬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담은 정신의 일부를 잃는 것이다. 마치 나무의 뿌리가 썩어 들어가듯, 언어가 사라지면 그 위에 쌓아 올린 문화의 큰 부분이 함께 무너져 내리는 법. 제주어를 잃는다는 것은, 제주의 정체성, 제주의 속살을 잃는 것과 다름없으니, 이토록 안타까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 속에 담긴 그림자들이 점차 옅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기억의 씨앗, 영원히 흐르는 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비록 일상적인 언어로서의 제주어는 희미해질지라도, 그것이 남긴 기억의 씨앗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어는 이미 제주의 문학과 예술 속에, 사람들의 DNA 속에, 그리고 이 섬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제주의 노래, 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제주어의 운율과 정서를 만날 수 있다. 젊은 세대들이 제주어를 배우고 보존하려는 움직임, 그리고 제주어를 활용한 문화 콘텐츠들이 새롭게 생산되는 모습들은 제주어의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된다.
언어가 영원히 살아남는다는 것은 물리적인 차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언어가 담고 있던 '정신'과 '가치'가 다음 세대에 어떻게 전달되느냐에 달렸다. 제주어는 단어의 나열이 아니라, 제주 사람들의 삶이 빚어낸 한 편의 서사시와 같다. 어제는 쇠소깍을 다녀왔다. 천제연 폭포엘 가려했는데 정문에 다다르니 1시간을 기라리란다. 폭포에도 개문 폐문시간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9:00 개장, 17:10 폐장).



천제연, 정방, 천지연 폭포를 돌 예정이었다. 시간이 남으면 쇠소깍까지 가보자 했는데, 종점이 쇠소깍이라 적힌 버스가 오길래 망설임 없이 탔다. 시내버스엔 안내 전광판이 아주 잘되어 있고 예쁜 아나운서의 목소리도 정겹다. 정류장 이름을 몇 개 소개해 본다.

혼착밭 정류장을 지나고 나니 방송이 나온다.
"이번 정류장은 허물서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섯가름입니다."
서년듸, 고향모루, 뒷동산, 공물, 주거물 정류장을 지났는데
"이번 정류장은 수모루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통물입니다."
낯선 버스 안에서 심심할 새가 없다.

그 거친 듯 정겹고, 묵직한 듯 따뜻한 속살이 비록 직접적으로 들려오지 않을지라도, 제주의 돌담과 오름, 바다와 바람 속에, 그리고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흐르는 '삶의 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제주어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그리고 제주의 영원한 자연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끊임없이 재생될 것이라 믿는다. 그 존재만으로도 제주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내고, 우리에게 겸허한 삶의 지혜를 일러 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