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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요즘 젊은이들의 말, 뒤집어 들어도 모르겠음 -휘준-

by 휘준쭌 2025. 6. 5.

MZ세대가 말하는 플렉스, 나는 ‘푼수’로 들었다.
― 요즘 젊은이 말, 이렇게 들린다.

MZ세대가 말하는 플렉스
MZ세대가 말하는 플렉스

 

요즘 젊은이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외국어 수업이라도 듣는 기분이다. 물론 내가 ‘그쪽 나라’에서 태어난 적이 없으니 통역도 사전도 없다. 그저 눈치와 경험, 그리고 약간의 체념으로 해석해 볼 뿐이다.

며칠 전이다. 손주가 방에서 갑자기 외쳤다.
“와! 이건 진짜 플렉스지!”


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분명히 ‘푼수’라고 한 것 같은데, 왜 저렇게 당당하게 외치나 싶었다. 그 아이 또래에 ‘푼수’라는 말을 쓸 리는 없고, 다시 묻자니 괜히 ‘꼰대’ 같고.

 

결국은 물어봤다.
“그, 플렉스라는 게 뭔 말이냐?”
손주가 나를 힐끗 보더니 잠깐 고민하더니 말했다.
“그냥, 멋지게 소비한다는 뜻이에요. 남들에게 보여주는 소비요.”

 

아하, 나 때 말로 치면 ‘돈 자랑’이거나 ‘괜히 폼 잡는’ 거다. 그런데 이걸 ‘멋지다’고 한다. 세상이 변했다. 우린 돈 쓰는 걸 감추고 살아왔는데, 요즘은 쓰는 걸 자랑하는 시대라니. 소비에도 체면보다 자유가 우선인가 보다.

그날 이후, 나는 젊은이들의 말이 도통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는 내 일기장 한쪽을 아예 새로 열었다.

제목은 <젊은 말 사전>. 아주 주관적인, 노인 버전이다.

 

'ㅇㅈ'은 ‘인정’이라는데, 난 ‘이응 지읒’이라고 읽었다
처음 본 건 유튜브 댓글이었다. “ㅇㅈㅋㅋ 이건 레전드”.
무슨 주문 같았다. 이응 지읒… 이건 또 무슨 생소한 이니셜인가. 혹시 연예인 줄임말인가? 아니면 인터넷 암호?

결국 검색해보니 ‘인정’이라는 말이란다. 앞 글자만 따서 쓴 거군.
나는 70평생 인정받기 어려운 삶을 살았는데, 요즘은 'ㅇㅈ' 두 글자로 인정이 끝난다.

과학도 발전하고, 인정도 간편해졌다.

 

'무지성 소비'는 머리 나쁜 게 아니라 생각 없는 소비?
또 하나 들은 말은 ‘무지성’. “형, 이건 무지성으로 질러야지”라는 문장을 듣고 나는 속으로 기가 막혔다.
‘무지성’이라니… 누가 봐도 지능이 낮은 행동이라는 뜻 아닐까? 그걸 왜 자랑처럼 말하나?

하지만 알고 보니, 생각 없이 그냥 감정 따라 하는 소비, 혹은 행동이라는 뜻이란다.


그러니까 충동 구매 같은 거다.
우리 때는 그걸 ‘뒤끝 없는 바보짓’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그걸 또 유쾌하게 포장해 이름을 붙인다. 감탄한다, 진심으로.

‘킹 받다’는 왕이 받았다는 건가?
내가 가장 웃겼던 말은 ‘킹 받다’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도, 어감부터가 너무 웃겼다. 킹! 받다!
무슨 중세 기사단이 감정이라도 전달받은 듯한 기분이다.

“킹 받는다”는 게 ‘엄청 열받는다’는 뜻이라니.
‘King’이 붙었다고 무슨 왕족 같은 분노인가 했는데, 그냥 강조 표현이었다.


이제는 나도 아내에게 한마디 한다.
“당신이 지금 말 안 하면 나 진짜 킹 받아!”
아내가 나를 보며 피식 웃는다. 나쁘지 않은 유머다.

젊은이 말, 이해 못 해도 웃을 수 있다


사실 이런 말들을 처음엔 ‘왜 굳이 저렇게 말하나’ 싶었다.
국어 책도 안 본 듯한 그 줄임말들, 문법을 넘어선 말장난들.
하지만 가만히 보면, 그 안엔 시대의 유머가 있고, 속도감 있는 소통 방식이 있다.
우리는 길게 말하고 조심스럽게 돌려 말하는 데 익숙했지만, 요즘은 빠르게 감정을 공유하고, 쿨하게 털고 지나간다.

세대 차이는 당연하다.


우리는 TV에서 트로트를 부르며 청춘을 보냈고, 그들은 틱톡에서 춤을 춘다.
우리는 손 편지를 써서 고백했고, 그들은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그게 어색하지만, 그렇다고 틀린 건 아니다.

 

아날로그의 여유, 디지털의 유쾌함
그래서 나는 요즘 젊은 말이 들릴 때마다 메모한다.
“찐이다”는 진짜라는 뜻이고,
“알잘딱깔센”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라는 의미란다.


이걸 외우느라 머리에 쥐가 나도, 나름 재미있다.

어쩌면 그들이 내 말을 어려워하는 것처럼, 나도 그들의 말을 어렵게 느끼는 거다.
차이는 있어도, 다리를 놓을 수는 있다.
그 다리는 약간 비틀거리더라도 웃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길이다.

 

요즘 나는 손주가 말하는 ‘플렉스’ 중 하나로 ‘언어 공부’를 택했다.
돈을 들이지 않고, 감성은 남고, 세대 간 거리도 좁히는 똑똑한 소비다.

어제는 손주에게 말했다.
“너, 요즘 완전 킹 받게 귀엽다.”
손주가 귀엽게 웃는다.
‘ㅇㅈ?’
“ㅇㅈ이지, 완전 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