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글짓기하면 돈 많이 벌어요?”
손주 녀석이 물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젤리를 오물거리면서 눈으로도 물었죠.
마침 얼마 전, 지방 잡지에 글이 실려서 원고료가 조금 들어왔던 참이었어요.
“음… 치킨 네 마리 정도는 사 먹을 수 있지!”
그랬더니 손주가 눈을 번쩍 뜨며 외칩니다.
“와! 그럼 글 다섯 편만 쓰면 레고 왕국 세트 사겠다!”
참, 아이답죠?
그 계산이 너무 귀여워서 아이답게 웃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어릴 땐 그랬어요. 단순한 계산에 가슴이 뛰고,
사탕 하나에 세상이 핑크빛으로 보였으니까요.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괜히 마음이 들썩입니다.
누군가는 기념일이라지만, 제게는 ‘기억일’에 가깝습니다.
어릴 적 어린이날은 꼭 즐겁지만은 않았거든요.
먼저 떠오르는 건 아버지 지갑 사정이었습니다.
사과 한 알, 고무줄 총 하나.
그마저도 없으면 “오늘은 밖에서 실컷 놀자~”가 전부였던 시절.
그래도 그날만큼은 왠지 제가 특별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 기억 때문인지, 손주를 보면 가슴 한구석이 간질간질해집니다.
어린이날 선물로 뭘 줄까 고민하다가, 올해는 ‘편지’를 쓰기로 했어요.
돈 대신 마음을 담기로 한 거죠.
작은 봉투에 열두 줄짜리 편지를 정성껏 써서 넣었습니다.
“너는 봄 햇살 같단다.
가만히 있어도 따뜻하고, 웃을 땐 온 방을 환하게 밝혀주지.”
손주는 편지를 받고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주머니에 쏙 넣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나 이거 진짜 간직할 거예요. 나중에 커서도요.
혹시 할아버지 유명해지면… 이거 비싸질 수도 있잖아요?”
…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투자죠.
저는 웃음을 꾹 참으며 말했습니다.
“그 편지는 네 마음이 웃을 때마다 이자가 붙는단다.
근데 이상하지? 네가 웃으면, 내 마음도 불어나거든.”
어린이 마음은 참 바쁩니다.
금방 신나고, 금방 삐지고, 또 금방 까르르 웃고.
어른들은 그걸 변덕이라 부르지만, 전 알아요.
그건 마음이 건강하게 흐른다는 증거라는 걸요.
우리는 언제부터 그 흐름을 묶어버렸을까요?
저는 글을 쓰면서 그 묶인 마음을 조금씩 풀어봅니다.
손주의 말투, 표정, 엉뚱한 질문까지.
글로 적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말랑말랑해져요.
“할아버지, 땅콩버터는 땅에서 나는 버터예요?”
“아니, 그건…”
“…그럼 땅이 부드러워진 거예요?”
이런 말들은 꼭 적어둡니다.
나중에 다시 꺼내 읽을 때마다, 웃음이 툭 터지니까요.
그건 돈으로 살 수 없는 이자랍니다.
어쩌면 글은, 마음을 보관하는 통장 같아요.
그 통장에는 매달 ‘추억’이라는 이름의 복리 이자가 붙죠.
요즘 저는 아침마다 통장보다 워드 문서를 먼저 엽니다.
어제 손주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적어두는 겁니다.
단 두 줄이어도 괜찮아요.
“오늘은 포크로 라면을 먹겠다고 주장함.”
“초코바를 이마에 붙이고 ‘이건 머리 영양제’라고 선언함.”
이런 기록은 돈처럼 불어나지는 않지만,
쌓일수록 제 마음은 점점 부유해집니다.
가끔 아빠 엄마보다 저한테 먼저 전화하는 손주의 목소리가,
이 모든 글쓰기의 이자 수령표 같기도 하고요.
어느 날 손주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왜 맨날 글 써요? 힘들지 않아요?”
저는 조금 생각하다가 말했죠.
“글을 쓰면, 마음이 정리돼.
그리고 네가 웃는 얼굴을 떠올리면… 글이 더 잘 써지거든.”
손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그럼 할아버지 글이 재밌는 이유는, 내가 많이 웃어서구나!”
맞아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이율은, 웃음으로 붙는 문장이에요.
제가 쓰는 이 글들이,
손주에게는 장난감보다 더 오래 기억되는 선물이 된다면,
그보다 좋은 재테크는 없겠죠.
그래서 저는 내일도 씁니다.
오늘보다 더 이율 좋은 문장을,
돈 대신 마음을 모으는 문장을 찾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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