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 칠순 생일에 아내와 함께 오른 한라산, 1년 반 만에 다시 찾았다. 바로 전날 비가 종일 내린 날이니 날씨만 맑으면 엄청 시야가 좋겠다면서. '두 달 살기' 8일 차에 거처인 동문로터리 쪽에서 환승지에 닿는 시내버스가 없는 시각이라 택시를 탔다. 택시비 5500원을 제하고는 노인교통복지카드 소지자이므로 그다음 교통비는 들지 않았다.
성판악 정류장에 내려 간단 준비를 하고 성판악 통제소를 통과하니 아침 7시. 이정표 지도대로라면 정상까지 12시에 도착이 예상된다. 5시간, 이 시간은 진달래 대피소에서 점심 먹는 시간 30분을 합한 시간이다. 속밭 대피소에서 간단 휴식 후, 사라오름을 지나서,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했다. 여기선 밥 먹고 30분간 쉬기로 했으니 느긋해도 되는데, 그러지 못했다.
오는 중간에 지도상 샘터가 있어 당장 먹을 물 두 모금만 남기고 물을 버린 탓이다. 배낭의 무게를 최대한 줄이고 싶은 만큼 지쳐있었다. 그러나 샘터를 찾을 수 없었고(아마도 폐쇄된 모양) 진달래 대피소에도 샘물은 없었고 생수를 살 매점도 폐쇄됐다. 산에서 물을 버리다니, 엄청 큰 실수를 한 것이다. 게시판을 보니 10분 여 거리에 샘터가 있었으니 저지를 수도 있는 실수 아닌가. 그러나 샘터를 만나지 못하고 대피소에 이른 낭패감이라니...
난감한 내 표정을 본 어느 젊은 부부가 자기네 물 한 병을 준다. 내 빈 병을 내밀며 반만 얻자 했더니; 다 쓰란다. 자기들은 하산길인데 백록담을 보지 못해 아쉽다며. 이렇게 고마울 수가. 꼭 백록담을 보고 오시라는 인사를 기도처럼 들었다.
물 한 병에 부하 수십 명을 거느린 장군처럼 든든하게 진달래통제소를 통과했다. 이젠 정상까지 걷고 걸어야 한다. 하늘이 내려오고 땅이 꺼져도 걷는 수밖에 없다.
제주 시내 쪽 풍광도 좋은 곳이어서 자주 돌아보았는데 안개에 덮여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상도 이러면 어떡하지?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상에 오르면 조금이라도 보여달라 백록담아, 제발!... 오르고 숨 가빠도 행동식을 먹어가며, 천천히 천천히 노인인데 못 오르면 어떠냐 하며 올랐다. 지가 안 나타나고 배기나? 드디어 나타났다. 정상이 눈앞이다. 그러나 백록담은 안개 너머에 숨어있었고, 정상석 앞에 대여섯 명이 모여있었다. 주말 성수기엔 1시간씩 줄을 서야 인증숏을 찍을 수 있는 곳인데 얼마나 다행이냐며, 부랴부랴 강풍에 구겨진 내 모습을 담았다.
칠순+1 산행, 올해 첫 산행 데 그냥 내려가야 하나. 억울한 생각도 들어 발이 안 떨어지기에, 이곳저곳 풍광이나 찍자하고 배회했다.
안갯속에 누군가 외쳤다. "보인다." 갑자기 사람들의 탄성이 뒤따랐다. 사방에서 와~와! 대박이다.~ 백록담이 조금씩 보인다는 환호였다. 부리나케 쫓아 올라가 카메라를 들이밀었고, 조금 더 열리기에 동영상도 담았다. 약 30초간의 꿈이었고. 다시 백록담은 신기루처럼 사라진 체 나타나지 않았다.
봤으니 다행이다. 봤으니 다행이다. 오~ 봤으니 다행이다. 찍을 수 있었음을 하늘에 감사드리며 휴, 관음사 쪽으로 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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