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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1>“그 돈이면 여행에 퐁당 빠질 수도...”를 실천해본 6개월의 기록 -휘준-

by 휘준쭌 2025. 5. 2.

커피 한 잔을 아끼면 참으면?
커피 한 잔을 아끼면?

1. 하루 한 잔, 별생각 없이 넘기던 커피의 진실

나는 커피를 참 좋아한다. 아니, 좋아했다.
아침 출근길에 눈 반쯤 감은 채로 편의점에서 한 잔, 사무실 도착해서 회의 전에 한 잔,

오후 3시에는 졸음 방지용으로 또 한 잔.

거기에 주말이면 무조건 감성 카페 가서 디저트 하나에 라테 한 잔.

문제는, 이게 습관이 되면 무서운 소비라는 거다.
어느 날 카드명세서를 보다가 갑자기 멍해졌다. “이게 다 커피야?”
놀란 마음에 손가락을 꼽아봤다. 하루 평균 1.5잔, 일주일이면 최소 10잔.
한 잔 평균 4,500원이면, 한 달에 4만~6만 원은 그냥 커피값으로 날아간다는 결론.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한 마디.

“그 돈이면, 진짜 여행 한 두 번은 간다.”

그 말이 농담 같으면서도 너무 현실 같았다.
그렇게 나는 실험을 시작했다. 커피 대신 통장을 키워보기.
내가 매일 마시던 커피값이 진짜 ‘여행 자금’이 될 수 있는지, 6개월간 한 번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2. 무작정 금지하면 폭발한다, 대신 ‘감성 대체제’ 장착

그렇게 나는 선언했다. "앞으로 커피 안 마신다!"
그날 오후 3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온몸이 외쳤다. “한 잔만! 딱 한 잔만 마시자!”
하지만 나는 참았다. 대신 회사 탕비실 믹스커피를 집어 들었다. 감성은 없지만 카페인은 충분했다.

퇴근 후에는 드립백을 꺼냈다. 집에서 홈카페를 만들기로 했다.
예쁜 컵에 직접 내린 커피, 그리고 조명 하나 바꿔봤다.
노래는 감성 가득한 재즈 플레이리스트로 깔고, 창문 열고 한 모금.
오, 생각보다 괜찮다. 물론 분위기 있는 바리스타는 없지만, 지갑은 안 울었다.

주말에는 카페 대신 도서관이나 공원으로 향했다.
카페에서 1시간 앉아 있는 대신, 공원 벤치에 앉아 독서.
그늘 아래서 마시는 보온병 커피 한 잔, 꽤나 운치 있었다.
나름 ‘감성은 유지하되, 지갑은 방어하는 전략’이었던 셈이다.


3. 숫자가 쌓일수록 생기는 희한한 자신감

첫 달, 통장에 모인 돈은 약 67,500원.
딱히 큰돈은 아니었지만, 이 돈이 커피를 안 마신 결과라는 게 중요했다.
두 달 후엔 135,000원, 세 달 후엔 203,000원.
통장 숫자가 조금씩 자라나는 걸 보면서 이상한 만족감이 들었다.
이건 단순한 돈이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는 증거 같았다.

더 놀라운 건 이 적금이 커피에만 영향을 준 게 아니라는 점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다른 소비도 신중해졌다.
택시 탈까 고민할 때, “이 돈이면 숙소비잖아.”
배달앱에서 치킨 고르다 말고, “이걸 아끼면 입장료다.”
심지어 SNS 쇼핑도 줄었다. ‘이 원피스 값이면 기차표 두 장인데?’

나도 모르게 ‘돈 = 여행 경비’라는 공식이 머리에 각인된 것이다.
소비 기준이 바뀌니까 지출이 확 줄었고, 그만큼 통장은 점점 더 풍성해졌다.


4. 여행, 그리고 달라진 일상

6개월이 지났다. 통장에는 약 43만 원이 들어 있었다.
자, 이젠 떠날 시간이다. 나는 경북 안동으로 향했다.
한옥 고택에서 자고 싶었고, 조용한 도시에서 천천히 걷고 싶었다.
서울에서의 빠른 일상과 다르게, 그곳은 시간마저 느릿했다.

시장에 가서 간고등어 정식 먹고, 오래된 서점에서 책 한 권 샀다.
예쁜 찻집에 앉아 창밖 보면서 커피도 마셨다. 맞다, 마셨다.
하지만 이번엔 마셔도 되는 커피였다.
6개월 동안 참아낸 그 모든 커피값이 만든 한 잔이니까.

그 한 모금에선, 내가 지켜낸 시간들이 느껴졌다.
그 맛은 기분 탓이 아니라, 진짜였다.


5. 돌아와서도 계속되는 작은 루틴

여행을 다녀온 후, 나는 여전히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의미 없는 커피”는 마시지 않는다.
정말 피곤한 날, 친구와 만나 특별한 시간을 보낼 때는 기꺼이 한 잔.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커피, 습관성 소비는 이제 없다.

그 대신 여행 적금은 다시 시작됐다.
이젠 목표가 생겼다. 다음 여행지는 일본 교토.
골목골목 걸으며 단풍 구경하고, 작은 찻집에서 유자차 한 잔 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오늘도 커피를 안 마신다. 그 4,500원, 여행으로 간직하고 싶으니까.


✍️ 마무리: 돈보다 중요한 건 ‘방향성’

이 6개월 동안 얻은 건 단순히 43만 원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방향으로 살고 싶은지를 알게 된 것이다.
무조건 절약하며 사는 게 아니라, 어디에 쓰고 싶은지를 분명히 하는 삶.

커피를 줄이자는 게 아니다.
그냥, “이 커피값으로 나는 어떤 경험을 살 수 있을까?”를 한 번쯤 생각해 보자는 거다.
내가 원하는 게 여행이라면, 그걸 향해 작은 루틴 하나쯤은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게 결국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은 곳’에 닿게 해 줄 수도 있다.

오늘도 커피값을 통장에 넣는다.
그건 단순한 돈이 아니라, 나를 데려다줄 티켓 한 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