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확실히, 자주 후회했던 나의 소비 이야기
살다 보면 이유도 모르게 지갑이 가벼운 날이 있다.
아직 달력은 중순도 지나지 않았는데, 통장 잔고가 수상쩍다.
이쯤 되면 괴상한 의혹이 하나 떠오른다.
‘혹시 내가 자면서 누굴 후원하고 있나?’
아니면 밤에 나도 모르게 쇼핑 앱을 열고 카드번호를 눌렀던 걸까?
하지만 의심의 실체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로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이 말은 예쁘지만, 나처럼 ‘확실히’ 소비하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소확지출이 되기 딱 좋다.
작고 소소한 지출은 왜 이리 많을까?
커피 한 잔쯤이야.
오늘 하루 수고했는데, 마카롱 하나쯤이야.
심지어 이유도 없다. 그냥 귀여워서.
그렇게 장바구니에 담겼던 건 미니 가습기, 파우치, 50% 다운된 이어폰
그리고 이름조차 기억 안 나는 아기자기한 것들.
“이게 뭐라고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거지?”
하면서 사들였던 것들은, 집에 오면 십중팔구 서랍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소비인가.
더 무서운 건 이 소소한 소비가 습관이 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감정이 지출을 부르고, 지출은 죄책감을 낳는다.
그리고 그 죄책감을 또 다른 소비로 덮는다.
그야말로 ‘감정–지출–후회’의 끝없는 루프.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지친 걸 소비로 보상하려 하는 건 아닐까?’
사실 소확행은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감정의 배출일 때가 많다.
일이 고단했던 날, 인간관계가 버거웠던 날, 마음이 멍한 날.
그럴 때면 손가락은 어느새 쇼핑앱을 누르고 있고, 나는 택배를 기다리는 존재가 된다.
하루하루를 지나는 대신, 택배를 기다리며 버티는 삶.
그러다 보면 기쁨은 잠깐이고, 후회는 길다.
그 와중에도 배송은 빠르다.
그렇다고 무조건 아끼기만 하자니 그것도 답답하다.
지금 이 순간의 기쁨도 분명히 중요하니까.
그러다 보니 결국 중요한 건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가 되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물건'이 아니라 '위로'였던 것처럼.
소비도 성격 따라 다르다
누구는 계획적인 소비가 익숙하고,
누구는 한탕주의 쇼핑을 즐긴다.
나는 후자였다.
할인 배너 한 줄에 심장이 뛰고,
‘오늘 단 하루!’라는 말에 충동이 솟구친다.
그날의 유혹은 다음 날 후회의 이름으로 남는다.
그래서 나름의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구매하고 싶은 걸 발견하면 메모장에 적어두고
딱 일주일만 기다려보기.
그러면 신기하게도 절반 이상은 흥미가 식었다.
그 순간이 전부인 줄 알았던 물건이,
며칠 지나니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정말 사고 싶었던 가방이 있었는데,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 더 예쁜 게 또 등장했다.
그러자 처음 원했던 건 까맣게 잊혔다.
이쯤 되면 나는 물건을 원한 게 아니라 설레는 마음 자체를 원했던 것 아닐까 싶다.
내 통장을 지킨 건 결국 ‘기록’이었다
나는 어느 날부터 ‘소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대단한 건 아니다.
뭘 샀는지, 얼마였는지, 왜 샀는지, 만족도는 어땠는지만 적는다.
처음엔 귀찮았지만,
며칠만 지나도 패턴이 보였다.
월요일은 위로용 간식,
수요일은 지루함 해소용 잡화,
금요일은 ‘불타는 주말’ 예열용 야식.
내 감정이 소비로 직결되는 방식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기록은 나에게 말해주었다.
“넌 외로울 때 군것질을 하고,
지루할 때 온라인 쇼핑을 하며,
스트레스받을 땐 택배를 주문하더라.”
돈이 새어나간 게 아니라, 마음이 먼저 허물어진 거였다.
이걸 알고 나서야 비로소 ‘돈 아끼는 법’이 아니라,
‘마음을 아끼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소비 대신 '감정 다루기'를 연습하기로 했다.
속상한 날엔 그 감정을 그대로 적어보기.
지루한 날엔 뭔가 하나 새롭게 배우기.
그 작은 시도들이,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었다.
리셋의 기술은 단순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소비 습관을 리셋할 수 있을까?
정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내가 지금 뭘 느끼는지 먼저 알아차리는 것.
“이걸 왜 사고 싶지?”
“진짜 필요한가, 그냥 갖고 싶은 건가?”
그 질문 하나만 던져도 충동의 80%는 줄어든다.
그다음,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물건’인지 ‘감정의 전환’인지 생각해 보자.
정말 피곤한 날엔 카페 대신 공원 벤치를 찾아보자.
스트레스받는 날엔 비싼 간식 대신 산책이나 짧은 낮잠을.
소확행은 꼭 소비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순간 나 자신에게 **“이건 네가 진짜 원하는 거니?”**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그 질문이야말로 습관의 방향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나침반이다.
진짜 소확행은 ‘돈 없이도 가능한 것’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확행은
새벽에 혼자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
마감 후 내 이름을 부르듯 불어오는 바람,
오래된 친구에게 “잘 지내?”라고 먼저 보내는 메시지다.
한 푼도 들지 않았지만,
그 어느 날의 카드값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
행복이란 건 결국 **'나를 들여다보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확행이 꼭 혼자 누리는 것일 필요는 없다.
같이 웃고, 같이 걸으며, 같이 공감하는 순간들이
가장 오래 남는 소확행이 된다.
최근에는 친구와 함께 ‘무료 소확행 챌린지’를 해봤다.
일주일 동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각자 하루에 하나씩 행복한 일을 하는 것.
놀랍게도, 그 일주일이 올 한 해 중 가장 풍성한 한 주가 되었다.
그래서, 다음 달도 소확행 할 예정입니다
다만 이번에는
‘지갑이 아닌 마음에 남는’ 소확행으로 말이죠.
가끔은 커피도, 케이크도, 작은 사치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들이 ‘삶의 위로’가 되려면
우선 내 마음이 ‘왜’ 그것을 원했는지를 아는 게 먼저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질문을 던져본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진짜 필요한 건 뭐지?”
그 대답을 찾아가는 게,
소비 습관을 바꾸는 진짜 리셋법 아닐까.
그리고 그 과정이야말로,
진짜 절약쟁이가 되어가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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