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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폭포 앞에서 느낀 감회: 천지연의 유려한 속삭임

by 휘주니 2025. 8. 26.


제주 천지연폭포. 수많은 발걸음이 향하는 그곳. 폭포라는 자연 현상이 으레 그렇듯 특별한 새로움이 있을까 하는 사뭇 시큰둥한 마음으로 향했던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허나, 그곳에서의 마주침은 저의 좁은 혜량을 부끄럽게 만들었으니, 그 경험을 두서없이 기록해볼까 합니다.
 


여정의 시작부터 평범치 않았습니다. 폭포의 입구에서부터 쏟아져 나오는 인파는 흡사 시대의 명절 같았습니다. 필경, 이 모두가 폭포의 장엄함을 만나기 위함이겠지요. 저 혼자만의 호젓한 사색을 기대했던 것이 어리석었나 싶어 헛웃음이 터져 나오더군요. 매표소에 다다르니, 그 풍경은 가히 진풍경이었습니다. 흡사 공연장 티켓팅을 방불케 하는 행렬에 잠시 아연실색했지요. 아니, 이토록 많은 이들이 하나의 폭포를 향해 운집하다니. 폭포를 보러 온 것인지, 군중 속에서 인간사를 관찰하러 온 것인지 경계가 모호해질 지경이었습니다. 겨우 표를 손에 쥐고 들어서니, 영롱하게 빛나는 '천지연폭포' 표지석이 저를 반깁니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이들이 이 표지석 앞에서 저마다의 포즈로 기념사진을 남기느라 여념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폭포의 서막이라 할 수 있는 표지석 앞에서 이미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으니, 본디 주인공은 따로 있는 듯했습니다.
 

표지석부터 이어지는 산책로

 
표지석을 지나치자 돌하르방이 묵묵히 길을 지키는 산책로가 이어졌습니다. 푸른 자연 속을 거니는 이 길은 분명 제주의 정취를 오롯이 담고 있었습니다. 길가의 연못에는 살집 좋은 잉어들이 유유자적 노닙니다. 사람들의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제 갈 길 가는 저 잉어들을 보며, 문득 제가 이 속세에서 너무 분주하게 살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뜬금없는 상념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물론, 푸른 숲이 선사하는 피톤치드는 번잡했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위무해주었지요.
 
그렇게 길을 따라 걷던 중, 마침내 귀를 때리는 웅장한 물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 드디어' 하는 반가움과 동시에 기대감이 피어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내 베일을 벗고 모습을 드러낸 천지연폭포.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실로 압도적이었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그 위엄이 현실이 되어 다가오는 순간, 저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토록 장엄한 스케일은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나 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직접 마주하니 그 감동은 배가 되더군요.
 

가히 요란한 폭포소리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는 소리는 가히 비행기 이륙 소리와 비견될 만했습니다. '쏴아아아-' 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물소리는 귀를 가득 채우고, 아래로 흩날리는 물안개는 주변을 신비로운 분위기로 감쌌습니다. 흡사 신선이 내려와 선유(仙遊)를 즐길 법한 고요하면서도 웅장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물론 그 신선마저도 사진을 찍으려는 인간들의 인파 속에서는 곤란함을 겪었으리라 짐작하지만요.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니, 답답했던 속내가 일순간 해소되는 듯했습니다. 속세의 번뇌가 폭포수와 함께 흘러내리는 듯한 해방감이랄까요.
 
많은 이들이 폭포 앞에서 저마다의 카메라를 들고 ‘인생샷’을 남기려 애쓰는 모습 또한 흥미로웠습니다. 폭포 자체를 감상하기보다, 폭포를 배경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하는 모습. 그들의 표정에는 미소가 가득했지만, 눈빛에는 최고의 사진을 건져야 한다는 비장함마저 엿보였습니다. 저 역시 그 풍경을 외면할 수는 없었기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 순간을 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저의 오랜 소신이지만, 이왕 찍는 거라면 꽤 괜찮은 사진 한 장쯤은 건져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사고가 작용한 셈입니다.
 
폭포 주변의 경관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오랜 세월을 견딘 기암절벽과 푸른 나무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빼어난 동양화를 그려내더군요.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감탄사는, 아마도 자연이 선사하는 경이로움에 대한 인간 본연의 반응이겠지요. 저 역시 그 감탄사에 동화되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에메랄빛 물색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폭포 아래 연못의 에메랄드빛 물색이었습니다. 맑고 투명하면서도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오묘한 색깔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또다시 잉어들이 한가로이 유영하고 있더군요. 그 잉어들을 보며 '이리 좋은 경치에서 온종일 유유자적이라니, 저들의 팔자가 실로 부럽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생에는 천지연 폭포의 잉어로 태어나 세상의 온갖 시름을 잊고 살고 싶다는 비현실적인 소망까지 품게 되었습니다.
 


꽤 오랜 시간 폭포 앞에 머물렀습니다. 시원한 물소리가 귀를 채우고, 촉촉한 물안개가 얼굴을 어루만졌습니다. 복잡했던 상념들이 씻겨나가고, 머릿속이 맑아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늘 손에서 놓지 못했던 스마트폰과 그로 인해 지쳐있던 눈과 마음이 잠시나마 휴식을 얻는 순간이었습니다. 짧지만 깊이 있는 휴식. 물론, 그 휴식에는 적잖은 입장료가 따랐습니다만, 아까움보다는 가치 있는 지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왕 들인 돈, 그 이상의 감흥을 얻었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육체는 다소 피로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꼈습니다. 천지연폭포는 그저 '유명한 관광지'라는 피상적인 정보로만 접했던 곳이 아니었습니다. 직접 발길을 옮겨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온몸으로 그 기운을 느끼니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된 것입니다. 물론 수많은 인파 속에서 북적거리고, 간혹 상업적인 분위기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 또한 세상사의 한 모습이라 여기며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폭포가 흩뿌리는 물안개처럼, 세속의 잡다한 근심들이 잠시나마 씻겨 내려간 듯한 상쾌함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다음에 제주를 다시 찾게 된다면, 천지연폭포를 다시 방문할 것이냐고요? 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또 다시 그 인파 속에 뛰어들 생각에 살짝 주저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문득 그 장엄함이 그리워질 때면, 다시금 발길을 옮기게 되리라는 것을 저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군요. 인생이란 이토록 알 수 없는 모순의 연속 아니겠습니까? 어찌 되었든, 천지연폭포는 분명 기억할 만한 감동을 선사한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서귀포시내에서 가깝고, 야간개장도 있으며 노인(65세 이상자)은 무료입니다. 그러니 굳이 안 올 이유가 있겠습니까? 다음 방문은 부디 한적한 평일이기를 바라며, 이만 탐방기를 마칠까 합니다.
 

제주 천지연 폭포

주소: 제주 서귀포시 천지동 667-7
운영시간: 매일 오전 9시에서 22시까지
입장마감: 21시 20분
주차: 무료 주차장 넓음
애견동반 불가
입장료는 성인 2,000원/청소년 1,000원/어린이(만 7시~12세) 1,000원.
장애인 무료인데 보호자 1인도 함께 무료 입장이 가능하더라구요
매표 후 입장권은 따로 검표소에서 확인하고 있어서 무료 입장인 경우 증빙자료는 검표소에서 확인..
무인발권기도 함께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