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과 나무젓가락 그리고 뺑코
어려서나 어른이 되어서나 중국집에서 "짜장면"하고 시켜야 짜장 맛이 나지 '자장면'은 영 아니다. 표준말이 ‘자장면’이래서 못마땅했지만 몇 해 전인가 ‘짜장면’도 표준어로 등록이 됐단다.
고교 입학식 날인가. 친구들과 짜장면을 먹은 기억이 있다. 그 이전에도 중국집에 갔었겠지만 그 때가 첫 기억마냥 남아있는 것은 강렬한 추억 한 컷 때문이다. 흑백 사진처럼 바랜 추억 가운데 강렬히 남아있는 장면은 나무젓가락 비비기다.
그 시절 젓가락의 품질이 좋지 않아서 제품 모서리에 나무 보푸라기가 몇씩 있었고 그냥 먹다간 입술이 찔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뺑코가 나무젓가락을 받자마자 그것을 둘로 떼어내더니 손바닥 사이에 모으고 그것들끼리 마구 비볐다. 우리가 하나씩 뜯고 있는 보푸라기를 한꺼번에 처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는 익숙하게 면을 비비고 있었다.
우리가 어쩌다 먹는 짜장면을 그 친구는 많이 먹어본 것처럼 여겨졌고 집도 부유할 것이란 생각이 당연히 들었다. 뽀얀 얼굴에 오똑한 콧날이 그날따라 더 인상적이었고 그 모습은 여지껏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도 산이나 바다에서 컵라면을 먹을 때면 아니 어디서건 나무젓가락을 볼 때면 귀티 나던 그 얼굴이 떠오른다. 그렇게 살아나는 기억에 나 스스로도 놀라곤 한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한 장면이 이렇게 오래도록 뇌리에 있을 줄이야.
사실 그 때 나무 보푸라기를 없애는 방법으로 젓가락 비비기는 기발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 방법을 몰라도 국수를 조금 늦게 먹을 뿐 어떤 것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하찮은 재주에 불과했고 기발하다기 보다는 처음 보는 것이어서 인상적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랬는데도 뺑코는 나보다 뭐든지 잘 할 것 같았고 나는 기가 죽어있었다.
첫인상이란 그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그 나무젓가락 비비기를 못생긴 친구가 했어도 이토록 남아있을까. 귀티 나는 뽀얀 얼굴로 젓가락을 비비는 뺑코의 하얀 손을 보고 아마 튀튀한 내 손을 보았을 것이다.
이 땅에 테트론 옷감이 생겨났을 때도 옥양목(?)의 검정교복은 1년이면 허옇게 빛이 바랬었다. 검은 교복 속에도 엄연히 존재했던 빈부의 격차, 이젠 잊어도 좋은 흑백사진 몇 장 중에 하나, 그것에 하찮은 나무젓가락 하나 언제나 기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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