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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이와 꿩이 –휘준-

by 휘준차 2025. 3. 21.

겨울이었지만 참 포근한 날이었습니다. 닭 친구 넷이 아침 일찍 모여 테니스를 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약속한 아침엔 더 부지런한 꿩친구가 먼저 나와서 친구 닭과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모습은 참 좋은 볼거리여서

늦게 온 닭 셋은 땀에 젖은 두 친구와 마당에 흩어진 노랗고 보드라운 공들을 바라보며 

막 퍼지기 시작한 햇살을 먹고 있었습니다.

예쁜 공들이 라켓트를 떠나 꼭 병아리 떼처럼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운 아침을 만들었습니다.

 

꿩이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얘들아! 빨리 들어와 게임하지 않고 뭐 하니?"?"

닭 세 친구가 코트에 들어서면서, 하얀 닭이 꿩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먼저 시합하라고?"

그러자 꿩은 갑자기 화난 얼굴로 소리쳤습니다.

"너희 닭 넷이서 먼저 시합하겠다고?"

 

뜻밖의 꿩의 태도에 닭 네 친구는 깜짝 놀랐습니다.

언제부터 닭끼리만 놀았냐며 라켓도 내던지고 좀처럼 성난 얼굴을 풀지 않는 꿩을 달래기 위해

닭 들은 모두 꿩 주위에 둘러섰습니다. 그리고는 화내지 말라고 한 마디씩 사과했습니다.

"그건 오해야."

""생각해 보면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잖니?"

"우린 네가 힘들어서 쉬었다가 다음 게임부터 한다는 줄 알았어."

하양이는 정말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정말 미안해 너 먼저 해." 하며."하며

싹싹 빌다시피 꿩이를 코트 안으로 떠밀었습니다.

 

그러나 다섯은 모두 서먹서먹해져서 아무도 테니스를 시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테니스장은 닭 마을에 있는 거지만 그곳에는 토끼도 오고 노루도 놀러 오는 곳입니다.

테니스는 넷이서 하는 경기이므로 다섯 중에서 꿩과 닭 세 마리가 먼저 시합을 하고

맨 나중에 온 하양이가 심판을 보았어야 했는데, 닭 넷이서 먼저 시합을 하려고 했던 것은 분명히 잘못이었습니다.

 

그러나 꿩이 "나는 먼저 많이 했으니까, 너희 먼저 해."하고 양보했어도 참으로 아름다운 일일 것입니다.

꿩은 끝내 화난 얼굴을 펴지 않고 쫑 쫑 쫑 가버렸습니다.

 

닭 네 친구는 종일 우울했습니다. 하양이는 더 슬펐습니다.

하양이와 꿩이는 단짝이었고 하양이는 꿩이가 테니스를 잘 칠 수 있도록 많이 가르쳐준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닭들이 하양이에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여럿이니까, 네가 한번 꿩이 넬 가서 데려오는 게 좋겠어!"

하양이는 반사적으로 대꾸했습니다.

"싫어, 난 빌만큼 빌었어. 이젠 내가 사과를 받을 차례야!"

 

하양이는 집에 간 꿩이가 미워졌습니다. 테니스도 싫어지고, 친구들도 다 싫어졌습니다.

하양이는 조그만 자기 닭장으로 돌아와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제 큰 닭장엔 가지 않을 테야. 꿩이하고는 말도 하지 않을 테야

 

며칠이 지나 일요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꿩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다음 주에도 꿩이는 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닭들이 꿩이를 걱정했습니다. 하양이도 걱정이 됐습니다. 그러나 하양이는 태연한 척했습니다.

 

"그까짓 꿩이 녀석 안 오면 어때!"

다른 닭들이 부리를 씰룩거렸습니다.

"그래도 네가 먼저 악수를 청해야 돼."

"꿩이도 미안했을 거야."

"네가 잘했더라도 또 사과를 해야 돼, 여기는 닭장이잖아! “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되었습니다. 큰 운동회가 열리고 동물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테니스장에도 친구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그러나 꿩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양이의 걱정은 꼬리를 물었습니다.

´꿩이가 운동을 그만둔 게 아닐까꿩이가 보고 싶어 졌습니다..

´다른 테니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

 

스스로 위안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양이의 마음은 편할 리 없었습니다.

시합 중간중간에도 꿩이가 어디선가 보고 있는 것 같아 두리번거렸습니다.

하양이는 그날 운동회에서 3등을 했습니다. 상품을 받고 박수도 많이 받았습니다.

아마 꿩이와 사이좋게 지내던 때 같았으면 1등을 할 수도 있었던 시합이었습니다.

 

´이 상품은 꿩이와 나누어 가져야지

하양이는 상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꿩이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늦잠 끝에 해님이 성큼 솟아있던 어느 일요일, 하양이는 여느 때와 같이 테니스장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뜻밖에도 열심히 테니스를 치고 있는 꿩이가 보였습니다. 하양이는 너무 반가워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 꿩이야! 널 얼마나 찾았다구."라고 소리 지르려다 꾹 참았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갑자기 꿩이가 미워지기 시작했고 다시는 꿩이와 안 놀겠다고 결심한 일이 생각나면서,

하양이는 꿩이를 모른 체하였습니다.. 꿩이도 하양이에게 아는 체하지 않았습니다.

 

둘이는 종일 다른 친구들과만 놀고 헤어졌습니다.

하양이는 이럴 때일수록 먼저 악수를 청하는 것이 훌륭한 행동이라고 배웠지만

'그깟 놈에게 말을 먼저 거는 건 지는 거야´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니야 난 꿩이 보다 테니스나 잘 치지 그 밖엔 걔보다 나은 점이 없어, 걔는 멀리도 날 수 있고, 멋진 꼬리도 있잖아´

´아니야 나는 그 대신 빨갛고 예쁜 벼슬이 있어, 걔는 화낼 일도 아닌데 무안하게 가버린 나쁜 녀석이야

 

하루에도 몇 번씩 두 생각이 엇갈려 하양이는 밥맛이 없어지고 소화도 잘 안 되는 속병이 생겼습니다.

하양이는 테니스도 잘 쳐서 다른 친구들에게 테니스를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일찍 나와 지쳤을 때도 하양이가 집에 일찍 돌아가는 일은 친구들이 무척 싫어했습니다.

 

그만큼 하양이는 친구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꿩이와 놀지 않으려니까 자연히 다른 친구들과도 놀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른 닭들은 꿩이와 그전처럼 잘 놀았습니다. 하양이는 다른 닭들도 미웠습니다.

´너희들은 정말 닭대가리야! 난 그래도 안 놀 테야

 

하양이는 오랫동안 테니스장에 가지 않았습니다. 테니스 라켓도 버렸습니다.

오래전부터 생각했었던 등산을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힘이 들었으나 언젠가는 꼭대기까지 하루 만에 오를 수 있는 등산선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양이는 매일매일 산에 올랐습니다. 다리도 더욱 튼튼해지고 속병도 깨끗이 나아서 기뻤습니다.

 

기어코 꼭대기에 오르는 기쁜 날이 왔습니다. 조금만 더 오르면 그리던 꿈의 정상이 산 너머를 보여주는 날이었습니다.

하늘도 축하하는 듯 하얀 눈가루를 뿌려주었습니다. 하양이는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가슴이 벅차 오고 지친 다리에 힘이 솟았습니다.

 

그러나 눈이 하늘의 축복만은 아니었습니다. 고집 센 하양이에게 벌일 수도 있었습니다.

눈송이가 점점 커졌기 때문입니다. 다람쥐 둘이 뛰어와서 빨리 내려가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하양이는 여기서 포기하기엔 꼭대기 너머의 풍경이 너무 궁금했고 억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까 아저씨 다람쥐가 또 말렸습니다.

"산에는 다른 날에도 오를 수 있으니 다치기 전에 빨리 내려가거라."

 

아저씨 말씀이 옳았습니다. 하양이는 더 오를 욕심을 버리고 산 밑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눈이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를 때보다 훨씬 빨리 내려왔으나 제법 쌓였습니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어느새 온 산이 하얗게 변하고 길도 잃었습니다. 오소리도 만나고 늑대도 만나고 생전 처음 보는 짐승들도 보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양이는 무서워서 얼굴을 눈 속에 파묻고 벌벌 떨었습니다.

낯선 짐승들은 하얀 눈밭에 있는 하양이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미끄러지고 넘어져 구르다가 조그만 굴 옆에서 산토끼를 만났습니다.

하양이는 산토끼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자기 머리의 벼슬을 좀 떼어달라고 했습니다.

 

빨간 벼슬만 없으면 큰 짐승들 눈에 잘 안 띄게 되어 안전하고 빨리 집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토끼는 날카로운 이로 하양이의 빠알간 벼슬을 정성껏 떼어주었습니다.

하양이는 서둘러 내려오는 길에 몇 차례 큰 짐승들을 보았지만 머리를 눈 속에 묻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또 큰일 났습니다. 중턱쯤에도 못 왔는데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너무너무 무서웠습니다. 하양이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얼마가 지났을까 지쳐서 잠든 하양이를 누가 깨우고 있었습니다. 눈이 커서 마음씨 좋게 생긴 부엉이였습니다.

 

"쯧쯧, 이렇게 있다간 죽는단다. 조금만 내려가면 덤불더미에 꿩들이 모여 사는 집이 있으니 그리로 가보아라."

하양이는 너무 고마웠지만 다리와 날개가 얼어붙어서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부엉이는 큰 다리로 하양이를 안아서 꿩네 집에 데려다주었습니다..

꿩들은 따뜻한 날개로 하양이의 언 몸을 녹여 주었습니다.

 

하양이는 고마운 꿩들과 밤새워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곳엔 꿩이의 삼촌댁도 있었습니다.

꿩들은 빨리 날기 때문에 멀리 있는 친척들의 소식도 빨리 알 수 있고 가깝게 지낸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하양이와 다툰 꿩이는 한동안 이곳에 와서 마음을 달랬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하양이는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날이 밝자 밤새 친구가 된 꿩들은 눈 덮인 산을 내려가지 못하는 하양이를 위해

움푹한 나무껍질로 예쁜 들것을 만들었습니다.

수십 개의 들것 끈을 입에 문 꿩들의 힘찬 날갯짓이 새하얀 눈 천지에 가득 찬 햇빛을 마구 뿌려댔습니다.

 

하양이는 집에 오자마자 상품으로 탔던 장갑을 가지고 꿩이 넬 갔습니다.

꿩이도 매우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하양이가 말했습니다.

"우리 열심히 운동해서 내년엔 같이 1등을 해보자꾸나."

꿩이도 머쓱히 조그만 선물상자를 내밀었습니다.

"이거 싸우기 전에 네게 주려고 했던 것인데....."

풀어보니 조그맣고 빠알간 모자였습니다. 하양이의 벼슬보다 더 멋진 것이었습니다.

둘이는 어깨동무를 하고 테니스장으로 갔습니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벼슬-도 싫다마아는 명- -- 싫어 "

마을 청소를 맡은 염소 할아버지였습니다.

"저게 무슨 노래니? 명예가 뭐니?"

하양이는 놀란 눈으로 물었습니다.

"으응, 저 산 뒤로 커다란 산을 다시 넘으면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곳의 유행가야."

 

하양이는 눈이 더 동그래져서 물었습니다.

"저 산보다 더 큰 산도 있니?"

하양이는 예쁜 벼슬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렇지만 가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