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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11

버려지는 사람의 두 번째 삶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버려지는 순간을 맞이한다. 사회 속에서, 일터에서, 심지어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도 느낄 수 있는 소외감과 공허함. 처음에는 그것이 삶의 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사람 역시 사물이나 시간처럼 두 번째 삶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그 삶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운 역할을 찾으며,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다시 피어날 때 시작된다. 사회 속에서 버려진 듯한 나 젊은 시절, 나는 일과 사람들 속에서 쉼 없이 달렸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역할에서 밀려나고,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처음에는 그 공백이 쓰라렸고, 하루하루가 허무하게 느껴졌다. 마치 시간과 사물처럼 나도 버려진 존재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 들었다.. 2025. 9. 3.
버려지는 시간의 두 번째 삶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 많은 시간을 흘려보낸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일에 치여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기도 한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흘러간 시간을 ‘낭비’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정말 버려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시간도 두 번째 삶을 얻을 수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다시 돌아보고, 의미를 부여할 때 시작된다. 흘러간 시간은 단순히 지나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르게 바라볼 때 새로운 가치로 되살아난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의 재발견 아침부터 바쁘게 시작된 하루,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이미 흘러간 시간들을 세곤 한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10분,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는 3분, 커피를 준비하며 흘러간 5분, 사람들은 그냥 흘려보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2025. 9. 2.
버려지는 것들의 두 번째 삶 -휘주니-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것들을 버린다. 종이 한 장, 깨진 그릇, 낡은 옷, 더는 쓸모 없어진 물건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것은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나고, 어떤 것은 기억의 한 자락에 머물러 다시 빛난다. 나는 그것을 ‘두 번째 삶’이라 부르고 싶다. 오늘은 내가 걸어오며, 살아오며 마주친 버려진 것들의 두 번째 이야기를 기록해 본다. 종이와 책이 남기는 흔적 아침에 우편함을 열면, 전단지와 광고지가 쏟아져 나온다. 대부분은 곧장 휴지통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 종이들이 모두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한때는 나무였고, 햇빛을 머금고 자라던 생명이었다. 그것이 잘려 나와 종이가 되었고, 다시 인쇄되어 세상에 뿌려졌다. 사람들은 그것을 스쳐 지나가며 버리지만.. 2025. 8. 30.
세대별 언어 사전 만들기 언어는 시대의 거울이다. 같은 단어라도 어느 세대가 쓰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지고, 그 뉘앙스도 바뀐다. 마치 하나의 단어가 시간 여행을 하듯, 세대를 넘나들며 새 옷을 입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세대별 언어 사전’을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10대, 20대, 그리고 50대 이상이 똑같은 단어를 어떻게 다르게 쓰는지를 살펴보는 일. 이 사전은 국립국어원의 공식 자료가 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세대 간의 오해를 줄이는 다리 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단어, 다른 세상 먼저 예를 들어보자. “엄청나다”라는 단어. 50대 이상에게 엄청나다는 말은 주로 놀라운 사건, 혹은 심각한 사태에 쓰였다. “요즘 물가가 엄청나게 올랐어.” 여기서 엄청나다는 곧 걱정이나 부담의 색채를 띤다. 반면 20대에게 엄청.. 2025. 8. 29.
유배지 제주, 지성의 섬이 되다: 선비들의 고독과 사색 -휘주니- 그리고 그들의 발자취가 현대 제주에 남긴 정신적 유산 제주, 하면 우리는 흔히 푸른 바다와 야자수가 어우러진 휴양의 섬을 떠올린다. 넘실대는 파도 소리, 감귤 내음 가득한 바람, 그리고 흑돼지 향연이 펼쳐지는 오감만족의 공간.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수식어 뒤편에는, 꽤나 고독하고 처절했던 제주의 또 다른 얼굴이 숨어 있다. 바로 '유배지(流配地)'로서의 제주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조선 시대 수많은 지식인과 사상가들의 고뇌와 사색이 깊이 배어 있는 '지성의 섬'이기도 했다. 한양에서 쫓겨난 이들이 절해고도 제주에서 느꼈던 절망과 깨달음, 그리고 그들이 남긴 발자취는 오늘날 제주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정신적 유산이 되었다. 흑돼지나 감귤처럼 달콤하고 자극적인 맛은 아니지만, 제.. 2025. 8. 28.
사라져가는 제주어, 기억 속의 속살 -휘주니- 제주어를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마치 먼 옛날의 유물을 조심스럽게 꺼내 드는 듯한 마음이 된다. 단순한 지역 방언이 아니다. 그것은 수천 년간 이 섬의 바람과 파도, 오름과 바다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삶이 빚어낸 결정체다. 그 단어 하나하나에는 거친 자연 속에서 피어난 강인한 생명력과, 외부 세력의 침략과 핍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섬사람들의 끈질긴 정신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표준어가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제주만의 정서와 역사가 그 언어의 결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점점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언어라 하지만, 내게 제주어는 묵묵히 제주의 모든 것을 품어 온 어머니의 속살과 같다. 투박하고 투명한, 그래서 더욱 애틋한 '삶의 시'가 아닐 수 없다.언어는 곧 삶의 지문.. 2025.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