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 플렉스(flex)라는 단어를 모르면 대화가 안 된다. 누가 뭐 하나 샀다 하면 “오, 플렉스~!” 하고 추임새를 넣어야 ‘요즘 사람’ 소리를 듣는다.
나도 뒤처질 수 없지. 생일도 아닌데 초콜릿 케이크를 샀고, 평소 안 사던 향초에 불을 붙였다. 마음먹고 ‘나를 위한 소비’를 실천해 봤는데, 문제는 그 뒤였다. 통장이 울었다.
그러니까, 감성은 살았는데 통장이 죽었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균형이라는 게 필요하다. 감성도 살리고, 통장도 기절하지 않게 말이다. 플렉스는 좋은데, 현명한 플렉스가 필요하다.
나만의 감성 레이더 켜기
처음엔 나도 그랬다. 남들 하는 거 다 좋아 보였다. 누가 커피잔 들고 예쁜 카페에서 찍은 사진 올리면, 나도 괜히 앉아 있어야 할 것 같고. 유행하는 향수 보면 안 뿌리면 섭섭한 기분.
근데 진짜 나를 생각해 보면, 나는 혼자 방 안에서 캔들 켜고, 조용한 재즈 틀어놓는 게 더 좋았다. 감성이란 게 꼭 비싼 것, 예쁜 것만이 아니더라. 내가 좋아하는 순간, 그게 진짜 감성이지.
그래서 감성 소비에도 나만의 ‘레이더’가 필요하다. 남의 플렉스 말고, 나만의 스타일로!
감성 통장 하나쯤은 있어야지
아무리 감성이 좋아도, 카드 긁는 소리에 내 심장이 먼저 반응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나는 매달 월급을 받으면, 아주 소박하게 '감성 통장'에 돈을 따로 빼놓는다.
딱 10만 원. 그 안에서는 뭐든 자유다. 케이크를 먹든, 꽃을 사든, 향초를 켜든, 어떤 플렉스도 죄책감 없이 가능하다. 왜냐고? 예산 안에서 했으니까!
신기하게도 이렇게 정해놓으니, 더 잘 고르게 된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는 나에게 진짜 필요한 걸 찾게 되거든. ‘플렉스’는 ‘펑펑 쓰기’가 아니라, 현명하게 쓰기가 정답이다.
플렉스는 기억될 때 더 반짝인다
플렉스를 했으면, 기록을 남겨야지. 감성 소비는 쓰는 순간보다 기억되는 순간이 더 소중하다.
예를 들어, 어느 날 괜히 기분 좋아서 꽃을 샀다고 치자. 집에 와서 물에 꽂아 두고, 그걸 사진으로 남기고, ‘오늘은 나를 예쁘게 대접했다’는 문장을 써 놓는다. 그럼 그 꽃은 그냥 꽃이 아니게 된다.
SNS에 올려도 좋고, 일기장에 끄적여도 좋다. 중요한 건 소비의 감정을 저장해 두는 일. 그렇게 기록된 플렉스는 시간 지나도 나를 웃게 한다.
나누는 플렉스는 후회가 없다
어느 날, 친구 생일이었는데 특별히 비싼 건 못 해줬다. 대신 좋아할 만한 스티커, 과자, 손 편지를 담은 작은 박스를 보냈다. 반응이 대박이었다. “이거 완전 감성 플렉스잖아!”
그제야 알았다. 나누는 플렉스는 통장이 울지 않고도, 감성 지수는 두 배로 오른다는 걸.
꼭 비싼 게 아니어도 좋다. 나의 감성에 누군가가 함께 웃는다면, 그게 제일 멋진 플렉스 아닐까?
감성도 지키고, 통장도 지키는 사람
이제는 안다. 감성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감성도 지갑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는 걸.
무턱대고 남 따라 쓰는 소비는 마음도 통장도 지치게 한다. 반면에, 나만의 취향을 알고, 계획 안에서 쓰고, 그 순간을 기억하고, 누군가와 나누는 소비는 오래오래 빛난다.
내 통장은 아직 부자가 아니다. 하지만 내 감성은, 어쩌면 제법 풍요롭다. 다음 월급날에도, 나는 나답게 플렉스 할 예정이다. 통장은 안 울고, 나는 활짝 웃는 그런 소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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